오늘 마주친 한 구절

[사서가 읽는 책]『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by 김우진

  •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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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나기는 지나갔지만, 나는 여전히 집 안에 홀로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들이 잊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코 일어난 적이 없는 일들이 마치 일어났던 것처럼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것뿐이다. ……밤이면 나는 그녀가 너무나도 가까이 와 있다고 느꼈고, 침실에서는 그녀가 내쉬는 숨소리를 들었고, 머리맡에서는 그녀의 맥박이 뛰는 것을 느꼈다. p.80 

     

    잠들어 있는 소녀를 보며 ‘사랑’이라 맹신하는 노인은 그의 감정이 깊어질수록 자신이 늙음과 목전의 죽음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 그의 정치 칼럼은 연애편지가 되었고 모든 면에서 고집 센 노인의 생활은 변화를 맞이한다. 그는 곧 죽음이 다가올 것을 알지만 불안과 공포가 아니라 생에 충실 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환상 속에서 현실로 만들어 간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늙음과 소외,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의 모멸과 치욕 속에서도 마지막 남은 단 하루조차도 '살아있음'에 주안점을 둔다. 그리고 그 자체를 지독하게 예찬하고, 또 지독하게 생의 기쁨과 환희를 일깨워간다. (김우진 사서 2017.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Memria de mis putas tristes』 민음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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