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주친 한 구절

[사서가 읽는 책]『심연으로부터』

by 김차경

  • 『심연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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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내 과거를 똑바로 마주해야만 했어. 당신도 당신 과거를 똑바로 바라보도록 해. 가만히 앉아서 당신 과거를 곰곰 되새겨봐. 피상적인 것은 최고의 악덕이야. (p.231) 

     

    당신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이것 하나만 말해줄게. 과거를 두려워하지 마. 사람들이 당신에게 과거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그들 말을 새겨들을 필요 없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신이 보기에는 단 한순간일 뿐이야. (p.239)

     

    ‘심연을 들여다 보는 순간, 심연도 당신을 바라본다.’

     

    제목을 보고 떠오른 문장. 책을 읽는 내내 오스카 와일드가 연인 더글라스에게 ‘당신이 외면하려는 심연은 이것이야.’ 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편지는 버림받은 이만이 내뱉을 수 있는 원망의 말로 가득하다. 온갖 수식어로 연인의 약점을 꼬집고, 책망은 망상에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데 왠지 다정하다. 자신을 버린 연인을 여전히 사랑하며 그가 상처 입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보이는 것 같다. 편지는 당신을 용서하겠다는 선언으로 끝나고, 출소 후 그들은 재회했다. 결국 끝은 좋지 않았지만. 심연으로부터 얻은 상흔이 너무 깊었기 때문일까?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날에 다시 꺼내볼 것 같은 책. (김차경 사서 2017.10)


    오스카 와일드, 박명숙 역 『심연으로부터』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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