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주친 한 구절

[낭+독회 한구절]『장인』

by 느티나무

  •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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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놀림을 고도로 숙달한 사람은 손가락 간의 불균형이 많이 완화되는데, 엄지와 다른 손가락의 어울림을 통해서 각각의 손가락이 홀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남을 도와주는 일을 '손을 빌려준다'거나 '도움의 손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와 같은 본능적인 경험이 언어에 침투한 것이다. 사람이 손으로 하는 일은 두 손과 각 손가락의 고르지 못한 능력이 서로 보완되면서 이루어진다. 263쪽

     

    아르페지오 연주는 이런 생각에 하나의 시사점을 준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진정한 결속은 같은 기능을 가진 사람의 능력이 불균등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브 기아르가 물리적인 손동작의 조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봤던 것은 힘이 센 손가락의 자제이고, '형제애적인 손'에 담을 수 있는 뜻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사회적인 면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을까? 손기술을 숙달해갈 때 힘을 최소한으로 줄여 쓰는 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 보면, 시사점을 좀 더 얻을 수 있다. 267-268쪽

     

    결국 '밥알을 써는' 일에는 몸을 움직이는 두 가지 규칙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써야 할 힘의 기준을 최소한으로 줄여 잡는 게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놓는(힘을 빼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이 연결고리의 기술적 내용이야 동작을 조절하는 것이지만, 인간적인 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의미도 많다. 요리를 다룬 고대 중국의 책자들에는 이러한 내용들이 잘 설명돼 있는데, 일례로 [장자]에는 "주방에서는 무사처럼 움직이지 말라"는 조언이 나온다. 도가 사상은 이로부터 아주 폭넓은 호모 파베르의 도(道, ethics)를 이끌어낸다. 즉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공격적이고 적대적으로 다뤄서 득 될 게 없다는 가르침이다. 나중에 일본의 선(禪) 불교는 이 유산을 이어받아, 궁도(弓道)로 구체화된 '놓음의 도'를 탐구했다. 활을 다루는 궁도에서 훈련의 초점은 활 시위를 놓는 동작에서 긴장을 푸는 데 있다. 참선 저술가들은 시위를 놓는 바로 그 순간에 물리적인 공격 의사가 완전히 증발된 흔들림 없는 마음의 정적을 강조한다. 이러한 마음 상태라야 표적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272-273쪽  

     

    손동작의 조화에서 가장 큰 문제는 힘의 불균등인데, 힘이 서로 다른 두 손은 함께 일함으로써 연약한 부분을 교정한다. 장인이 절제된 힘을 긴장 이완과 결합해 사용하는 것은 힘을 활용하는 진일보한 방식이다. 이 두 가지를 같이 활용함으로써 장인은 자기통제 하에 몸을 쓰고 동작의 정확도도 높인다. 맹목적이고 물리적인 힘은 손동작에서 오히려 역기능을 한다. '부드러운 힘'에는 이러한 모든 요소, 즉 '약자와의 협력'과 '절제된 힘', '공격 후 이완'이 반영되어 있다. 이 독트린은 역기능을 하는 맹목적인 힘을 초월하고자 한다. 영어에서 정치술이나 정치적 수완을 뜻하는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란 말 속에 들어 있는 장인의 실기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277쪽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장인(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 21세기북스   

느티나무 소장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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