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북데일리]작은 마을 도서관이 만든 `놀라운 변화`(06.10.09)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06-11-17 조회수 : 4,655





[인터뷰]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펴낸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박영숙 관장

또래보다 늦되고 지능이 낮아, 말을 할 때면 명사만을 더듬더듬 늘어놓던 해강이. 초등학교 5학년이 돼서야 겨우 동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아이가, 박쥐를 새라고 설명한 어른의 실수를 지적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이유까지 정확히 밝혀냈다면 말이다.

“바바… 박지… 새 새… 새 아냐, 새…”

“아, 맞다. 박쥐는 새 아니지. 새처럼 막 날아다니는데. 그치? 근데 박쥐 보고 왜 새가 아니라 그러는지도 알아?”

“알… 알 아냐…. 새끼… 저 저 젖 먹어….”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알마. 2006)에 소개된 일화는 해강이가 학교와 집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에서 보낸 지 3년째 되던 해의 이야기. 아이는 글을 읽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사람들이 읽어준 책에서 박쥐에 관한 내용을 용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의 저자인,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이하 ‘느티나무’)의 박영숙 관장은 “바로 이 같은 일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뇌손상이 심해 학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아이가 도서관에서 열린 연극의 주인공을 맡은 일이 그렇다.

또한 부모의 이혼이 가져온 스트레스로 성격이 포악해져 친구들을 이유 없이 때리고 책을 찢어버리던 한 아이가 동생들을 모아 놓고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일도 포함돼 있다.

도서관을 돕기 위해, 매일 새벽 우유배달을 한 주부

사실, ‘느티나무’에는 이처럼 놀라운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단기간 내에 쉽사리 일어난 것은 아니다. 7년이란 시간동안, 꾸준히 노력해온 박관장과 곁에서 그를 도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특히 ‘독서회’ 아줌마들은 그 중에서도 일등공신이라 할만하다. 이들은 매일 아침 당번을 정해, 도서관을 청소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발달장애인 해강이와 명훈이뿐 아니라, 도서관을 이용하는 모든 아이들이 아줌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지식을 쌓고,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이야기 극장’은 독서회의 주요활동 중 하나. 그림책을 슬라이드로 찍어 환등기를 통해 보여주고, 아이들과 함께 스크린 앞에서 그림자놀이도 한다. 컴퓨터 게임과 텔레비전 등 화려한 영상에 익숙한 아이들이지만, 투박하면서도 정겨운 슬라이드에 마음을 ‘홀딱’ 빼앗겨 버렸다고.

독서회처럼 앞에 나서진 않지만, 뒤에서 묵묵히 도움의 손길을 뻗치는 이들도 있다.

갓난아기 때문에 독서회 활동을 할 수 없던 한 주부는 아이가 잠든 새벽을 틈 타 우유배달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을 십 원 단위까지 빠짐없이 챙겨 도서관에 전달한 그녀덕분에 ‘느티나무’의 책장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결혼해서 매달 만원씩을 저축한 신혼부부는 도서관에서 점심, 저녁을 해결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기된 적금을 타서 냉장고를 선물했다. 스캐너와 프린터는 도서관의 인테리어를 맡았던 업체가 무상으로 제공한 것.

2003년 박관장이 설립한 ‘느티나무문화재단’(우리나라에서 제일 작은 재단이라고 한다)의 이사들도 매달 적지 않은 돈을 도서관 운영에 보태고 있다.

이처럼 십시일반 모인 정성으로 꾸려진 ‘느티나무’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한 건 역시 박관장. 그녀는 IMF 이후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집을 전세로 옮기고, 2년 후에야 간신히 생긴 여윳돈을 도서관 설립에 ‘몽땅’ 쏟아 부었다.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읽는 놀이터죠”

자신이 지닌 전 재산으로도 모자라, 융자까지 받으며 ‘느티나무’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박관장. 그런데 그녀는 정작 도서관에서 시작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애들이 처한 환경이나 부모가 있고 없고를 떠나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부모가 아이를 자신의 뜻대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있었으면... 그런 생각이었어요.”

그저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터를 만들고, 제 힘으로 온 세상을 만나게 하기 위해 책을 들여놓다 보니, 그게 도서관이 되었다는 것이 박관장의 설명.

그래서일까. 그녀는 명색이 도서관의 관장이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책장에 손을 뻗어, 책을 꺼내 드는 날을 기다릴 뿐이다. 독서회에서 책을 읽어주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길 바라지만, 결국 무언가를 얻어내는 것은 순전히 아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배우는 게 시간은 좀 걸리지만, 나중에 보면 그게 더 빨리 가고, 멀리 가는 길이잖아요”

그렇다고, 박관장이 뒷짐만 지고 기다리는 것은 또 아니다. 책장의 높이를 아이들의 키에 맞추고, 도서관 한 켠에 ‘이야기그네’를 매달고, 입구에 미끄럼틀을 놓은 것은 모두, 아이들과 책이 가까워지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다. 때때로 책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책 꽂기 시합’을 벌이는 이유도 마찬가지.

마을 어귀의 커다란 느티나무 같은 공간

‘느티나무’가 여느 도서관과 달리,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도서관은 책을 읽기 위해 혹은 마냥 놀기 위해 찾은 아이들과 갈 곳이 없어 들른 아이들, 그리고 이들을 따라온 부모들로 늘 북적북적 댄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소리 내어 책을 읽거나 놀이를 하고, 또 서로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책을 읽는 건 사실 만남이잖아요. 몰랐던 문화, 타인의 삶 등과의 만남. 그걸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접했을 때, 혼자서 볼 때와는 책 자체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걸 다른 사람이 보니까. 책이 살아나는 느낌이랄까요.”

이 같은 박관장의 표현을 빌자면, ‘느티나무’ 역시 사람과 책,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숨결을 불어넣은 ‘살아있는’ 도서관.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마을 어귀의 커다란 ‘느티나무’ 같은 공간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도서관을 찾은 문희주(18)군에게도, 이곳은 느티나무처럼 든든하기만 하다. 어릴 때부터 사고를 많이 쳐서, 어른들에게 불려다니다가 박관장을 알게 됐다는 문군은 지금도 어디에서건 문득 `느티나무`가 생각난다. 그에게 `느티나무`는 갈 데가 없을 때에도 맘 편히 쉬러 올 수 있는 공간이라고.

이처럼 `느티나무`를 마을사람 모두가 어울리는 공동체로 키워온 박관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독서문화상 문화부장관상`(2004년), `국민훈장`(여성가족부. 2006년), `미래를 이끄는 여성지도자상`(여성신문사. 2006년)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에는 상을 통해 검증된 그녀의 독서지도 노하우와 직접 체험한 `살아있는` 독서현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진짜 요즘같은 세상에 마을에서 공동체 문화, 이런 게 되겠냐? 어린이도서관이 별다른 교육 프로그램도 없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겠냐? 다들 반신반의했어요. 근데, 되더라구요. 7년간 이곳을 거쳐간 아이들이 그 증거죠."

이처럼 살아 숨쉬는 증거들로 `무장한` 책은 경쟁의 논리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에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아이들의 독서지도를 어떻게 해야할지 불안해하는 부모들에게 책 읽는 환경만을 만들어주면 된다는 조언을 건네고 있다.

*

인터뷰 중간, 빨랫감을 한 아름 맡기고서는 며칠 후에야 나타난 희주군이 박관장이 빨아 놓은 옷으로 갈아입고,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깐장.(도서관을 자주 찾는 아이들은 박관장을 ‘간장’이란 애칭으로 부른다) 빨래 고마워”

“뭐야. 대따 안 어울려. 저거 다 방송용 멘트에요”

박관장은 아이가 처음 표현한 마음에 마냥 어색해하며 웃었지만, 눈가엔 어느새 눈물이 그렁거렸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녀의 모습은, 작지만 커다란 일을 해나가는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그 자체였다.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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