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경기 용인시 '느티나무도서관'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2-11-29 조회수 : 6,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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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용인시 '느티나무도서관'


2000년 2월 지하 사립문고로 시작… 주민의 기부로 2007년 도서관 설립
도난방지 시스템 설치하지 않아도 잃어버린 책보다 기부한 책이 많아
주민들이 책 보수·읽기 자원 봉사
후원자 500여명 연간 2억원 모아 기부금으로 작은도서관 3곳 후원도




경기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 아파트 상가에 위치한 '느티나무 도서관'. 1층 입구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커다란 나무 그네에 걸터앉아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도서관 왼쪽의 '사랑방'에는 세 살배기 자녀와 엎드려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엄마, 장난감을 쫓아 마루방을 기어다니는 아기들도 보였다. 1층과 2층 사이의 다락방에는 만화책이 가득했고, 뒷문에는 마당으로 곧장 이어지는 알록달록한 색깔의 미끄럼틀이 설치돼 있었다. 도서관 곳곳에서 이웃사촌, 옆집 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할아버지와 학생들로 북적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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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도서관 1층 전경.



하루 평균 600명, 주말에는 1000여명의 주민이 이곳을 다녀간다. 하루 대출 권수도 1000권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이곳엔 도난방지시스템은 물론 그 흔한 CCTV조차 없다.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재단 이사장은 "책 잘 잃어버리는 도서관이 이 도서관의 모토"라며 미소를 지었다.



"도난방지시스템을 설치하는 데 최소 1300만원이 들더군요. 직원들이 '차라리 1300만원어치 책을 잃어버리자'고 입을 모았어요. 주민들이 그만큼 책을 읽고 꿈을 꾼다면, 도서관은 1300만원보다 더 값진 것을 얻게 되니까요. 13년간 느티나무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잃어버린 책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책이 훨씬 많습니다."



◇지하상가의 '사립문고', 용인시의 '사랑방' 되다

2000년 2월, 당시 용인시 수지읍(현 수지구)에는 신도시 개발 때문에 가건물에 사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많았다. 기존에 살던 주민들과 신규 유입자들 간의 빈부 격차도 심화되고 있었다. '온 동네 주민이 함께 모이고, 쉬어갈 수 있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박 이사장은 사재 3000만원을 꺼내 들었다. 아파트 상가 지하에 40평 남짓한 규모의 사립문고를 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벽에는 미대생들과 함께 벽화를 그렸다. 계단 대신 1층에서 바로 도서관으로 들어올 수 있는 미끄럼틀도 설치했다. 그림책장, 청소년 책꽂이, 부모 책꽂이를 따로 만들고, 1만2000권을 채워넣었다.


당시 용인시에는 시청 앞에 있는 도서관 하나가 전부였다. 수지구에서 도서관에 가려면 2시간 반 동안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갈 곳 없고, 놀 곳 없던 아이들이 느티나무 도서관으로 몰려들었다. 아파트촌 아이들도, '원주민'이라 불리던 아이들도 이곳에서 하나가 됐다.


부모들은 도서관 사서가 됐고, 이웃 아이들의 '책 읽어주는 엄마'가 됐다. 발 디딜 틈 없이 이용자가 많아졌고, 대출 권수를 늘려도 책을 둘 곳이 부족했다. 박 이사장은 이사를 결심했다. 2007년 11월, 느티나무 도서관은 이사회와 정기후원자, 상시 기부자의 도움으로 약 360평(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도서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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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집이자 학교이자 놀이터이다.


◇자발적인 주민들의 기부, 자립의 원천


느티나무 도서관 입구에는 주민들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판이 설치돼 있다. 도서관에 기부한 이들의 명단이다. 박 이사장은 "소액 개인 기부자들은 느티나무 도서관의 힘"이라고 했다. "어떤 가족은 10만원어치 외식을 계획했다가, 식사비로 5만원만 사용하고 나머지 5만원을 도서관에 들고 옵니다. 자녀가 어려서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지 못했던 한 어머니는, 아기가 잠든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고, 당일 받은 봉투를 뜯지도 않은 채 기부해주셔요. 동생 장례식으로 받은 조의금을 들고오신 분도 계셨어요. 기부금을 좀 더 의미 있는 일에 쓰기 위해서 2003년에 '느티나무 도서관재단'을 만들었어요. 소액 기부로 참여한 주민들이 정기후원자가 되면서 도서관의 재정이 점차 탄탄해졌습니다."



느티나무 도서관의 정기후원자는 약 500명. 전체 수입의 49%를 차지한다. 느티나무 도서관재단의 이사들은 매월 100만~300만원씩 기부한다. 박 이사장은 원고료나 강의료를 전부 도서관에 기부한다. 이렇게 1년에 모이는 개인 기부금만 무려 2억원에 달한다. 기업 후원금은 지역의 작은 도서관들 인건비로 100% 기부한다. "도서관 운영비의 절반 이상이 인건비로 지출돼요. 재정이 어려운 작은 도서관들과 '친구도서관'을 맺어서, 가장 시급한 고민을 해결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3곳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좋은 도서관의 첫째 조건은 '사람'이에요. 아무리 책이 많고, 건물이 커도, 도서관을 꾸려가는 사람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좋은 도서관이 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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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재단 이사장(가운데)은 “책을 통해 사람이 만나고, 전국의 마을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이

느티나무도서관이 품은 비전”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지원활동으로 마을공동체 살아나


느티나무 도서관에는 자원활동가 250명이 있다. 도서관을 꾸미고, 책 표지를 싸고, 포스터를 제작하고, 자료를 번역한다. 이들은 자료를 수집·검토하고, 작가를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느티나무 도서관이 소장하는 5만권의 책 모두 주민들이 골랐다. 제본용 실을 이용해 찢어진 책을 보수하는 팀도 따로 있다. 10년 넘게 모임에 참여한 주민들은 '책 보수'의 전문가가 됐다.



느티나무도서관에는 추천 도서 목록이 없다. 박 이사장은 "주민들은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으면 책꽂이 위에 책을 세워둔다"면서 "느티나무 도서관만의 약속"이라고 했다. 자원활동은 독서회 모임으로 이어졌다. 주민들은 인문학 서적, 추리물, 로맨틱 소설 등 관심사가 같은 이들끼리 모여 독서 모임을 갖는다. 이들은 독서회마다 멘토를 지정했다. 7~10세 또래로 구성된 독서회 '책또래'는 중학생 멘토가 책을 읽어주고 있다. 아이들에겐 또 한 명의 형, 누나가 생겼다. 주민들의 아이디어는 느티나무 도서관의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발전해왔다. 책을 읽어주는 자원활동가는 항상 '커다란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많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었지만, 그림책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디어는 환등기로 그림책을 벽에 분사해 읽어주는 '이야기극장' 프로그램으로 발전했고, 매주 수요일마다 13년째 계속되고 있다. 시각장애를 가진 자원활동가는 환등기 전원과 실내조명을 모두 끄고, 점자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전국에 800개 공립도서관이 있어요. 이들이 시스템과 민원 때문에 할 수 없는 시도를 우리가 실험하고, 좋은 사례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성북구에서 저희에게 위탁운영을 맡긴 공립도서관 세 곳도, 독서모임이 생기는 등 공동체가 살아나고 있어요. 책을 통해 사람이 만나고, 전국의 마을공동체가 살아나는 것. 느티나무도서관이 품은 비전입니다."


정유진 더나은미래 기자 blosso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