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한겨레신문 2014.06.24] 느티나무도서관재단 중국조선족도서실 협력사업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4-06-23 조회수 : 4,077

00507323101_20140623.jpg


“조선족학교에 도서관 있어야 아이들 시야 넓어집니다”


[짬] 중국 조선족학교에 도서관 지원
홍상영 ‘우리민족’ 사무국장

백두산 기슭에 위치한 중국 길림성 장백현 ‘장백현조선족실험소학교’ 학생들에게 지난 13일은 큰 잔칫날이었다. 전교생 320여명이 압록강변에 자리잡은 학교 운동장에서 매스게임을 벌였고, 문예소조인 ‘진달래예술단’ 소속 학생들은 물동이춤 등 각종 민속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학생들의 공연은 이날 학교 안에 ‘멋진 도서관’이 문을 연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두 개의 교실을 터서 만든 40평 남짓한 도서관의 책장들에는, 중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한글 도서 수천권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도서관의 이름은 ‘네모상자’. ‘네가 꿈꾸는 모든 것을 상상해봐, 자유롭게!’를 줄인 말이다. ‘네모상자 도서관’은 2012년 10월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 신동소학교에서 처음 선보였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사장 영담 스님, 이하 우리민족)이 중심이 돼 한글 도서를 모으고 책장이나 온돌 등 시설을 갖춰 문을 연 것이다. 우리민족은 이후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시 북안소학교, 흑룡강성 오상시 오상조선족중학교 등 5곳에 ‘네모상자’를 만들었다.

6번째 네모상자 도서관 개관 행사장에서 홍상영(48·사진) 우리민족 사무국장을 만났다. 네모상자 사업의 애초 발의자인 홍 국장은 도서관 개관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10명과 함께 이날 행사에 참석했다.

길림성 장백현 실험소학교에
6번째 ‘네모상자’ 도서관 문열어
학생 급감추세에 ‘단비’같은 도움
“우리는 소중한 기부 전달할 뿐
도서관 잘되면 경쟁력 높아질것”

“‘우리민족’은 단지 심부름꾼입니다.”

홍 국장은 네모상자 도서관 사업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밝혔다. 이번 장백 조선족 학교 네모상자 도서관의 경우도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이 학생들의 폐교과서를 모아서 기금을 조성할 수 있게 도와준데다, 농협 경기영업본부가 사회공헌사업의 하나로 기부금을 냈다. 또 경기도 용인시 느티나무도서관은 도서관 운영을 지원하였고, 권정생어린이재단과 도서출판 비룡소에서는 신간서적을 지원했다.

네모상자 도서관은 학생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는 조선족 학교들에는 ‘단비’ 같은 존재다. 조선족 학교는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1500여곳 가까이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250여곳에 불과한 실정이다. 장백 조선족 소학교만 해도 10여년 전 600명에 이르던 학생이 현재 320여명으로 반 토막이 난 상태다.

이렇게 학교와 학생수가 줄어드는 것은 조선족 학부모들이 한국이나 중국 내 대도시로 이주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아 있는 조선족 부모들 중에서도 아이를 조선족 학교가 아닌 한족 학교에 보내는 이가 늘고 있다고 한다. 홍 국장은 이런 현상에 대해 “어차피 중국에서 한족과 경쟁하며 살아야 한다면 중국어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이런 현상은 조선족 학부모들이 현재 조선족 학교에서 실시하는 ‘이중언어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조선족 학교의 이중언어 교육은 우리말과 중국어를 동시에 가르치는 것이다. 이를 잘 운용하면 2개 언어를 모국어처럼 할 수 있지만, 둘 모두 미흡할 수가 있다.

현재 조선족 학교 이중언어 교육에서 큰 걸림돌은 한글 도서 부족이다. 홍 국장은 “독서는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교육”이라며 “그러나 현재 대다수 조선족 학교에는 한글 책이 거의 없어 제대로 된 한글 독서교육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국장은 “네모상자 도서관 사업이 잘된다면 독서교육이 활성화되고 결국에는 조선족 학교가 다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홍 국장은 네모상자 도서관을 1년에 1~2곳 정도밖에 늘려갈 수 없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무엇보다 재원 부족 탓이 크다. 네모상자 도서관 한곳을 만드는 데 3천만~4천만원가량의 자금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은 도서관 건립 사업과 함께 한글 도서 보급 사업도 벌이고 있다. 제대로 된 도서관이 없는 곳에도 급한 대로 책부터 우선 보내주는 것이다. 지난해의 경우 경기도교육청 등의 도움을 받아 3만여권의 한글 도서를 모은 뒤, 이를 중국 내 조선족 학교 50여곳에 나눠줬다.

그러나 홍 국장은 이 사업을 지나치게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보는 것은 경계했다. 네모상자 도서관 사업의 목적이 “‘민족교육’이 아니라 ‘도서관을 제대로 잘 운영하는 학교’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홍 국장은 “조선족 아이들은 중국에서 태어나 남한뿐 아니라 북한과도 교류하면서 자라난다”며 “제대로 된 도서관은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의 시야를 크게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명선(51) 장백현조선족실험소학교 교장 선생님도 “네모상자 도서관이 아이들에게 세계가 넓음을 보여주는 통로가 될 것”이라며 “도서관 지원 사업은 단순한 물질적 방조가 아니라 우리에게 꿈을 주는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장백현(중국)/글·사진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tree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