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5 : 가르치기 전에 배워야 할 것들
사회를 담는 컬렉션에 대한 예비사서들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번 컬렉션은 <E5 : 가르치기 전에 배워야 할 것들>입니다. E5 컬렉션은 배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고 있는 컬렉션이라고 해요. 갈수록 확신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끼는 어른들이 불안을 누르고 미래를 합리적으로 상상하기, 배움이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기, 다음 세대에 대한 존중과 공존의 지혜를 배우기에 도움 될 자료를 모으려 애썼다고 합니다. 그럼 솔직하고 때로는 진중하며 종잡을 수 없는 예비사서들의 대화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Q1. 요즘 배우고 있는게 있나요?
지연) 예비사서 인턴십을 하면서 도서관에 대해 배우고 있어요. 현장 실무 능력보다 도서관과 사서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도서관을 더 재밌게 만드는 낯선 발상들 행사 이후 도서관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아요.
다현) 우와 멋있네요. 저는 요즘 사주 배우고 있는데.
희연) 다현님 에니어그램도 배우고 있잖아요.
다현) 제가 유사과학을 매우 좋아해서. 이런 저 사기꾼이나 사이비처럼 보이진 않겠죠?
희연) 확실히 조심하긴 해야겠네요. (웃음)
다현) 겁먹지 마세요. (웃음)
지연) 희연님은 요즘 뭐 배우고 있나요?
희연) 인턴십 말고는 따로 배우는 게 없어요. 너무 바보 같나요? 제가 동시에 다양한 걸 못해요. 공부할 때도 공부만 해야하고, 놀때도 놀기만 해야해요. 어릴 때부터 한 우물만 파는 성격이었어서 도전하는 거 자체를 즐기지 않는 것 같아요.
다현) 저는 이것저것 약간씩 손대보는 스타일인데.
희연) 두려움이 많아서 도전이 어려운가봐요.
다현) 반대로 한 우물만 팠을 때 망할까봐 두려운 것도 있지 않나요? 이것 저것 하고 있으면 하나 망해도 다른 거 해도 되잖아요. 희연님과 반대로 한가지 일만 했을 때 망할까봐 두려워 저는 이것 저것 시도 해보는 것 같아요.
Q2. 가장 즐겁게 배운게 있었나요?
희연) 일방적인 가르침 받는 걸 별로 안좋아해요. 뭐든 혼자서 배우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혼자 배우는 시간을 즐거워 한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지금 생각나는 건 종이접기예요. 만들다가 불 붙으면 꽃을 몇 다발씩 만들고 그랬어요.
지연) 꽃집 갈 필요가 없었겠네요.
희연) 혼자 배우고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느끼는 쾌감 아시나요? 진짜 장난 아니에요.
다현) 희연님은 그럼 학원을 다녀본 경험이 없으신가요?
희연) 초등학생 이후론 없어요. 초등학생 때 2년 정도 학원에 다녔는데 문제를 틀리거나 떠들면 체벌이 있었어요. 그게 정말 괴롭고 싫더라고요. 이후로 사교육을 받아본적 없어요.
다현) 저는 재밌었던 것보다 기억에 남는 배움이 있어요. 승마를 배웠는데 정말 엄청난 균형 감각이 필요하구나 느꼈어요. 우아하고, 열정적인 스포츠인줄 알았는데 그냥 떨어져 죽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발버둥친 시간이었거든요.
희연) 배운건 많은데, 재밌게 배운 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말하라고 하면 힘든 것 같아요. 뭔가가 재밌게 기억되는 건 되게 여러운 것 같거든요. 그리고 배움과 취미생활의 경계도 애매한 것 같아요. 취미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기도 하니까요.
다현) 그만큼 배움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아요.
지연)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아직까지 배웠으면 결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수학을 배우면 시험 성적을 올려야 하고, 피아노를 배우면 소곡집 정도는 칠 수 있어야 하는 등 과정보다는 결과 중심으로 배움을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듯 해요.
희연) 배움과 학습을 동일어로 쓰기도 하죠. 꼭 배움은 교육과정을 통해, 학습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아닌데도 말이죠.
다현) 반대로 삶에서 배우는 것이 진짜고, 학교에서 책으로 배우는 건 진정한 배움이 아니라는 생각도 일부 있는 것 같아요. 배움과 교육을 서로 동일시 하는 것도, 배척하는 것도 좋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Q3. 변화하는 사회의 속도를 교육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여러분이 경험한 교육의 한계나 문제점이 있나요?
지연) 제가 다닌 학교엔 우등반이 있었어요. 내신 1등부터 30등까지 뽑아서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공부를 시켜요. 제가 그 반에 속해 있는 학생이었는데 공부가 끝날 때까지 교실 문을 잠가서 못나가게 했던 게 기억에 남아요.
다현) 헉. 급한일이 있거나 화장실 가고 싶으면요?
지연) 수능 시험 볼 때도 화장실 갈 거냐고 그냥 다 참으라고 해요. 한국 교육이 확실히 역행하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희연) 이렇게 입시에 과몰입해 있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에 맞지 않는 교육법을 급진적으로 가지고 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 자유학기제도 취지는 좋지만 그걸 경험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되게 불안할 수 있단 말이에요.
다현)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아서 이 문제를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저는 대안학교를 나왔잖아요. 어떻게 보면 여러분이 이야기한 자유학기제를 중, 고등학생 동안 경험 했어요. 일부 교과를 제외하곤 시험을 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런 교육에 개인적으로 불편함은 없었어요.
희연) 하지만 문제는 제도권 교육은 한 학기 동안만 시험이 없다는 거예요. 결국 자유학기제가 끝나면 다시 시험을 봐야한다는 거죠.
다현) 시험 자체에 비중을 두지 않았던 저희 학교의 상황과는 또 다르네요.
희연) 그래서 근본적으로 시험 자체에 대한 부담과 불안을 낮추는 데에 공을 들이면 좋겠어요. 지금의 공교육은 수능을 위한, 대학 입학을 위한 교육으로 자주 평가 되잖아요. 그게 너무 아쉬워요.
지연) 서구권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대학 입학이 어렵고, 졸업이 쉽잖아요. 그래서 대학에 와서 공부를 더 안하게 되는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까지 배우는 교육은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단이지 그게 능력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Q4. 만약, 배우는 입장이 아닌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다현) '호기심을 왕창 자극'해줄 거예요. 컬렉션 중에 『나는 이 질문이 불편하다』 안광북(어크로스)란 자료가 있어요. 낯설고 도발적인 22개의 물음을 던지는 책인데요.
지연) 감정적인 사람은 무책임할까? 나는 도대체 왜 살고 있나? 되게 원론적인 질문도 있고, 색다른 질문도 있네요.
다현) 살면서 마주치는 갈등을 해결해가는 건 나잖아요. 그런 내가 단단해지기 위해선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갈등을 지혜롭게 풀어갈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고 느꼈어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이요. 희연님은 어떤가요?
희연) 전부터 생각했지만 제가 교육자의 위치에 간다면 '편애하지 않을 거'예요. 당연히 사람이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선생님이라면 그걸 티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이 기울어져 있다는 걸 느끼는 순간 학생들은 불평등을 느껴요. 이런 감정들은 호기심이나 열정까지도 꺼트린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은 평등해야 된다고 봐요.
지연) 말장난같지만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면 가르치지 않으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지만 반대로 나도 너로인해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 교육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무시 될 때가 많잖아요. 학부모나 선생님들의 의견이 지배적이기도 하고요. 교육은 상호작용인데 그런게 없으니까 다들 학교 수업 때 재밌었던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다현) 학생도 학생에게서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자의 말 중에 세 명이 길을 떠나면 그 안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말이 있어요.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면 어디서든 배울 수 있다는 뜻이래요. 신분, 나이, 선인과 악인에 관계없이 모든 이에겐 배울점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배움에 대한 열린 생각도 되게 중요한 마음가짐 중 하구나 생각했어요.
Q5. 도서관이 배움을 북돋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지연) 배움을 위해 도서관이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 (먼산) 우선 우리 도서관이 배움을 잘 북돋고 있는 건 사회를 담는 컬렉션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호기심도 없고, 뭘 읽어야 될지 모를 때 사담 컬렉션을 많이들 찾는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좋은 자료들을 많이 읽고, 계속해 의논하는게 도서관이 해야할 일 같아요. 그리고 우리끼리만 노력하기보다는 사회에서 도서관과 배움에 대한 인식이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희연) 음, 사람들에게 답을 내려주는 공간이 아니라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공간이 되면 배움은 저절로 따라올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선 누구든 편안하게 찾아올 수 있도록 공간을 꾸려가야겠죠?
다현) 맞아요. 도서관이 배움을 일방적으로 줄 수는 없지만 고민의 실마리 정도는 함께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그 불편함은 어디로부터 오고, 어디로 향하는지 등 사서들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료를 모아야 한다고 봐요. 도서관의 이미지를 정적으로 많이들 그리시지만 사실 엄청나게 역동적이고, 역동적이어야 한다는 걸 느티나무에 와서 많이 느꼈어요.
Q6. 여러분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싶나요?
지연) 포토샵을 배우고 싶어요. 도서관 홍보물 만들 때 생각하는 방향과 결과물이 달라서 늘 힘들거든요. 잘하는 건 바라지도 않고 평균 수준으로만 딱 오르고 싶은 마음.
다현) 너무 공감돼요. 머릿속에서 그림은 그려지는데 표현은 안 될 때 답답하죠. 그리고 눈은 높아져서 내가 만든 홍보물이 별로라는 것만 알죠. (웃음)
지연) 그리고 폭 넓게 배경지식을 쌓고 싶어요. 사회 전반적인 흐름을 읽는 것도 중요한 것 같고요. 자료구입회의 할 때 사서분들이 이야기하는 거 네이버에 몰래 검색해 봐요. 잘 모르는 이야기가 많거든요.
희연) 맞아요. 우물안의 개구리였다는 걸 도서관 와서 많이 느꼈어요. 내가 좋아하는 분야만 여태까지 배우고 익혀왔다는 것도요. 심지어 제가 좋아하는 건 대중적이지도 않아서 이야기하지도 못해요.
다현) 예비사서들 느끼는 게 다 비슷했군요. 희연님은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희연) 전부터 목공 배우고 싶었어요. 집중해서 만드는 걸 좋아하다보니 그런 것 같아요.
다현) 희연님이랑 잘 어울려요!
희연) 그리고 정말 가끔 아주아주 가끔이지만 운동도 배워보고 싶어요. 이대로 살다간 운동부족으로 죽을지도 모르거든요.. 살기 위해 배워야 한달까.
지연) 얼굴에 죄책감이 너무 많이 묻어나보여요.
다현) 전 요리 배우고 싶어요. 먹는 건 좋아하는데 하는 걸 잘 못하거든요.
지연) 제가 봤을 때 이 질문은 바뀌어야 해요. '당신이 가지고는 죄책감이 무엇인가요?'로. (웃음)
다현) 생각해보면 배우고 싶은 건 대게 제가 못해서 같아요. 잘하면 배울 필요가 없잖아요.
지연) 부족함이 배움의 동기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
희연) 그치만 전 부족함도 열등감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시작 안 할 때도 있어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다현) 저도 마찬가지예요. 부끄러운게 편한 감정은 아니니까요.
지연) 하지만 부끄러움 만큼 내가 성장할 수 있다고들 하잖아요.
희연) 딱 감당 할 수 있는만큼의 부끄러움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