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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북클럽 TBS] 일곱번째 이야기(2), '어디에 사는가'는 '어떻게 사느냐'이다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4-06-21 조회수 : 11,050

본문편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글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 저자
 
오늘 북클럽에는 새로운 멤버가 등장했습니다. 남양주 와부도서관에서 독서모임을 오래 하셨던 분으로 최근에 용인으로 이사를 왔다가 자유롭게 열려있는 독서모임이라 찾아 오셨다합니다. 함께 읽기로 한 책의 마음에 든 부분을 공책에 가득 적어와 다른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도시에서 살지만 공동체에 관심이 많고 남양주에서는 직접 집도 지었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주말에는 주말에는 그곳에 가 텃밭을 일군다 했으니 오늘 읽는 책의 저자와 생각이 참 비슷한 사람이었습니다. 먼저 우리들이 함께 나눈 이야기부터 옮겨적습니다.
 
"직장이 도시에 있는데 시골에 들어가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삶의 내용을 바꾸는 일이다. 도시에 살기 때문에 주거비, 교통비, 교육비, 외식비, 전기료 등이 훨씬 더 많이 들기도 한다. 꼭 필요한 만큼만 벌고 쓰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 마을을 살리고 그 마을을 중심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 좋을 듯하다."
 
"도시에 산다는 것은 소비와 생산이 나누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전기가 나가도 아파트 관리아저씨부터 부르는 우리가 시골에 들어간다면 살수 있겠는가? 장마철 집에 물이 새면 산세이처럼 해결할 수 있는가? 우린 그렇게 자라지 않았다. 스스로 혼자 잘 살 수 있는지부터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공동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시작해야 한다."
 
"도시 삶에 익숙해져 오랫동안 살았는데 시골이나 산골에서 살라고 한다면 용기가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잘 적응해서 할 일을 찾아 사는 편이라 정작 내려가면 잘 살 듯하다. 굳이 내려가야 할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선택하라면 하지 않겠다."
 
"직장이나 학교 문제로 이사하는 일도 예삿일이 아닌데 하물며 도시에서 시골로 간다니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할 듯,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삶이 완전히 바뀌는 문제인데."
 
"산세이가 섬의 마을을 살리고자 모임을 만드는 부분이 좋았다. 지금 필요한 일이다. 도시에서도 이런 모임을 만들어 어떻게 살지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고 실행에 옮기면 좋겠다. 당장 '시골에 내려간다' 이런 문제보다."
 
"어디에 사는가보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산세이도 생각은 지구크기로 하고 행동은 지역에서 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미래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기는 일부터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혼자 살 때는 개울물을 마시면 되지만 여러명이면 그걸로 살 수는 없다. 시골에 가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려는지 깊게 생각해야 한다. "
 
"변산공동체, 홍동 갓골마을처럼 그런 곳을 선택하는 것도 좋고 새롭게 마을을 만들어도 좋을 것이다. 이런 곳이 있음을 알리는 일 자체가 다른 선택이 가능함을 알려주는 표식같을테니."
 
"길들여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도시의 편리함과 편안함에 길들여지지 않기 같은 것 말이다."
 
"다양한 삶이 더 많은 곳에서 시도되어야 한다. 획일적인 삶이 우리네 삶을 피폐시키고 자연을 파괴해서 설 자리를 잃게 한다. 되든 안 되든 시도를 해 본다."
 
 
도대체 오늘 읽은 책이 무엇이길래 이런 대화가 오고갔을까요? 6월 함께 읽은 책은 [여기에 사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산세이는 미국의 데이비드 소로우보다 더 파격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소로우는 1년 동안 고향 마을의 숲으로 들어가 살았습니다. '월든'이란 이름의 작은 호수옆 통나무집에서 혼자 살았던 경험을 책으로 썼지요. 산세이는 아예 현대 문명과는 완전히 단절된 곳에 온 가족이 함께 들어가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저자가 살았던 야쿠섬은 일본의 남쪽 가고시마 현에 속해 있는 작은 섬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에니메이션 [월령공주]의 배경이 될 만큼 태고적 자연풍광을 그대로 갖고 있는 곳이지요. 덕분에 농사를 지어도 수확물을 온전히 먹기 어렵습니다. 산 짐승들이 사람 먹으려고 지은 농삿물과 자연물을 구분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기껏 심어 수확할 때에 이른 자두나 고구마 등을 귀신같이 알아채고 해치웁니다. 산짐승들이 먹지 않는 토란 정도만 완전히 사람차지라 했습니다. 야쿠 섬 크기는 제주섬의 1/5크기라고 하는데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자연유산지역입니다. 섬에는 수령이 7200년 된 삼나무가 있는데, 산세이는 이 나무를 보러 20년 동안 열번 넘게 산을 올랐습니다. 신석기 시대에 태어나 지금까지 산 나무는 거의 인류와 나이가 비슷합니다. 조몬 삼나무와 영혼으로 교감하던 산세이는 야쿠섬에서 수렵과 채집을 기본으로 살았습니다. 꼭 필요한 공간만 만드는 등 물질문명을 최소한만 이용했습니다. 인간이 자연 그 자체로 산 셈이지요. '산세이의 선택과 야쿠섬에 사는 즐거움'은 고대로 돌아간 듯 보이지만 실은 미래 인간의 삶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궁금하면 찾아나서고, 불편하면 개발하고, 없으면 만들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물질문명을 이룩해왔습니다. 땅 속을 모두 헤집어 지하철을 만들고 100층 이상의 건물을 세우고 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위대한 종족, 인간에게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자연친화적이고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이어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몇 년전부터 귀농과 귀촌은 사회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막연한 시골살이를 꿈꾸는 사람에게 쓴 소리를 한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란 책이 등장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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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지만 자연과 하나였던 시절의 본능이 살아 꿈틀거립니다. 그 곳에서 보내오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신호, '인류의 위기' 또한 감지하고 있는 거지요. 아파트에서 벗어나 작은 집을 짓는 사람, 도심 옥상이나, 공터 같은 곳에 텃밭 농사를 짓는 분들, 귀농 혹은 귀촌을 꿈꾸는 사람들, 늦은 밤 도서관에 앉아 [여기에 사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들까지 이제야 말로 '생각은 지구처럼, 행동은 지역에서'라는 산세이의 말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에필로그 글쓰기편
글을 쓰는 일은 생각을 옮겨적는 일이기도 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을 비로서 '생각'토록 하는일이기도 합니다. 화요북클럽에서의 글쓰기는 후자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작가가 되고자 글쓰기를 연습하는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클럽에서는 삶을 읽고자 책을 읽듯이 쓰기 또한 생각의 근원을 쫓는 '쓰기'를 지향합니다. 어찌 보면 쓰기가 읽기보다 곱절 힘이 듭니다. 힘은 두배로 들지만 터져 나온 글은 생각의 1/10도 표현 못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아직 생각이 여물지 않았다는 거지요. 저도 대부분 이렇습니다. 책을 읽고 난 직후, 영화를 본 바로 다음, 그것에 대해 글을 쓰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읽은 것에 압도 당한거지요. 그 어떤 것도 제것이 되지 않은 상태라 글로 옮길수도 없고 무엇을 봤는지 말로 하기로 어려웠습니다. 책을 안 보이는 곳에 두고 한참 동안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문득 다시 그 책 생각이 났습니다. 이때에는 책을 한 페이지도 펼치지 않고 온전히 제 생각만으로 글을 썼습니다. 저자 이름도 틀렸고 주인공과 그 친구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줄거리도 책에 씌여진 내용과 달랐지만 저의 생각이 비로서 생겼음을 알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책의 내용을 제대로 잘 기억하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 책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의 삶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런 일을 몇 번 경험한 후 글을 쓸 때에는 참조자료 하나도 없이 무작정 제 생각부터 쓰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지금도 좋은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자유롭게 생각하는 일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그리 생각합니다. 남의 말이나 표현이나 생각을 자신의 머리에서 빼내는 일, 떠 오르는 제 생각들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일부터 시작하면 어떨는지요. 나의 생각부터 단단하게 만들고 그 내용을 스스로 장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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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대학이 출간한 [힘있는 글쓰기]의 저자 피터 엘보는 다른 사람의 생각에 주눅들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기만 해도 '힘있는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라고 할 때 '왜 그렇지? 난 도무지 모르겠다, 유치하더구만.", "그거 진짜야?", "내가 좀 더 알게 되면 그때 말해볼께, 기다려줘." 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라는거지요. [힘있는 글쓰기]의 한 부분으로 6월의 화요북클럽을 마무리합니다.
"사람들이 진짜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자신의 힘에서 달아나기 위해서다. 원래대로 강하게 살아간다는 것,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는 것에는 뭔가 무시무시한 면이 있다. 그것은 훨씬 더 큰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7 15 7시 화요북클럽에서 함께 읽는 책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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