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하면서, 가치 있게 하자.”
~ 느티나무재단, ‘수세미다(修世美多)’를 만나다 ~
* 삼삼오오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5개의 팀을 만납니다. 삼삼오오 지원사업은 지역 돌봄, 로컬푸드, 대안 교통, 자원순환 등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팀들과 함께합니다.
최영윤(좌), 엄성범(우) 씨와의 인터뷰(2023.10.21.토)
학교는 만남의 공간. 학교 안에서는 학생과 선생이 만난다. 그렇다면 학교 밖에서는 누가 만날까.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이우학교에서는 학교 텃밭에 각자 씨앗을 심던 학부모들끼리 만나 지역 공동 텃밭을 가꾼다. 3년 전부터 시작한 이 모임의 이름은 ‘수세미다(修世美多)’로, 용인 동천동과 충주 앙성면의 텃밭에서 수세미와 친환경 작물을 재배한다.
올 가을 느티나무재단은 엄성범, 최영윤 씨를 만나 작은 학교 텃밭에서 시작해 지역사회에 작물을 들고 나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이, 밭이 진짜 말도 안 되는 환경이었어요. 근데 되게 재밌게 했어요.”
팀원들은 활동해 온 3년이 고민과 문제 수습의 연속이었다고 이야기한다. 모임이 생긴 뒤 처음 일구던 학교 공동 텃밭은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함께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은 서로가 계속 모이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문제는 이들의 모임이 자녀가 이우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사라질 처지라는 것이었다. 그때 모여서 생각해 낸 대책이 동천동 생공텃밭이었다. 감사하게도 주변인들이 땅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거듭된 회의와 몇몇 도움의 손길로 수세미다는 동천에 이어 충주 앙성에 더 큰 공동 작업장을 가질 수 있었다.
공간이 해결되자 시간이 또 문제가 되었다. 앙성까지 거리가 꽤 멀어서 이동시간만 1시간 반, 왕복 거의 3시간이 걸리는 탓에 더욱 모이기 힘들었다. ‘주중에는 아무 사람 기척도 없고 하니 고라니 맛집만 만들어 주었다.’는 웃픈 일화까지 생겨났다. 엄성범 씨는 “식물이 되게 웃긴 게 사람 손만 타는 게 아니라 눈도 타더라고요. 그 한 번 한 번 들여다봐 주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고라니가 잎을 따 먹기도 하고, 흙도 수분이 금방 말라서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데 그게 힘든 거죠.”라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앙성 텃밭은 주변에서 쉽게 물을 구할 수 있었고 땅도 넓었다. 모임 안에서 행정, 기획, 농업 기술 등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살려 역할도 배분했다. 시간은 부족했지만, 모일 공간이 생겼고 모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는 힘든 농업 활동을 공동체 안에서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엄성범 씨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업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들과 모여 땀을 흘리는 경험이 성과 위주로 살아왔던 본인의 삶에 중요한 변화를 주었다고 이야기했다. 최영윤 씨는 “같이 밥 먹고 얼굴 보는 활동을 계속하는 것이 좋다. 기왕이면 만나서 농사도 짓고 노는 것이 좋지 않겠냐.”며 말을 덧붙였다. 이어서 “같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좋은데, 하나를 더 보태서 수세미 농사 사업을 하자.”고도 제안했다. 지역에서 받은 것들을 다시 돌려주자는 취지였다.
수세미다의 의미는 ‘세상을 닦아서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자’는 것이다. 알린다면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알리고, 알려야 한다면 개인이 아니라 지역사회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이 같이 공유하고 있는 모임의 취지다.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다.
수세미를 기르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학부모라는 공통점이 있는 이들은 다들 집안일 경험이 있었고 주방에서 쓰는 수세미까지 생각이 닿았다. 수세미를 재배해서 주민들과 나눌 수 있다면 환경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작물 선택에 한몫했다. 수세미는 수확이 끝이 아니라 그 뒤에도 삶고 말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른 작물보다 병충해에 강해 여름에도 비교적 잘 버티고, 자연적으로 말려 설거지할 때 사용하거나 자잘한 수세미는 청으로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활용 방법도 다양해 수세미다의 재배 작물로는 최적이었다.
“말보다는 한번 사용해 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관심 있는 사람들은 알아서 찾아 쓰겠지만 아닌 사람들은 힘들 테니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장터에 나간 거죠.”
텃밭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펼쳐진 해도두리 장터는 초록색으로 가득한 이들의 텃밭과 다르게 온갖 색으로 뒤섞였다. 작년 5월에 이들은 재배한 수세미를 가지고 동천동 주민들 앞에 내놓았다. 해도두리 장터와 이우생공에서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단순히 수입을 목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저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함께 좋은 것을 나누고픈 마음에서였다.
앙성까지 텃밭이 늘어나고부터는 더 많은 작물을 재배할 수 있었다. 수세미에 이어 호박, 옥수수, 고구마까지 품종을 늘렸고 다른 풀이 자리지 못하도록 비닐을 씌우는 작업부터 파종까지 모두가 함께 했다. 올해는 500평 정도 되는 앙성밭에 고구마만 절반 이상을 심었다. 모종을 얼마나 심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고 규모도 아직 마을 안에 있지만 사람들은 계속 모여서 회의를 하고 결과물도 낸다.
“결과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뭔가를 항상 해요. 안 하지는 않아요.
근데 올해도 하기 시작했어요.”
이들은 언젠가 수세미다가 지금보다 넓은 지역까지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언제’가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더 많은 손길이 닿고 사람이 모였을 때 수세미다가 활동할 수 있는 무대도 분명 넓어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