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 : 결혼하지 않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
사회를 담는 컬렉션에 대한 예비사서들의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번 컬렉션은 <E1: 결혼하지 않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입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가족은 꼭 피가 섞여야 할까?', '가족의 개념은 어디까지 확장 가능할까?' 등 솔직하고 때로는 진중하며 종잡을 수 없는 예비사서들의 대화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Q1. 여러분의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요?
지연) 이거 비밀 유지되나요? 비밀 유지 안 되면 얘기 못해요. 거의 소비자고발, 불만제로급이여서. (웃음)
다현) 비밀 유지? 음, 생각해 볼게요.
희연) 다들 가족 구성원이 어떤지 이야기해볼까요?
다현) 저희 집은 4인 가구지만 3인 가구이기도 합니다. 실질적으로 집에 사는 건 3명이기 때문이에요. 오빠랑 아빠 제가 본집에 살고 있고요. 어머니는 직장 때문에 따로 지방에 살고 계세요. 주로 주말에 만나고 있습니다.
희연) 저희 가족은 엄마, 아빠, 오빠, 저, 그리고 강아지 두 마리입니다.
지연) 강아지 이름도 알려주세요!
희연) 콩이랑 호두요.
(왼쪽이 콩이 오른쪽이 호두)
다현) 너무 귀엽네요!
지연) 4인 가구지만 1인 가구... 아니죠. 1인 가구지만 4인 가족이라 해야 될까요? 우리 집은 사실상 다들 떠났어요. 언니와 제가 독립을 해서 집에는 부모님만 계셔요.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중이랍니다.
Q2. 우리에게 필요한 가족은 어떤 가족일까요?
지연) 가족을 정의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가족이란 게 다양하고, 두리뭉실해서요. 법적인 관계가 얽혀 있는 게 가족이라고 하면 저는 가족이 있지만, 식구(食口)를 가족이라 한다면 없는 거죠. 혼자 살고 있으니까.
다현) 국회도서관에서 『가족의 다양성』이라는 책을 냈어요. 컬렉션에도 있는 자료죠. 책에선 다양하게 가족을 정의해요. 우선 표준국어원에서는 '전통적으로 혼인 혈연관계로 결합된 공동체'래요. 사전적으로는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라고 하고요. 현대적 의미론 '혼인이나 혈연에 근거하기보다는 누구와 어떤 관계로 상호작용을 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생활을 공유하는 공동체'라고 한대요. 다 다르죠?
지연) 정말 의미가 다르네요. 그런데 '주로 부부관계'라는 건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다는 소리네요. 그 부부라는 것이 이성 관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동성 부부, 성소수자까지도 포함된 것일까요?
다현)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선 아직 남녀의 경우만 혼인, 부부관계로 인정하잖아요. 혼인제도 바깥에서 서로 돌보며 실질적으로 가족생활을 하는 이들이 있음에도요.
희연) 그럼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는 뭔가요? 궁금해요.
다현) 서로 돌보는 게 가족이라 생각했어요. 아플 때 병원 같이 가고, 힘들 때 옆에 있어 주는 관계. 그런데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게 요즘 가족 같기도 해요. 내가 뭘 하려고 할 때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 '넌 진짜 가족 같아'라고 하는 친구들을 보면 저에 대한 믿음이 있거나, 뭘 하든 응원해주는 든든한 사람들이었어요.
희연) 다현님 말처럼 심적인 게 큰 것 같아요. 가족이란 이유로 '무조건'이란 말이 허용되잖아요. 정서적으로 의지하지 않는다면 '무조건'은 힘들 것 같아요. 혈연관계에서도 학대와 폭력이 많잖아요. 이 경우 저는 가족이라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또 세상은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진짜 작은 사회. 그 작은 세상이 누군가한테 전부일 수도 있는 거니까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 없다고 보고요.
(희연과 아버지)
지연) 저는 1인 가구잖아요. 어떻게 보면 부모로부터 독립을 한 거죠. 그런데 몸은 독립되어 있지만 정서적인 건 여전히 가족 테두리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족을 법이나 어떤 서류상으로 따질 수 없는 것 같아요. 또 가족이란 틀을 정해놓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해요. 그 틀을 벗어나면 가족이 아니야라고 해버리는 것도 너무 편협하달까?
다현) 그럼 나에게 맞는 가족은 어떤 가족일까요?
희연) 그냥 기댈 수 있는 사람. 서로가 위로가 되는 그런 느낌. 축하나 응원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관계. 남보다 못한 가족은 대체 뭘 보고 말하는 걸까 생각을 해봤어요. 제게는 대화가 없고, 감정적 정서적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들 같아요. 저는 소통과 위로가 가족 간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족은 하늘이 맺은 인연이라고 하잖아요. 정말 끊기 힘든 부분도 어느정도 있는 것 같아요.
지연) 희연님 말대로 끊어낼 수 없는 관계인 걸 아는데 때로는 그게 폭력적으로 느껴져요. 딱 그거 같아요. 관심이냐 집착이냐의 차이. 저는 성격이 독립적이여서 자유로운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부모님은 반대셨어요. 그걸 두고 누군가는 관심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지나친 집착으로 종종 느껴졌거든요. 가깝지만 너무 가깝지 않은 정도의 거리가 가족 간에도 필요한 것같아요. 오히려 그 거리감이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Q3. 다들 처음 기억하는 가족의 모습이 있나요?
지연) 가족 간의 최초의 기억이라고하면 언니랑 같이 있었을 때 같아요. 어렸을 때 부모님 두 분 다 늦게까지 일을 하셨어요. 야근이 많은 직종이셨거든요. 부모님이 늦을 때는 언니랑 둘이 잤는데 제가 너무 늦게까지 안자면 언니가 몽둥이를 들고 협박 했어요. 빨리 자라고. 몽둥이엔 '사랑의 매'라고 쓰여 있었죠. 웃긴 건 언니와 제가 3살 차이밖에 안나요. 10살이 7살한테 그러는 거예요. 너무 웃기지 않나요?
(지연과 언니)
다현) 진짜 때렸나요. 그걸로?
지연) 협박 용도죠. 때려도 아프진 않았어요. (웃음)
다현) 생각해보면 저는 쭉 할머니 품에서 자랐어요. 저희 부모님도 맞벌이셨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함께 살면 좀 비슷해지잖아요. 그래서 전 어렸을 때 전라도 사투리가 심했대요. 저희 할머니가 남원분이시거든요. 유치원가서 친구들한테 “추워? 게비에 손 넣어!” 이랬대요. 게비가 방언으로 주머니라는 뜻이거든요. 지금은 표준어를 쓰지만 어릴 때 가족의 영향은 참 큰 것 같아요.
(다현과 할머니)
희연) 음, 한 5살 때예요. 크게 다쳤던 적이 있어요. 모두가 놀랄 정도로 크게 다쳤는데 그 순간이 정말 선명하게 기억나요. 왜냐면 엄마가 저를 들쳐업고 뛰었거든요. 엄마가 그렇게 급하게 달린 거를 그 후에 본 적이 없어요. 엄마가 달렸던 기억은 내 인생 그거밖에 없는 것 같아요.
Q4. 꼭 결혼을 해야 가족이 될 수 있는 걸까요? 가족을 선택할 수 없는 걸까요?
희연) 사실혼이란 말이 있잖아요.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았지만 부부처럼 인정되는 게 사실혼이잖아요. 이런 말이 있는 걸 보면 우리 사회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결혼을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어도 가족처럼 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지연) 또 우리나라는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키워야한다는 걸 기본 바탕으로 깔고 생각하는 게 있다고 봐요.
희연) 꼰대 마인드죠.
지연) 그런데 아이를 키울 환경은 꼭 남녀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남녀가 만나서 갑작스럽게 낳은 아이가 행복할지, 비혼이지만 준비된 보호자 아래 살아갈 아이가 행복할지는 모르는 거예요. 이 사회에서는 남녀가 만나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게 정상이라고 하잖아요. 그치만 정상가족이라는 게 어딨어요. 남녀가 아니어도 남남, 여여, 혼자 또는 함께 여러 형태로 가족은 구성할 수 있다고 봐요.
다현) 맞아요.
지연) 그러기 위해선 법의 영역이 더 넓어져야될 것 같아요. 어떤 가족의 모습이든지 차별 없이 품어줄 수 있는 법이요. 요즘 아무리 다양성을 존중한다, 다름을 받아들이자 이야기해도 당장 주변만 봐도 고개를 갸웃할 때가 많아요. “성소수자? 이주민? 다양성을 존중해야지. 그런데 내 주변에만 없으면 돼.” 이런 말도 심심치 않게 듣고요.
다현) 저희 부모님도 결정적으로 저와 입장이 다를때가 많아요. 물론 세대 간의 차이 때문도 있지만 이런 차이가 상처가 될 때가 있죠.
지연) 내 자녀만 아니면 된다, 내 눈에만 안 보이면 된다라는 식이죠.
다현) 다양한 가족 이야기가 나와서 자연스럽게 기사 이야기를 해볼게요. 입양도 개인의 이기심으로 한다는 기사를 봤어요.(독신자 입양이 가능해진 첫 해, 온 가족이 '입양팀'이 되었다) 결혼과 출산도 개인의 이기심으로 시작한 일인데 입양은 왜 안되냐는 기사였죠. 생각해보면 저도 제가 좋아하는 가족을 구성할 욕망이 있고, 내가 사람을 키우고 돌보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입양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입양가족에겐 욕망을 욕심으로 보거나, 너무 숭고하게만 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이 기사 봤을 때 어땠나요?
희연) 저는 출산의 성공률보다 입양의 성공률이 높다고 생각해요. 행복과 안정의 성공률이요. 입양엔 선택과 고려의 과정이 무수하게 많잖아요. 그리고 낳았다고 무조건 성공이면 이 세상에 금쪽이들이 그렇게 많이 나올 리가 없어요. (웃음)
다현) 그쵸. 어느정도 아이를 키울 계획은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희연) 그리고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게 아니잖아요. 누가 낳았던 간에 아이를 키우는 건 우리 사회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제도적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면이 아직 많은 것 같아요.
지연) 입사하면 물어본다고 하잖아요. 결혼할 거야? 애 낳을 거야? 육아휴직 낼거야? 거의 밈처럼 쓰이는 이 이야기들이 실화라는게 착잡해요. 또 복지라고 하지만 육아휴직은 여성들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것 같아요. 복지가 복지가 아닌거죠.
다현) 육아휴직을 언급한 이 기사는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짚고 있어서 좋았어요.(가족을 원했다, 결혼도 남편도 아니고) 성평등 정책을 만드는 여성가족부를 기업이 산업부나 중소벤처기업부처럼 무서워하는지. 기업의 안좋은 문화를 바꾸는 게 정책이고, 이를 위해선 정부가 더 개입해야 한다는 걸 콕 찝어 이야기 해주었죠. 사실 우리가 가장 많이 몸담은 사회는 직장이자 가정이잖아요. 이 두 사회를 유연하게 해줄 정책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Q5. 여러분은 앞으로 어떤 가족과 함께 살고 있을 것 같나요?
희연) 미래요? 저는 그냥 어릴 때부터 생각한 건 딱 하나예요. 우리 엄마처럼 되고 싶다. 자식과 잘 놀아주고 배우자와도 완만한 저희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연) 이거 어머니가 보면 엄청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희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내가 나중에 자식을 낳아서 엄마가 됐을 때 우리 엄마처럼 할 수 있을까? 항상 그게 가능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엄마는 제 모든 것의 시작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지연) 어렸을 때 부모님이 하는 말 중에 "너는 꼭 너 닮은 자식 낳아라"라는 말 있잖아요. 제 꿈은 그거에요. 저 닮은 자식과 살기. 충격 발언이지만 전 저 닮은 자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제법 귀여울지도? (웃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결혼이 아닌 이런 자식과 만나기예요. 저에게 자녀는 결혼 다음의 목표가 아닌거죠.
다현) 저는 늙어서도 사람이랑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결혼은 모르겠지만 가족은 있어야 된다는 주의예요. 사람한테 얻는 에너지를 확실하게 아는 인간이여서 그래요. 가족이 어떤 형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서로 응원해 주는 관계의 가족을 만들면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