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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가 만난 사람들 #10] 동네정원사 박승길 님을 만나다.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25-06-28 조회수 : 213

 

[느티나무가 만난 사람들 #10] 동네정원사 박승길 님을 만나다.

 * '느티나무가 만난 사람들'은 느티나무도서관이 직접 발로 뛰며 만난 지역 주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입니다.

느티나무도서관 앞 골목에는 24·41통 경로당이 있다. 그리고 경로당 옆에는 방치된 공간을 가꿔 만든 '같이정원'이 있다. 같이정원은 느티나무도서관과 동네정원사가 함께 돌보는, 우리 동네를 위한 공간이다. 같이정원뿐만 아니라 포대감자와 고구마, 3층의 텃밭연습장까지 식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애정과 정성을 쏟는 선배정원사이자 동네정원사이신 박승길 님을 만났다.








 
1. 나는 손녀를 돌보기 위해 내려온 거예요


 

매주 수요일과 격주 토요일 동네정원사 활동으로 도서관을 방문하는 시간 외에 승길 님의 일상은 어떨까? 승길 님은 자신이 원래 서울 사람이라는 말로 운을 뗐다. 용인에서 손녀가 태어나서, 손녀를 돌보기 위해 13년 전 용인에 오셨다고 한다. 아침에 아들 내외가 일찍 나가고 나면, 아침을 챙기고 등교를 돕는 것부터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데려다 주고 저녁을 챙기는 것까지 모두 그가 맡고 있다고. “그게 원래 내 일상이에요. 식사 준비부터 다 내가 챙기고. 집사람하고도 같이 하지만, 내가 집중적으로 챙기고 있어요.”

손녀가 할아버지를 엄청 좋아하겠다고 하자 아무래도 그렇지만 그렇게 당신에게 애정을 갖고 의지하면 당신의 아내가 서운해한다고, 내년에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지금보단 조금 더 여유로워질 거라는 말씀을 하시면서도 손녀에 대한 사랑이 가득해보였다.


 

2. 나는 생태하고 환경에 관한 모든 것을 마스터했어요

 


생태와 환경을 향한 박승길 님의 애정은 동네정원사 활동 이전부터 이어져왔다고 한다. 36년 간 공기업에 다니다 은퇴하신 승길 님은 주변의 추천으로 ‘숲 해설사’를 제2의 직업으로 삼으셨다. 그렇게 가평군의 숲 해설사로 시작해 4년 동안 숲 치유사, 학교숲 코디네이터, 기후변화 취약종 식물 조사원으로도 활동하며 숲에 관한 어떠한 경지에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가평에서의 활동과 동시에, 거주지 근처였던 양재천에서는 2009년부터 무려 8년 동안 ‘양재천 사랑 환경 지킴이’로 활동하며 하천 생태 해설사로서 생태와 환경에 관한 모든 것을 마스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손녀를 돌보기 위해 용인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에는 용인시에 있는 기후변화 체험 교육센터에서 3년 동안 환경 강사와 옥상 텃밭 강사로 활동했다. 긴 시간 동안 자연과 생태를 공부하고 소개하는 일에 몸 담았던 승길 님은 2018년, 용인시에서 도시농업관리사를 양성한다는 소식에 도시농업관리사 1기생으로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오셨다고 한다.



3. 사는 것도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거야

 

승길 님은 예비사서들을 위해 특별한 경험을 하나 더 공유해 주셨다. 바로 ‘경기꿈의학교’ 를 운영했던 경험.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우리 동네 정원 놀이터’ 라는 학교 밖 학교를 만들어 삼 년 동안 운영했다. 20명의 아이들과 함께 도시숲, 하천공원, 학교정원 등에서 생태탐방을 하는 귀중한 경험을 주고받았다고.
 

 그러나 올해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고 한다. 초등학교에 나가 강의를 하기가 어려워졌다고. 작년까지는 도시농업관리사로서 초등학교에 가서 텃밭 수업을 진행하며 어린이들과 함께 흙을 만질 수 있었지만, 올해부터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고령의 강사를 선발하지 않아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경험이 풍부한 고령의 도시농업관리사들을 배제한 사실에 대해 박승길 선생님께서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75세인 당신께서는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4. 내 별명이 느티 샘이에요, 느티나무 선생님

 
 

수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지만, 당신의 재능으로 용인시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던 승길 님은 손곡천 지킴이로도 2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느티나무도서관이 동네정원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고 한다. 동네정원사야 말로 승길 님께 제일 적합한 일이라는 지인의 말에 동네정원사 모집 마감일 하루 전 활동에 신청했다고. 함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승길 님은 동네정원사 일이 본인이 해온 일과 딱 맞는 활동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또, 승길 님께서는 느티나무도서관의 이름을 봤을 때부터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가평에서 숲 해설사로 활동할 당시의 별명이 ‘느티 쌤’ 이었기 때문이라고. 도서관과의 운명 같은 별명을 넌지시 말하며 그는 느티나무를 이렇게 정의내렸다. 늦게 눈에 띄는 나무. “느티나무는 100년이 안 되면 눈에 띄지도 않아. 근데 당산목이나 정자나무로 100년, 200년 넘게 있다가 한 번 눈에 띄면 항상 눈에 띄어.” 

 

느티나무에 대한 또다른 해석을 덧붙이기도 했다. ‘늘 티없이 살자.’ 그가 지나온 삶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해석이었다.




 
5. 나한테는 덕을 쌓고 복을 짓는 일만 남았어


 

마지막으로 승길 님께 인생의 목표를 물었다. 그러자 승길 님은 당신의 나이에 무슨 꿈이 더 있겠냐고 답하셨다. 서운해진 예비사서가 “명아주 지팡이 받기 어떠세요?”라고 외쳤다. 명아주는 밭이나 들에서 자라는 한해살이 풀인데, 2m 넘게 자라고 껍질이 단단한데다 나무보다 가벼워 옛날부터 지팡이를 만드는 데에 많이 썼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매년 10월 2일 노인의 날에 그해 100세를 맞이하는 노인에게 대통령이 명아주 지팡이를 수여하고 있다. 승길 님께 들었던 이 명아주 지팡이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니, 100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때까지 건강히 사는 게 쉽지 않다며 말을 흐리셨다. 결국 예비사서들의 고집으로 2050년에 명아주 지팡이를 거뜬히 받은 승길 님과 지천명을 앞둔 예비사서가 느티나무도서관에서 다시 만나자고 승길 님께 협박 아닌 약속을 받아냈다.
 

승길 님은 당신의 인생관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70세가 넘어서부터는 자신의 미래, 자신의 후생을 위해 덕을 쌓고 복을 짓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하신다고. 좁게는 후손과 자식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도록, 죽은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있다면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남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처럼 승길 님은 우리 동네의 동네정원사와 느티나무도서관의 든든한 선배정원사이다. 귀한 시간과 경험을 늘 흔쾌히 내어주시는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며, 느티나무도서관 50주년 잔치에서 명아주 지팡이를 들고 만날 날을 기다려본다. 

 

 

마지막으로 박승길 님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꼽아보았다. 숲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박승길 님을 생각하며 숲에 관한 책 5권을 소개한다.  
 

                        
 
 

1.  숲은 고요하지 않다 / 마들렌 치게 지음, 배명자 옮김, 최재천 감수 / 흐름출판
2.
식물의 사회생활 / 이영숙, 최배영 지음 / 동아시아
3.  
까막딱따구리 숲 / 김성호 / 지성사




 


4. 작은 것들이 만드는 거대한 세계 / 멀린 셸드레이크 지음, 김은영 옮김, 홍승범 감수 / 아날로그(글담) 

5. 숲의 생활사 / 차윤정 / 웅진지식하우스

 
             
 

2025.06.18
인터뷰: 예비사서 윤소정, 이서윤,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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