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가 만난 사람들 #11] 사이에부는바람 샛별을 만나다.
* '느티나무가 만난 사람들'은 느티나무도서관이 직접 발로 뛰며 만난 지역 주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입니다.
발달장애아동 가족 자조모임 '사이에부는바람'에서 (이하 ‘사이바람’) 활동 중이신 샛별 님. (이하 ‘샛별’) 느티나무도서관을 (이하 ‘느티나무’) 주요 장소로 설정해 모임 활동을 할 뿐만 아니라 골목히어로 반찬 배달, 책안부 배달과 같은 자원활동에도 참여하고 계신다. 그와 느티나무의 인연은 어디서부터였는지, '사이바람' 과 ‘샛별’, 그리고 느티나무는 앞으로 어떤 경험을 나눌 수 있을지 더 알아보기로 하였다.
제가 받은 환대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샛별은 아이가 학교 밖으로 나오면서 오전 시간을 보낼 공간을 찾던 때를 회상했다. 아이가 공부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찾다가 느티나무를 방문해보게 되었다고. 처음에는 ‘아이가 여기서 잘 있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긴장도 되었다고 한다. “사실 느티나무에 왔을 때 제가 받은 환대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느티나무의 환대로 긴장을 덜고, 이곳이라면 아이와 함께 편안하게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2023년부터 느티나무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발달장애 가족과 마을 사이에 시원한 바람이 불기를 바라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은 취지로 시작한 모임 ‘사이바람’에 참여하는 샛별님은 모임을 만든 초기에 다른 발달장애 아이들과 그 가족들에게도 느티나무를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다른 발달장애 아이들도 도서관 같은 곳을 가기 어려워하거든요. 긴장이 되고 그래서 못 가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런 곳이 있어, 그래서 여기 오면 좀 편해.’ 이런 걸 다른 친구들하고도 같이 나누고 싶었어요.”
샛별은 발달장애 아이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해 같이 밥을 먹는 자리를 구상했다. 행사의 취지를 듣고 ‘너무 좋다. 이건 꼭 필요한 일이다.’ 라며 적극적으로 진행을 도운 관장님의 마음이 보태져 느티나무에서 ‘환대의 식탁’이라는 이름으로 그 자리가 마련되었다. ‘환대의 식탁’을 어딘가에 홍보하거나, 대대적으로 알리지 않았는데도 처음에 여섯가족이 모였고, 그 이후에도 알음알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모여 지금은 열세가족이 함께 하게 되었다고 한다.
“발달장애 아이들도 어딘가를 가고 싶고, 이렇게 지역에 드나들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너무 필요한데, 막상 방문한 공간에서 어려운 상황들이 생기면 그걸로 인한 상처가 커서 주저하는 마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이렇게 낮은 문턱에서 같이 해보는 경험들이 다 너무 좋으셨다고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사람들 사이 숨쉴 수 있는 구멍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샛별은 사이바람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셨다. 샛별이 처음 느티나무에 왔던 당시에 함께하고 있는 조약돌과 같이 ‘사이’라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고. 마을의 사랑방이 되고 싶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과 없는 아이들 다 같이 어울려서 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공간이었다고 한다. 샛별은 조약돌과 같이 공방 ‘사이’를 운영하면서, 또 느티나무로 오게 되면서 관장님을 뵙고, 그리고 멍게와 빙그레를 만나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뭔가를 해보자고 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함께 활동하는 멍게가 공방 ‘사이’에 의미를 더해서 ‘사이에부는바람’을 우리의 단체명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바람의 의미는 성령의 바람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 숨 쉴 수 있는 구멍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샛별은 사이바람 활동을 하며 기억에 남는 순간이 무척 많지만, 강렬한 에피소드보다 일상의 순간들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했다. 처음에는 부모님들도 다들 ‘이렇게 해도 돼?’라는 걱정을 하거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다니는 일들도 있었다고 한다. “누구나 그렇지만 다들 이방인이기 때문에 도서관에 와서 조용히 책을 보다가 아이들로 인해 큰 소리가 나면 도서관을 나가고 이런 경우가 많았는데, 느티나무에서는 관장님께서 먼저 말을 걸며 다가오셨어요.”라며 그 순간을 떠올렸다. 샛별은 관장님이 “나는 간장(관장)이야. 너는 이름이 뭐야?” 이렇게 직접 묻는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금은 모든 가족들이 느티나무도서관을 너무 편안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사이바람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물었다. 모임 내에 학령기를 지나 중등을 지금 바라보는 아이들이 세 친구가 있고 그 친구들 중에 샛별의 아이와 또 다른 친구는 학교 밖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이바람에서 발달장애 중,고등학생이 마을 안에서 잘 성장할 수 있는 교육 배움터, 대안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그리고 느티나무에서 활동 범위를 넓혀, 마을의 다른 거점 안에서 느티나무에서 했던 것처럼 발달장애 아이들과 마을 이웃들이 같이 만날 접점을 만들 수 있는 활동을 개발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냥 도서관에 우리가 스며든 거죠.
샛별은 느티나무와 만난 이래로 많은 행사에 참여해 오셨다. 지난해의 Global Donut Days 를 기점으로 느티나무무의 행사와 자원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셨다고. Global Donut Days 에 참석해 여러가지 활동을 하며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음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 이후 샛별은 올해도 ‘책안부’ 배달 자원활동가로서 아이와 함께 도서관 근처 곳곳을 누비고 계신다.
샛별은 도서관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 어떠한 순간을 꼽는 것이 어려울 정도라고 말씀하셨다. “이게 하나의 감동스러운, 특정한 장면을 꼽는다기보단, 그냥 도서관에 우리가 스며든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순간’ 으로 어렵게 꼽은 것은 뜰아래에서 ‘사이바람 마을 행사’ 를 했던 것. 도서관에 누가 되진 않을지,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더 자유로워도, 더 막 나가도 좋다” 라는 느티나무의 의견에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무언가 그리는 것이 나의 일부 같고 그래요.
지난 5월, 동네정원 골목잔치에서 모든 이의 이목을 끈 활동이 있었다. 바로 동네정원 앞 주차장 바닥에 근사한 연못 그림을 그린 활동. 파란 바탕에 연잎, 연꽃, 잉어가 하나둘 모여 주차장 바닥이 멋진 연못으로 변신한 데에는 샛별의 공이 컸다. 그림을 전공한 샛별께 언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지 여쭙자, 무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라는 놀라운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제가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 하지 못하고, 점토로 뭔가를 만드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근데 선생님께서 저를 꾸짖지 않으시고, 제가 만든 걸 교탁에 전시를 해 주셨어요. 그때 그렇게 해주셨던 게 저한테 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유년기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무언가 그리는 것이 이제는 나의 일부 같다’ 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샛별의 이야기를 들은 예비사서가 점토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여전히 애착을 가지고 있냐고 여쭙자 샛별은 딱히 마음이 더 가는 재료가 있는 건 아니라 답했다. 다만 아이를 키우면서는 목탄과 같이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더 좋아졌다고. 의도한 대로만 되지 않는 점이 오히려 매력적이라고 한다.
향후 작품 계획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여쭤보자 '이상한 도서관' 에 관한 그림책을 준비하고 있음을 귀띔해 주셨다. 시끌벅적하고, 도서관 같지 않은 ‘이상한 도서관’. 괜히 그 ‘이상한 도서관’ 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하루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내일 또 만나'
샛별은 요즈음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를 읽고 계신다고 한다. 구상하고 계신 그림책의 주제가 ‘이상한 도서관’이다 보니, “그림책을 위해서도 방향을 잘 잡기 위해서 다시 읽어보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또 좋아하는 그림책으로는 <검피 아저씨> 시리즈를 꼽으셨다. 존 버닝햄이 쓰고 그린 <검피 아저씨> 시리즈는 사이바람 활동을 같이 하는 빙그레께 추천받은 책이라고 한다. 3권의 책 속에서 검피 아저씨는 왁자지껄한 하루를 보낸다. “뭔가 제대로 되지 않고, 우당탕 뭔가 계속 일이 일어나도 어찌 되었든 하루는 지나가고 마지막에는 내일 또 만나자고 하는 것.” 하루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내일이 온다는 것. 그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에 위안과 힘이 되셨다고.
샛별이 느티나무에서 힘을 얻었다고 말씀하셨지만, 늘 밝게 인사해주시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해주시는 샛별에게 느티나무 사서들도 힘을 얻는다는 말씀을 전해드리며, 검피 아저씨의 말을 돌려드립니다. 내일 또 만나요!
2025.07.29
인터뷰: 예비사서 윤소정, 이서윤, 이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