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9월의 첫째 주 목요일, 신분당선 정자역에서는 '경기도지하철서재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번 행사는 경기도지하철서재의 지난 10년을 함께 돌아보고,
책과 영화를 매개로 도민들과 이야기 나누며 앞으로의 10년을 함께 그려보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낭독 | 나는 지하철입니다.
나는 오늘도 달립니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길을.
어디에선가 와서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을 싣고 한강을 두 번 건너며 땅 위와 아래를 오르내립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 길 마디마디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지하철입니다.
------------------------------------------------------------『나는 지하철입니다』 김효은(문학동네) 중에서
지하철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이용객의 모습을 듬뿍 담은 그림책입니다.
경기도의회 전자영 의원과 정자역 역무원 이창재 님의 낭독으로 신분당선 정자역에서의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토크 | 책, 영화, 그리고 지하철
"영화 기자로 일을 좀 오래 하고 있습니다. 한 25년 정도 일을 하고 있으니 짧지 않은 시간 일을 한 셈이네요.
책과 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토크 주인공, 이다혜 기자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좀 재미있게 보는 방법 중에 하나는 평가를 좀 나중에 하는 거예요.
"그냥 일단 보는 거죠. 남들이 뭐라고 하는 얘기를 듣기 전에 먼저 내가 경험하고,
내가 판단해서, 내 생각을 만들고 나서 이야기에 끼어드는 게 훨씬 좋다라는 이야기인데요.
그래서 일단 경험한다 일단 본다 일단 듣는다라고 하는 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게 제일 쉬운데도 불구하고 제일 어려워요."
영화가 끝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져보시면.
"영화를 혼자 보러 가시는 분들이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가족, 친구, 누군가랑 같이 영화 보러 가시는 분들이 많죠.
영화관에 딱 불이 켜지면, 다들 어떻게 하세요? 영화가 어땠는지 이야기가 막 시작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휘둘리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는데
같이 본 친구가 '나도 너무 지루했어'라고 얘기를 하면 갑자기 나도 좀 지루했던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영화 본 다음에 그냥 남들이 뭐라고 하는 걸 떠나서 일단 나한테 이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나는 어떻게 봤나.
재미있었다면 어떤 부분이 좋았나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시간을 잠깐이라도 가져보시면 도움이 됩니다."
인생 영화는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내 삶이 어딘가에 닿았기 때문에 인생 영화가 된다.
"사실 재미 없으면 인생 영화는 안 돼요. 남들이 뭐라든 나는 이 영화가 진짜 재밌었어야 됩니다.
근데 특히나 그것만큼 중요한 게 내 삶의 어딘가에 닿는다고 하는 감각이에요.
주인공이 나랑 좀 비슷한 것 같아, 난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이 주인공 너무 내 마음 같아...
〈레이디 버드〉도 그런 맥락에서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를 빨리감기로 보는 사람들.
"2022년에 나온 일본 교수가 쓴 책입니다. 왜 빨리감기로 보느냐도 아주 중요합니다.
일단 첫 번째는 작품이 많다는 거예요. 제가 옛날에 처음 영화를 한참 열심히 보기 시작하던 때에는 정말 영화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비디오 테이프 개봉작도 제한적이었고요. 좀 괜찮은 동네 비디오 가게를 찾아가, 영화를 구해서, 보통은 2박 3일간 빌려봅니다.
그다음부터는 연체료가 있으니 2박 3일 동안 영화를 꼭 봐야했고, 만약 재미있다 그러면 그 기간 안에 빨리 한 번 더 봐야 되는 거죠.
지금은 어떤가요? 누구도 다 볼 수 없어요. 다 볼 수 없으니 빨리빨리 봐야한다는 거죠.
두 번째는 가성비입니다. 영화에 들이는 시간 만큼 재미가 있을까 없을까를 따져서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는 거예요."
영화가 재미가 없어요.
"요즘 요약 영상 많이 보시잖아요. 특히 요약 영상을 만들 때는 줄거리랑 관계 없는 부분을 잘라내요.
줄거리가 중요해지니, 화면을 보지 않고, 대사만 보게 되죠.
그래서인지 점점 영화를 '본다'는 행위도 옛날과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15분에서 길면 25분 정도 되는 요약 영상을 보다 보면 설명도 다 해 주니... 근데 이렇게 보면 영화가 재미가 없어요."
요약본을 보고 재미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영화가 있다면 반드시 전편을 봐보세요.
"요약본은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이야기이고, 실제 영화의 본편은 줄거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보통 영화 감독들이 하고 싶은 건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가, 어떤 사랑을 보여주고 싶은가 하는 것들이 중심이 되죠.
줄거리는 인물이나 화면, 영상이라고 하는 것에 사람들이 집중하게 만드는 방식 중 하나인 거죠.
요약 영상을 안 보기에는 영화가 너무 많아요. 그러니 요약본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 죄악시될 필요는 없어요.
일단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집중해서 볼 수 있는 정도의 집중력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
영화를 보는 방식부터,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를 구별하는 법.
등등 다양한 작품을 함께 둘러보며 '영화'를 주제로 하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말 좋은 작품’과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어떻게 구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마주했을 때는 어떻게 글을 쓰나요?' 라는 질문에는
"호불호는 분명하게 갖되, 웬만하면 작품을 좋아하려고 해요. 촬영 현장에서 며칠 동안 고생한 장면이 영화에서는
단 3초만 등장하거나, 아예 편집되어 사라지는 경우도 있기에, 그 과정을 알고 나면 작품을 쉽게 미워할 수 없기도 해요.
그래서 작품의 단점을 발견하는 것과 별개로, 그 안에 담긴 노력과 장점을 함께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려고 합니다." 라는 답변으로 마무리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