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서재] 서재는 누구겁니까
지난 주에 아는 분을 만났는데 얼마 전 정자역 서재에 갔던 얘기를 꺼냈다. 서재 안쪽에 애인사이인 학생 둘이 좀 과하게 애정 표현을 하고 있어서 들어서기가 망설여졌단다.
“19금까지는 아닌데 15금은 확실했어요.”
그는 어떤 독립출판물이 있는지 보러 간 참이라 하는 수 없이 두 사람 곁에 다가가게 되었는데, 내가 피해 줘야 맞는 건가 마음이 복잡한 이쪽 눈치는 아랑곳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서재에서 지켜야 할 행동 규칙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하던 참에 나를 만났던 것이다.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정자역 서재 문을 열고 한달 반 남짓 지난 때다. 대출반납용지 뒷면에 이런 의견이 적혀 있었다.
“건의합니다. 아침에 출근시 보면 의자에 누워 있는 인간이 있어요! 눕지 못하게 방지턱을 설치해야겠네요. 노숙자도 아닌 멀쩡한 인간들이 ~ ~ 조치 바랍니다. (2017. 10. 16 메모).”
상식에 근거한 정당한 건의요 요청이라는 믿음이 어조에서 느껴졌다. 나는 그때에도 얼른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고, 이번에도 그랬다.
지하철서재가 시민들을 위한 공익 시설이니 이곳을 이용할 때는 이곳 성격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은 상식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떤 행동이 바람직하지 않은지 언제나 분명할까. 집에서 구워온 고구마를 나눠먹으며 손아래 벗의 야한 농담에 사춘기 아이들마냥 까르르 웃던 어르신들은? 긴 의자에 마주 엎드려 문제집을 활짝 펼쳐놓고 학원 숙제를 하던 학생들은? 사업상 용건으로 통화하다 언성을 높이며 한참 동안 시비를 하던 분은? 상식적인 그 의견을 ‘우리’가 선언하면 다들 동의하고 따라줄까.
서재가 지하철 역사 공간의 일부이면서, 벽도 문도 없는 공간이어서 문제가 단순하지 않다. 책 읽을 사람만 출입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자역 서재의 의자 배치는 삼면 벽으로 둘러싸인 안쪽 홀에 모여 있는 형태다. 혼자 온 사람들은 주로 벽을 보고 앉는다. 돌아서 앉을 때도 서로 시선 방향을 비껴서 정면이 마주 보이지 않게 한다.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검색을 하고 간단히 요기를 하기도 한다. 상대가 오자마자 조용히 떠나는 커플이 있고, 마지막 한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실컷 회포를 풀다 일어나는 ‘단체방문객'도 있다.
많은 사람에게 이곳은 독특한 디자인의 쉼터이다. 우연히 들른 쉼터에서 어떤 사람들은 방문 목적에 없던 책과의 만남을 인상적으로 경험하기도 할 것이다. 그분들에게 책은 다른 장식품이 줄 수 없는 것을 주겠지. 그분들에게는 이곳이 서재이다. 그분들은 허기를 달래고, 다리를 쉬고, 친구를 기다리는 곳이 서재여서 더 좋을 것이다.
* 이 글은 지하철서재를 매주 순회 방문하며 일하는 글쓴이가 서재에서 보고, 듣고, 만나고, 생각한 것을 적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