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티나무가 만난 사람들'은 느티나무도서관이 직접 발로 뛰며 만난 지역 주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입니다.
느티나무도서관 앞 골목 한편에 자리한 어울림마트. 무려 13년이나 한자리에 지킨 마트답게 포근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어울림마트. 어울림마트를 운영하시는 박완 님을 만났다.

▲ 이야기 들으러 가는 예비사서들
배신하지 않으니까요
마트 앞에 서 있다 보면 자연스레 동네 고양이들의 동선을 파악하게 된다는 완 님의 말에는 오랜 시간 말없이 이 골목을 함께 해 온 고양이들에 대한 사랑이 엿보였다. 검둥이, 누렁이, 소통이.. 이름 하나하나가 사장님이 직접 붙인 것들이다. “내가 구분할 수 있는 걸로 부르는 거지요.” 소박하게 웃으며 말하는 그 한마디에 애정이 담겨있었다.
마트 안을 지키다 보면 길 건너 고양이들까지 오가는 게 자연스레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검둥이는 마트 입구 쪽을 왔다 갔다 하고, 누렁이 모자는 길 건너편을 오간다. 소통이 엄마도 이 라인을 돌아다닌다. “걔네 라인이 이쪽이라서요. 혹시라도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이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어서 보게 되죠.” 걱정이 눈길로 이어지고, 눈길이 다시 정이 되는 것이 동네 고양이들과 사장님의 관계성이다.
완 님이 동물을 좋아하게 된 것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인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퇴역 군견인 셰퍼드, 도베르만부터 동네 바둑이, 발발이까지… 자라면서 수많은 동물과 함께했다. 이곳 동천동에 올라와서도 코카스패니얼, 시츄, 요크셔테리어를 차례로 곁에 두었다. “그때는 강아지 위주로 다 키웠지요.” 아주 먼 과거부터 회상하는 목소리에 곁에 있던 강아지들에 대한 사랑이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키운 요크셔테리어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후 더 이상 반려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내의 비염 때문에 집에서 동물을 키우기 어렵지만, 반려견을 떠나보낸 기억은 마음 한켠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동물들은 내가 사랑을 준 만큼 돌려줘요. 배신을 안 하잖아요.” 많이 키워봐서 비로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자식처럼 아끼지 않으면 못 키운다는 말도 함께 덧붙였다. 그 말 속에서, 지금도 동네 고양이들을 마음으로 돌보는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내 공간인데, 당연히 다 공을 들였죠
완 님은 군포에 거주하지만, 유통업을 하며 신봉동 등 여러 곳을 거친 끝에 이곳 동천동에 자리를 잡았다. 마트를 직접 운영한 지는 15년, 그전에도 마트 관련 직장 생활을 15년 했으니 도합 30년을 유통업계에 몸담은 셈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온 만큼 자신의 공간에 대한 애정도 크다. 매장 어디에 가장 공을 들였냐는 질문에 “내 공간인데 당연히 다 공을 들였다”라며 무심한 듯 던지는 한마디에는 오랜 시간 자신의 일터를 가꿔온 사람 특유의 깊은 애정이 묻어난다.
사장님이 마트 일을 과일과 채소로 처음 시작했던 만큼, 어울림마트의 과일 코너는 다른 곳보다 훨씬 풍성하게 꾸려져 있다. 과일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사장님에게 여름 과일 잘 고르는 팁을 묻자, 돌아오는 대답은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명쾌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선명한 줄무늬'나 '작은 꼭지' 같은 기준은 예전 노지 재배 시절에나 통하던 확률적인 이야기일 뿐, 하우스 재배가 주를 이루는 요즘은 100%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사장님이 강조한 팁은 단순했다. "그냥 예쁜 거 가져가면 돼. 사과는 진짜 빨간 놈, 참외는 진짜 노란 애." 과일의 색은 햇빛을 받은 양에 비례하기 때문에, 농부들이 과일을 살살 돌려가며 볕을 고루 쬐게 한 정성이 색깔로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다.
언제 한 번 과일 사러 오겠다는 말에 “맨날 와야지, 뭐가 언제 와!”라며 호탕하게 농담을 건네시는 모습을 보며, 동네 주민들이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사람이 오고 가는 자리
인터뷰를 위해 어울림마트에 머무는 동안에도 손님들은 드나들었다. 한 단골손님이 막걸리 한 병을 사 가자, 완 님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말했다.
“맨날 와요. 매일 오셔가지고 막걸리 한 병.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어울림마트는 누군가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늘 들르는 곳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루틴처럼 익숙한 장소였다.
13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완 님은 손님들의 얼굴뿐 아니라 그들의 시간도 함께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아이가 어느새 결혼해 아이를 안고 와서는 “사장님, 저 애 낳았어요” 하고 인사했던 일, 초등학생 때부터 보던 아이가 성인이 된 다음 날 주민등록증을 이마에 붙이고는 “저 술 사러 왔어요” 했던 일도 있었다. 그때의 기분을 묻자, 완 님은 “많이 컸네, 나는 늙었네. 이거지”라며 웃음 지었다. 짧은 말과 웃음이었지만, 마트와 함께한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쌓인 관계의 단단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완 님은 그런 이야기를 듣는 일이 좋다고 한다. 손님들의 머리 모양이 바뀐 것을 금세 알아보고, “파마하셨네요”, “머리 자르셨네요” 하고 말을 건네고, 손님들은 “어떻게 알았어?” 하며 반가워한다. 완 님에게는 손님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단순히 장사를 위한 기술이 아닌 즐거움이다. “나는 그게 즐거우니까 지금도 마트 일을 하고 있지. 그게 안 맞으면 못 하지.” 어울림마트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편안한 장소가 되어 동네와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어 보였다.
동네가 비워진 자리
하지만 최근 골목의 풍경은 전과 많이 달라졌다. 주변 아파트 리모델링과 이주가 본격화되며, 어울림마트 앞을 오가던 사람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완 님은 거의 반 토막 이상 났다고 말했다. 손님뿐 아니라, 동네를 오가는 사람들의 흐름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근처 상가에도 하나둘씩 빈자리가 생겨갔고, 한 번 빠진 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마트의 하루가 달라진 데에는 생활 패턴의 변화도 있었다. 예전에는 주말 장사가 잘됐지만, 요즘은 월요일부터 조금씩 올라갔다가 목요일과 금요일에 가장 많고, 주말에는 오히려 줄어드는 흐름이 됐다. 완 님은 사람들의 생활 패턴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주말에는 밖으로 멀리 나가거나, 집에서 온전히 쉬고 싶어 한다. 근처로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트의 매출 그래프에는 동네 사람들의 움직임이 드러나 있었다.
“장사를 이어가고 싶지만, 장사라는 게 남아야 할 거 아니에요” 변화로 인한 현실적인 고민이 적지 않다. 재건축 이후 입주까지는 긴 시간이 남아 있고,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세를 내고 가게를 유지해야 한다. 손님 수가 줄어들며 매출도 함께 줄어들었고, 오래 자리를 지켜 온 마음만으로는 감당하기 현실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완 님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여건이 된다면 계속 마트를 하고 싶고, 다른 곳일지라도 활기찬 동네에서 작은 야채가게를 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물건을 팔고, 웃으며 인사하는 곳. 완 님은 “이야기하고 놀다가 물건 다 팔면 안녕 그러고 가는” 가게를 말했다. 이 바람 속에서 어울림마트가 동네에서 해온 일을 만나볼 수 있었다. 물건을 사고파는 일을 넘어, 오가는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달라진 머리 모양까지 알아보며 사연을 담고 있는 장소였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완 님은 다음 날 열릴 동네정원파티 이야기를 꺼냈다. 비 예보를 확인하며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는 게 낫잖아요.” 하며 걱정하던 완 님은, 자그마한 조언을 남겨주었다. 토요일보다는, 사람들이 퇴근길에 잠시라도 들릴 수 있도록 다음 행사는 금요일에 열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했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동네의 움직임을 보는 사람이기에 건넬 수 있는 조언이었다. “나도 부추도 팔아먹고 해야 되지만” 하며 웃음과 함께 건넨 말이었지만 행사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 동네에 활기가 돌았으면 하는 마음이 함께 느껴졌다.
“꿈은 안 이뤄져, 실현 가능한 현실을 사는 거지”
지금은 매일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살피는 마트 사장님이지만, 어린 시절 완 님의 가슴을 뛰게 했던 진짜 꿈은 ‘카레이서’였다. 한국에 F1이 없던 시절 일본 유학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만큼 뜨거운 꿈이었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그는 깔끔하게 꿈을 접었다. “실현 가능하지 않은 것은 꿈도 꾸지 마라! 가능한 것만 꿈꿔라! 꿈은 이루어진다? 안 이뤄져!”라며 껄껄 웃는 사장님의 뼈 있는 농담에는, 허황된 것에 얽매이기보다 당장 눈앞의 현실을 책임지려했던 사장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완 님은 오토바이를 10년 타고, 골프를 13년 친 이 동네 ‘꾸준함’의 대명사다. 무언가 하나를 시작하면 이토록 꾸준히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장님은 1등이 되거나 업계 최고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내가 최선을 다했을 때는 후회는 없잖아. 최고가 안 되더라도 내가 하는 동안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거야." 매일매일 오늘 하루 잘 넘겼다며 안도하고, 현재에 충실할 뿐이라는 완 님의 태도는 삶을 단단하게 지탱해 온 비결이었다.
사장님은 방송에서 우연히 듣고 마음에 새긴 문장이 있다고 했다. "지금 해야 할 것을 하면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다." 가정을 꾸리고 일터에서 30년을 버텨온 그는, 곧 딸을 시집보낼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해야 할 것'들을 다 마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화려한 꿈을 좇는 대신 매일의 현실 속에서 묵묵히 땀방울을 흘려온 어울림마트의 박완 사장님. 낭만적인 위로보다 현실적인 뚝심으로 동네 한구석을 지켜온 사장님의 긴 시간이 오히려 묵직하게 다가온다.
2026. 06. 17. ~ 2026. 06. 19.
인터뷰: 예비사서 김소연, 박건혁, 박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