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가 만난 사람들 #12] 카페 한스브로스 김한석 님을 만나다.
* '느티나무가 만난 사람들'은 느티나무도서관이 직접 발로 뛰며 만난 지역 주민,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젝트입니다.
느티나무도서관 로컬에서 가장 맛있고 포근한 카페 중 하나인 한스브로스. 책안부와 컬렉션버스킹을 통해 느티나무도서관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소중한 이웃이기도 하다. 한스브로스를 지키는 바리스타 김한석 님을 만났다.
이런 맛도 있고 이런 세계도 있구나
커피를 “그냥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담담히 말하던 한석 님은, 겸손한 웃음 속에서도 오랜 세월 한 길을 걸어온 사람만의 단단함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덧 커피를 만진 지 15년, 그는 자신을 ‘커피 박사’라 부르는 말에는 손사래를 쳤다. 커피는 워낙 분야가 넓고, 사람마다 방식이 다 다르기에 자신은 다만 아는 만큼만 알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와 커피의 인연은 15년 전, 우연히 마주한 한 잔의 드립 커피에서 시작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찾아간 카페에서 ‘커피 사부님’으로 모시게 될 분을 만났다고. 차처럼 부드럽게 스며드는 커피를 맛본 순간, 그는 ‘이런 세계가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그의 하루를 여는 일상이 되었다.
아침마다 그램 수를 재며 세팅을 하지만, 그는 숫자보다 손의 감각을 믿는다. 기계가 안정되면 큰 편차가 없고, 커피의 맛 또한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그는 커피를 생업이자 ‘믿을 구석’ 같은 존재로 여긴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도 작은 공간에서 이어갈 수 있는 일, 커피는 그에게 일종의 보험이자 평생직업이 될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그가 커피를 통해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은, 누군가에게 ‘이로운 한 잔’을 건넬 때다. 그는 커피의 맛보다 몸이 받아들이는 감각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향이 좋아도 몸이 불편하면 그것은 좋은 커피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는 한 할머니 손님을 떠올렸다. 연하게 내린 드립 커피를 마신 뒤, 임신 중인 며느리를 위해 한 잔을 더 주문하셨다고. 카페인 걱정으로 커피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며느리에게도 안심하고 건넬 만큼, 부드럽고 연한 커피였던 것이다. 그 일화를 이야기하며 그는 잠시 웃었다. 자신이 내린 커피가 누군가의 몸에, 그리고 마음에 닿았다는 사실이 오래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책으로 전하는 안부라는 말이 뭐랄까요?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예비사서가 가까이 사는 이웃에게 안부를 전하고, 지척에 느티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책으로 전하는 안부'. (이하 책안부) 지난 7월, 한스브로스에도 책안부가 전달된 이후, 한석 님은 느티나무와 안부를 주고받으며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책안부를 처음 받았을 때의 기분을 묻는 예비사서에 "책으로 전하는 안부라는 말이 사랑스럽다 생각했다" 라는 소감을 표현하셨다. "저는 취지도 그렇고, 그 말이 너무 예뻐서요.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평소 먼저 낯선 이에게 살갑게 말을 거는 편이 아니라는 사장님께서는, 예비사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책안부 전달의 기쁨과 슬픔을 잘 알고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한석 님의 말에 예비사서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세 명 모두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처음에는 이웃 가게의 주인장들과 친해지지 못했지만, 한스브로스와는 책안부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됐다. 이후 느긋-느긋 동네 축제를 앞두고 홍보 포스터를 붙이러 다닐 때, 책안부로 이어진 인연이 큰 힘이 되었다. 라포가 쌓이지 않은 가게를 방문할 때마다 긴장되었지만, ‘이제 한스브로스만 남았다’는 말이 나오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비사서와 웃으며 안부를 묻는 사장님이 계시는 곳이라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각종 행사, 축제 홍보에 협조해 주신 한스브로스에 감사를 표하자 한석 님은 얼마든지 더 도와줄 수 있다며 화답했다. "오히려 가게에서 도서관 행사 홍보를 진행하는 것이 큰 도움이 돼요. 결국은 가게 홍보도 되거든요."
마지막으로 추천하고픈 책이 있는지 여쭤보자 게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 를 언급하셨다. 비단 사랑하는 관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를 아우르는 책이라 인상 깊으셨다고. 뿐만 아니라 책을 읽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하시면서도 이외수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말씀하시는 모습에서 한석 님의 독서 취향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오래 있고 싶어요
한스브로스와 사장님의 궁극적인 목표를 여쭈었다. 사장님은 가게가 양재역에 있을 때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가게 근처 은광여고 앞 떡볶이 집에는 사장님 나이 또래 분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카페에 들린 손님들은 학창 시절에 먹었던 떡볶이 집이라 다시 왔다고 입을 모았다. 학교가 끝나고 떡볶이를 먹으러 온 고등학생들이 훌쩍 큰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을만큼 애정어린 가게였다.
“그 사장님이랑도 친해져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면 그 사장님도 처음에는 그냥 떡볶이집이 아니라 분식집 같은 거를 하시다가 좀 힘든 시간도 겪고 떡볶이만 하면서 그나마 좀 괜찮아지셨다고 하세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영업자들은 그냥 한 자리에 오래 남아 있고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한 자리에서 꾸준히 하는 것이 목표라는 사장님의 말씀에 예비사서는 얼른 이곳에 오래 계셔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느티나무도서관이 단단한 뿌리로 뒷받침할 테니, 오래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