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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지금 누구를 돌보고 있나요? | 2025년 마을포럼 3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25-08-05 조회수 : 461

집중업무일인 목요일 저녁, 
돌봄을 주제로 2025년 세 번째 마을포럼이 열렸습니다.




도서관 1층 ‘세상을 여는 창’에는 사서들이 돌봄과 마을을 주제로 고민하며 꾸린 <서로가 아니라면 우리가 누구에게> 컬렉션을 전시했습니다.
 
   


‘돌봄’을 주제로 연 2025년 세 번째 마을포럼,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의 저자 조한진희 님의 진행으로 레퍼런스 패널 백재중 신천연합병원 이사장과 함께했습니다.
 


3월부터 ‘동네정원사’로 활동하고 계신 박승길 님의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조 코헤인) 낭독으로 포럼을 열었습니다.


어떻게든 내가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사람들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우리가 사실은 각자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더 큰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삶이 훨씬 더 보람있고 만족스러워집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이고, 누구에게나 각자만의 이야기가 있으며,
그래서 어쩌면 우리의 경험이 생각보다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짜증 나거나 화나는 일도 줄어들게 되죠.

<낮선 사람에게 말을 걸면> (2022, 조 코헤인) p.31




 ◆ 신천연합병원과 마을의 돌봄 



백재중
신천연합병원은 철거민 정착촌의 도시빈민운동에 의료지원으로 결합하며 시작한 병원이고, 그래서 공익적인 민간병원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마을과 돌봄 문제, ‘돌보는 마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이를테면 병원 건물 뒤에 ‘마을건강센터’라는 게 있다. 마을건강센터는 병원과 마을을 연결해 주는 창구이고, 지역의 단체들과 네트워킹을 한다. 그 옆의 방문의료센터는 지역에 나가서 하는 의료 활동들을 담당하고, 찾아가는 돌봄의료센터에서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치료사 등이 팀을 이뤄서 가정에 방문 진료를 다닌다. 또 ‘건강리더 양성 교육’이라는 것을 하는데, 지역 주민들을 모집해서 혈압이나 혈당 재는 것 같은, 건강과 관련된 교육을 하고 그 분들이 이웃을 돌본다. 그 분들은 지역의 어떤 사람들이 혼자 살고 또 건강이 취약한지 알기 때문에. 교육할 때 복지관이나 주민자치회가 같이 사람을 모으기도 하고, 그렇게 다양한 단체들이 조금씩 돌봄에 관한 일을 한다. 

이런 활동은 주로 어르신들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활동들인데, 아이들도 돌봄이 필요하다. 대개는 가족들이 하는데 방치된 아이들은 마을이 돌봐야 한다. 아파서 병원에 오는 아이들을 진료하다 보면 약을 처방하는 것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아이가 분명히 방치되고 있고, 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돌봄이 필요한 경우들이다. 그래서 몇 년 전 제안한 ‘작은별 프로젝트’는 필요한 돌봄이 가정에서 되지 않는, 사회와 마을이 돌봐야 할 필요성이 있는 아이들이 병원에 오면 지역 내 아동과 관련된 기관에 전부 연락을 해서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제공을 하는 활동이다. 예를 들면, 어떤 어린이가 비만이라고 하자. 그 사례를 지역에 있는 네트워크에서 연구해서, 어린이와 헬스장을 연결해 준다. 담당 트레이너 선생님께 어린이에 대해 설명하고, 이러이러한 관리가 필요하니 해달라고 부탁하고 비용을 지급한다. 그러면 그 선생님은 본인의 생업을 하며 나름대로 돌봄에 접근할 수 있다. 식단 관리도 하고, 운동도 하고, 대화도 하고, 부모와 상담도 해보고,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를 지역에서 돌본다. 교육청 등 관계자들이 모여서 그 아이에 대해 토론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지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 ‘프로젝트 169’라는 사업도 하고 있다. 시흥시가 공단이 많아서 이주민 아동들도 많고, 이주민이 아니더라도 출생 등록이 안 되어 있는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시흥시 시민사회에서 나서서 출생 등록에 관한 조례 제정 운동을 했고, 그 결과로 전국 최초로 미등록 아동 출생 확인증을 지자체 차원에서 발행한다. 당시에 병원에서도 포스터도 붙이고 조례 제정을 위한 연서명을 받았는데 JB우리캐피탈에서 관심 있게 보고 JB우리캐피탈, 저희 병원, 시흥시, 유니세프 이렇게 네 곳에서 공동으로 의료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이 확인증이 정식 출생등록이 아니라서 아이들이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업들을 하면서 느낀 문제는 사업들이 분절적이다. 이 사업은 이쪽하고만 하고, 또 저 사업은 저쪽에서만 하는 식으로, 돌봄이 지역 단위로 합쳐지지 않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왜 지역통합이 안 되느냐,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된다. 제도적으로는 우리나라 재택의료사업 같은 의료 정책이 굉장히 중앙 중심이라 시범사업을 할 때 중앙정부가 구조를 짜고 기초 지자체와 이야기해서 집행을 하고, 중간에 있는 광역 지자체는 사업에 대해 잘 모르고 권한도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지역사회의 역량도 큰 한계 중의 하나다. 산업화, 핵가족화가 되면서 노인, 장애인, 노숙자, 이런 취약한 사람들을 전부 시설에 넣으니 마을의 돌봄 경험, 역량 이런 것이 없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마을에서 요구하는 것을 사업에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주도하지 않으면 마을 돌봄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을 돌봄의 내용은 마을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마을에서 원탁회의를 열어야 한다. 다 모여서 일단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마을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결정하고 과제를 선정하고 실행해 보고, 그걸 다시 평가해서 피드백하고 이런 과정들을 끊임없이 해나가야 한다. 이건 정부가 해줄 수도 없고, 설령 정부가 나서서 한다고 해도 마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과정이 없으면 겉돌 수밖에 없다. 이 느티나무도서관 주변의 마을들이 ‘돌보는 마을’에 대해 어떤 방향성을 가지면 좋을지 이런 걸 고민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 오늘 만난 돌봄 

마을에서 함께 돌보는 단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시니어살롱
동천동 24·41통 경로당에서 왔다. ‘시니어살롱’이라고 매주 금요일마다 희곡 낭독도 하고 우유팩을 모으고 정리하는 자원순환활동에도 참여한다. 

사이에 부는 바람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특히 자폐 학령기의 어린이와 가족들이 모인 단체다. 작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자조 모임을 갖고 있고, 올해부터는 주 2회 방과후 학교를 느티나무도서관, 고기교회, 성심원 등 마을에서 모여서 하고 있다. 방학 때에도 방과후 학교를 진행하고 있으니 주변에 소개를 많이 부탁드리고, 참여할 수 있는 아동과 가정이 있으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다올림 장애인권교육센터
다올림 장애인권교육센터에서는 인권에 관한 일을 하고 있는데, 특별히 그중에서도 장애인 인권 구제 활동과 교육 사업을 하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인과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특별히 주목하고 있는 일은 발달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사 양성 교육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모여서 영화를 제작하는 수업도 하고 실제로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동네정원사 
누군가는 집안 마당을 갖고 싶어서, 또 누군가는 전공을 살리고 싶어서, 누군가는 우연히 관심이 생겨서 모였는데, 이유는 달라도 함께 땅을 메우며 따뜻한 공기를 얻었고 잡초를 뽑으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수확의 기쁨을 나눌 땐 이야기꽃도 피어났고 그 순간 결국 이 활동이 나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서 계절을 돌보고 시간을 돌보고 서로를 돌보고 있다.



 ◆ 마을 돌봄과 요양원 

 

 질문 #1 
지금 말씀하시는 마을 돌봄하고 요양원에 있는 것의 차이가 뭔가?


백재중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요양원은 다인실이라 사생활이 없다. 또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이 다 정해져 있어서 군대만큼 엄격하진 않지만 군대처럼 돌아간다. 그런데 마을 돌봄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요양급여를 받으면 요양보호사가 찾아오고, 재택의료로 의사와 간호사도 집으로 찾아온다. 혼자 있을 수도 있고, 가족이 돌보다가도 잠시 요양보호사에게 맡기고 가족들은 쉴 수도 있다. 개인에게 맞춘 다양한 형태가 되는 거다. 마을에서 돌보는 어르신들 대상으로 하는 그런 돌봄 형태가 구축되면 요양원으로 안 가고 집에서든 어떻게든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볼 수가 있다.

조한진희 
가장 핵심적인 것은 어쨌든 요양원은 일종의 ‘시설’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노인들은 시설화가 강화되고 있다. 요양원에서 3년, 5년, 길게는 10년씩 살다가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시설과 마을의 가장 큰 차이는 통제와 자율성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활이 통제되고, 모든 문은 비밀번호로 잠겨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실 감옥이기도 하다. 우리가 요양원이 아니라 마을에서 사는 삶이 더 좋다고 이야기하는 것의 가장 핵심은 자율성, 인간관계, 연결 이런 것에 있지 않나 한다. <돌봄, 동기화, 자유>라는 일본 ‘요리아이의 숲’이라는 노인 요양시설의 소장이 쓴 책에 보면, 그 시설이 치매를 겪는 노인들이 다수 있는 시설이다. 그런데 잠금장치가 없고, 시간표가 없고, 과도한 약물 사용을 하지 않는, 굉장히 자율적인 그런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시설이 어떻게 운영될 수 있는지를 보니, 예를 들어 치매가 있으신 분들 중에 특히 배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이 배회하고 있으시면 마을 분들이 찾아준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마을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그런 자율적인 요양원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박영숙 |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마을은 시설과 달리 누군가는 돌봄을 받기만 하고 누군가는 돌보기만 하는 역할이 딱 나뉘는 게 아닌 것 같다. 몸이 쇠약해지거나 장애가 있더라도 각자가 역할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황성환 선생님을 보면 영화를 멋지게 만들어서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저희 어머니도 돌아가시기 전에 많이 쇠약해지셨을 때 눈만 바라봐도 따뜻한 눈빛만으로도 저를 돌봐주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게 마을과 시설의 큰 차이가 아닐까 싶다. 



 ◆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질문 #2 
요양보호사 같은 전문가도 있는데, 왜 마을에서 함께 돌봐야 하나?




황성환(다올림 장애인인권교육센터)
저희 장애인계에서는 돌봄이라고 표현하시는 문제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데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구나 자유를 원하고 자기 생활을 하고 싶지만 자립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안전이다. 시설은 아까 말씀하셨지만, 가장 안전한 곳이다. 
그래서 탈시설이 되려면 제도적인 장치로만 가지고는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사회가 질적으로 변하기 전, 그러니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생기기 전에는 자립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해보는데, 얼마 전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저거구나’라고 생각한 것이 있다. 애순이가 셋방살이하는 집주인 부부가 몰래몰래 쌀을 조금씩 주시는데, 그게 돌봄인 것 같다. 우리가 너무 많은 걸 할 수는 없지만, 우리 옆집에 장애인 친구가 한 명 산다면 밥은 먹었나, 아침에 잘 일어나고 있나, 그런 정도의 관심은 보여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사회적 돌봄이 되는 것 같다. 지역사회 내에서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야 한다. 돌봄은 옆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가 해야하느냐, 여러분이 지금 여기에 관심 갖고 동참하지 않으면 20, 30년 뒤에는 여러분들이 시설에 가게 된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돌봄을 하지 않으면 내가 돌봄이 필요했을 때 나를 위해 해주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돌봄은 타인의 일이 아니고 내가 꼭 해야 되는 일이다. 


조한진희 
2000년대 장애인 탈시설 운동이 있었을 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인이 직장이나 학교를 가는 것은 굉장히 일부의 일이었다. 제 주변에서 탈시설한 동료들이 ‘시설에서 나오긴 했지만 이웃과의 관계도 없고 사람과 만날 수 없으니 다시 파편화된 시설에서 사는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장애인 활동 보조 같은 제도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기억이 난다.




샛별(사이에 부는 바람)
저희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늘 고립에 대한 두려움, 앞으로도 아이가 커감에 따라서 그럴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진다는 걱정을 느끼다가 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사실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로서 도서관을 간다는 게 굉장히 긴장되고 두려운 일인데, 그런데 아이를 보시고 직접 눈 맞추면서 인사해 주고, 이름을 물어봐 주는 그런 제스처들이 저나 아이에게 문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다. 학교 밖에 있는 아이 같은 경우에는 공부할 곳이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적인 거점이 있는 것도 큰 힘이 되었다. 그래서 제가 겪은 환대의 경험을 다른 발달장애인 부모님들도 같이 좀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장애를 있는 아이의 부모가 아니어도 마을에서 같이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셨다. 저희가 다 같이 느끼는 것은 ‘이렇게 마을 안에서도 아이들이 편안하게 같이 지낼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구나’ 하는 것, 그리고 서로 간에 이야기들이 쌓이면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는 것이다. 지금은 아이가 크면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이와 같이 인근에 있는 빌라들의 문고리에 책가방을 걸어두고 오는 ‘책으로 전하는 안부’를 배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이가 일머리 이런 게 전혀 없으니까 다 알려주고 했는데 지금은 본인이 가서 잘 걸어놓고 오는 것을 보면서 ‘사회 안에서 작은 역할을 하면서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체감하는 중이다.



 ◆ 고립을 막는 마을돌봄 


 질문 #3 
저는 친척 중에 어렸을 때 ADHD를 진단받았는데 지금 거의 방에서 나오지 않고 게임이나 유튜브를 보고 있고, 집에서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난감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저도 그 문제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도와줄 방법을 모르겠다. 좋은 사례가 있다면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백재중 
작은별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관계가 중요해서, 모임을 만들어준다. 사회복지사하고 같이 산에도 가고, 어디 구경 가기도 하고, 그런 관계를 맺어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그런 것을 세심하게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특히 정신장애가 있어서 고립돼 있는 사람들 같은 경우는 사회적인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기 때문에 집에 있는 친구를 끌어내서 같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누군가가 마을에 있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 몇몇이 같이 관계를 맺으면 그게 돌봄이 된다.‘우리 마을에 요 앞에 누가 있는데, 애가 숨어만 있더라,  데리고 나오자’ 그렇게 하나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돌봄의 역량이 쌓인다. 마을도 그런 경험이 필요하다.



 ◆ 제도로서의 돌봄 


 질문 #4 
감동적인 말씀들을 많이 들었는데, 누군가 먼저 돌봄을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지만 그 사람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그래서 돌봄은 제도적인 시스템 안에서 굴러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제도들은 그런 것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소위 탁상행정을 계속하니까 제도적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돌봄이 개인의 선의만이 아니라 사회의 조직적인 체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현실과 전망에 대해서 듣고 싶다. 


백재중 
궁극적으로는 제도가 중요하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느 날 법을 정해서 모든 공공정신병원을 폐쇄했고, 스웨덴에서도 장애인 탈시설이 지지부진하니 법으로 모든 장애인 시설을 폐쇄했다. 법을 시행했다고 바로 해결은 안 되지만, 법이 정해지면 그거에 맞춰서 지역사회의 인프라를 계속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결정적으로는 법이 해결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조짐이 안 보인다. 집행하는 정부의 정책 의지도 정책권자 개인의 선의다. 거기에 맡겨서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시민들이 압박을 넣어서 제도를 실현시켜야 하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지역사회에서 인프라라는 게 실제로 작동을 해야 한다. 관만으로는 모든 자원을 다 동원해도 지금의 돌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민간과 공공이 결합해야 된다. 




조한진희
돌봄이 제도로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있지는 않을 것 같은데, 공적인 제도만으로 돌봄이 완성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돌봄이라는 건 굉장히 일상에 스며있는 아주 사소한 것, 아까 관장님이 말씀하신 눈빛을 마주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 돌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마을 돌봄을 이야기할 때 정부가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을 민간이 때우는 식의 돌봄이어서는 안 된다. 정부에게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제도로서 보장할 것은 보장하고, 그러나 돌봄은 제도만으로 결코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시민들의 자체적이고 연대하는 정신에 기반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 포럼을 마치며  

마지막으로 참여하신 분들의 소감을 들으며 마무리했습니다. 



“우리에게 마을이라는 게 존재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역 단위로서는 있겠지만, 옆집, 앞집이 서로 다 아는 사람인 그런 ‘동네’, ‘마을’이라는 게 존재할까? 돌봄을 이야기하면은 노인, 장애인, 특수하게 서비스나 복지가 주어져야 되는 대상만 생각하지만, 돌봄은 인간의 본능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돌봄을 할 수밖에 없고, 받고 싶어 하고, 돌봄이 없으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려면 이웃간에 서로 다 아는 사이이고, 그렇게 마을이 형성되어야지만 서비스가 아닌 일상으로서의 돌봄이 가능하지 않을까? 마을이, 동네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이 돌봄 문제의 한 단면이지 않을까.” 



“이사 온 지 이제 8년째 됐는데 그동안 느티나무도서관을 몰랐다. 손자손녀가 어려서부터 여기를 다녀서 ‘아 저기는 그냥 애들이 가서 책 읽고 그러는 데인가 보다’ 그렇게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돌봄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니까 생각나는 게, 이 도서관이 아이들만의 도서관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관장님이나 국장님, 또 사서 분들이 아무런 사심 없이 도와주시고, 모든 걸 제치고 오시고, 우리 시니어들이 여기 와서 희곡 낭독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이렇게도 다닐 수 있는 데구나’ 생각하니 국장님과 관장님 여기 사서님들 모두에게 참 감사하다.”

백재중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었는데,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마을을 복원해야 돌봄도 제대로 되고, 또 반대로 돌봄이 되면 복원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느티나무도서관에 처음 와봤는데 그냥 도서관이 아닌 것 같다. 그동안 도서관에서 해왔던 일들을 보니까 돌봄이라고 부르지 않았어도 돌봄인 활동을 굉장히 오랫동안 해왔다. 이런 활동들을 앞으로도 계속 확장해나가면 좋겠다. 

조한진희 
오늘 나왔던 의제와는 다른 이야기지만 세계적으로 돌봄이라는 것을 사회운동의 의제로 만들어 온 거는 페미니스트였다. 사실 젠더 관점이 없는 돌봄 논의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돌봄이 저평가되는 문제, 돌봄의 비민주성에는 돌봄 노동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이 연결되어 있고, 돌봄 노동자들은 저임금이고 비정규직인 문제들이 젠더 문제랑 아주 정밀하게 엮여있는 문제이다. 그래서 마을과 돌봄을 이야기할 때도 젠더 관점이 빠지면 좋은, 평등한, 정의로운 돌봄에 다가가기가 굉장히 쉽지 않을 수 있다. 마을 차원에서 돌봄 이야기를 할 때 젠더와 돌봄,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더 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매 마을포럼마다 조금씩 모아 가득 채워지는 십시일반 테이블처럼, 모두가 조금씩 서로를 돌보는 다정한 마을을 생각해봅니다. 우리 마을에서 하고 있는, 할 수 있는 돌봄에 대해 고민하며 포럼을 마쳤습니다. 


 


 ◇ 십시일반 
오늘 느티나무가 본 돌봄의 장면입니다. 십시일반으로 모아주신 음식은 모두가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8월, 서로를 돌보는 마을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이있게 풀어볼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겨울부터 봄까지의 광장 이후, 모두들 '안녕'하신지요? 모두가 안녕하기 위해 마을은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어쩌다 지혜학교’에서 질문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랍니다. 
[어쩌다 지혜학교] 다시 만날 세계 신청하러 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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