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좌담회 ‘나누는 사회 따뜻한 용인’
안성준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 중요”
오일근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과 미덕 살려야”
박영숙 “나눔은 상대적 빈곤 해소에서 출발해야”
오세린 “자원봉사 습관화는 학교 교육에서부터”
1%를 나누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함승태= 혼자 사는 노인들, 결손 가정의 청소년들, 장애우들 등 용인지역사회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 우선 나눔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나눔이 왜 필요한 지, 사회복지 영역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안성준= 일반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나눔, 다시 말해 봉사를 의식주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밥 먹고 옷 입고 잠잘 곳이 있다고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나눔의 수준을 축소시키는 것을 많이 봤는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도 나름대로 그들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15년 이상을 장애우들과 생활했는데 한가지 안타까운 일은 많은 시설장들조차 후원을 충분히 장애인들을 위해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장애우들을 비롯한 소외된 사람들의 의식주뿐만 아니라 교육이나 문화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
박영숙=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항상 느끼는 건데, 아이들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사회복지 개념을 상대적 빈곤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제발전이 이뤄져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평등해져야 하는데 실상은 너무나 다르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많은 아이들이 단 한 곳의 학원도 다니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점점 더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아이들 사이 교류도 차단시키고 있다. 친구가 없거나 제한적이다. 교육의 불평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나에게 주어진 것이 얼마 만큼인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눔에 대한 접근을 상대적 빈곤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함승태= 나눔을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했는데, 다른 측면도 고려할 수 있을 듯 한데.
오세린= 나눔을 원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할 듯하다. 자원봉사도 나눔의 하나인데 경제적 측면으로는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나눔과 관련해 우리나라에는 참 좋은 전통이 있다. 조선시대 향약 4대 강령 중에 환난상휼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려움을 당했거나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동네에서 대가없이 도와주었는데 이것이 자원봉사가 아닐까 한다. 언제인가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나눔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는 잘못된 교육행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 자원봉사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미국의 경우 기부금의 80%는 개인이 20%는 법인이 내는데 반해 한국은 그 반대다. 한국은 개인 기부금이 연평균 10만원이 안된다. 미국 140만원, 일본 30만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세법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부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게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저소득층을 비롯한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은 국가만의 몫이 아닌 사민사회 영역이 함께 해나가야할 몫이라는 것을 배우고 체득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할 것이다.
함승태= 용인에는 용인시자원봉사센터가 있다. 센터 관계자에 의하면 대부분의 자원봉사단체에서 자원봉사의 개념을 복지시설에 대한 물질적 지원과 육체적으로 봉사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또 국한돼 있다고 말한다.
오세린=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자원봉사인데 요즘은 지역사회와 국가 발전을 위해 좀더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것 같다. 복지시설 도우미는 물론, 거리질서 캠페인, 환경 가꾸기, 독서지도 활동 등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자원봉사의 개념을 학문적으로 정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발성과 공익성, 무보수성, 계획성, 지속성 등이 있어야 자원봉사라 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생활속에서 일상화되지 못하고 있어 협의의 자원봉사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오일근= 자원봉사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닐 것이다. 과거부터 학일리 등 농촌 마을에서는 어려운 사람이 있거나 혼자 사는 노인이 죽으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쌀도 가져오고 품도 팔고 밤도 새며 장례를 치러주고 있다.
오세린= 나눔이니 자원봉사니 거창한 말보다는 그런 것들이 바로 봉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박영숙= 지역의 단위가 커지다 보니 자원봉사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현재 많은 곳에서 이뤄지는 자원봉사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자원봉사에 대한 개념이 정립돼 있지도 않고 자원봉사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과정에서 봉사활동이 있는데, 시설에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시설관계자와 학생들 모두에게 모두 마이너스가 될 뿐이다. 어떻게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디에서 봉사하는 것이 적절한 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과 시설, 단체와 시설, 개인과 개인을 연결시켜줄 수 있는 기구와 전문가들이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이 되면 무엇인가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즉, 자원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을 적절하게 필요한 곳에 자원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중간 매개체와 전문가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자원봉사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교육과정뿐 아니라 자원을 적절하게 배치할 수 있는 전문가와 부서가 양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안성준= 내가 하는 일은 자원봉사라는 개념보다는 자원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봉사에는 철저한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그와 동시에 자기만족이 있어야 한다. 자기만족이 없으면 자원봉사를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원봉사와 자원활동을 달리 봐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또 한가지는 박영숙 관장께서 지적했듯이 자원봉사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그들(장애우 등)과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자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승태= 전국적이긴 하지만 용인에서는 대부분 자원봉사와 기부가 특정기간에 쏠리고 있고 지속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참여자 또한 제한돼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나눔교육을 지적했는데, 어떻게 해야 지역사회에서 나눔이 활성화 수 있는가.
오세린= 자원봉사와 기부행위가 생활화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의 학교교육이 필요하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왜 나눔이 필요한 지 나눔과 자원봉사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한가지는 관이 주도하거나 깊이 개입해서는 안된다. 행정기관이 개입하게되면 자발성이 떨어지고 실패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박영숙= 행정기관은 민간인이나 단체가 자원활동이나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맞게 제도를 개선하는데 힘써야 한다. 느티나무도서관의 경우 사립문고로 등록돼 있어 평수 제약을 받는다. 1일 대출권수나 프로그램이 시립도서관 등 관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보다 더 좋은 실적을 올리는데도 공간이라는 제약을 받고 있다. 이래서는 안된다.
봉사자중에는 국악 사진 전공자에서부터 환경전문가까지 여러 분야에서 자기 특성을 살려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이는 어디든지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환경 수준에서 볼 때 많은 부분이 자원봉사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교육문제에 대한 접근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함승태= 지금까지 사회복지와 자원봉사, 기부문화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는데, 좀더 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눔은 사회복지를 넘어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로 가기 위한 밑거름으로 보고 있는데.
오일근= 아직은 계획 단계지만 농촌에 사는 자녀들을 위해 장학금 제도를 만들고, 전통혼례식을 올릴 수 있도록 한다거나 마차 끌기, 떡 만들기, 김치담그기, 메뚜기 잡기, 트렉터 몰기, 눈썰매 타기 등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도시 아이들에게 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도시와 농촌 서로의 차이-문화적 차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세린= 엘지빌리지와의 자매결연은 이질적인 공동체인 농촌공동체와 도시공동체 또는 아파트공동체간 결합이라는 의미에서 매우 이상적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에서는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고, 아파트공동체에서는 생산물을 소비해 주는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기 위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박영숙= 학일리와 엘지빌리지와의 자매결연은 우리가 지향하는 발전된 형태의 공동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직후 후원이나 봉사에 대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좁은 의미의 봉사를 나눔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눔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체, 다시 말해 과거 마을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 한울공동체처럼 보호가 필요한 곳은 좀더 강화된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다.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이 마을공동체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마을축제를 가진 것이 있는데 함께 준비한 사람들은 봉사한다는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같이 할 수 있기 때문에 흥겨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날 예상을 뛰어 넘어 700명 가까이 온 것을 보고 사람들 마음속에 더불어 흥겹게 누리고자 하는 욕구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일근= 농촌은 노인들이 많고 생활이 힘들다. 성복동 아파트부녀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아름다름 가꾸기 사업을 벌이는 것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가에서 출발하고 있다. 마을에 일이 생기면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가 참여해 돕지만 다른 지역과의 교류는 좀 다르다. 65세 이상 노인만 전체 주민의 3분의1이나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장의 이익이 생기지 않으면 쉽게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지역공동체를 실현하는 마을이니 신선한 충격이니 하는 말을 하지만 아직 성과는 미미하고 지역 주민간 신뢰형성도 하지 못한 상태다.
박영숙= 자매결연이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닌 관 주도로 먼저 이뤄졌다는 한계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의 경우 용인을 고향으로 두지 않은 이주민들이다. 용인시민이라는 소속감이나 자부심을 갖기에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절실하지도 않고 농촌 주민들 역시 욕구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상적인 자매결연 관계가 되려면 다른 활동이 필요할 것이다.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일상적으로 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운동회를 하더라도 상대 마을을 초청한다던지 미술대회를 농촌에서 연다든지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오일근= 어느 한쪽에서 한발짝 물러서면 가능하리라 본다. 그리고 농촌에서 장담그기 행사때나 모내기 할 때 자매결연 마을을 초청하는 것도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당장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교류를 시작했더라도 점차 농촌체험, 주말농장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하면 서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함승태= 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마을공동체, 지역공동체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중요한 것을 시각을 농촌이나 사회복지시설, 마을도서관 등으로 영역을 넓혀 어떻게 하면 나눔을 지역공동체에서 실현시킬수 있을 것인가에 역량을 모아야 것이다. 장시간 토론에 임해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