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코로나에도 199일 문 연 느티나무도서관…함께, 일상을 지키다
책은 쌓아두면 의미 없는 창고일 뿐
다 멈추고 봉쇄하는 게 능사는 아냐
우리 삶터에 작은 관계망을 만들고
함께 헤쳐나갈 지혜 찾는 역할 중요
경기 용인시 동천동의 느티나무도서관은 지난해 199일간 문을 열었다. 공공도서관 평균 개관일수(158일)보다 많이 연 편이다. 최근엔 “14일부터 일요일도 엽니다”라고 공지했다. 지난해 3월 “도서관 문을 닫습니다”, 4월 “반의반만 엽니다”, 5월 “반만 엽니다”, 6월 “조금 더 엽니다”를 거쳐 일요일 문을 열기까지 11개월이 걸렸다. 그사이 이 도서관을 매개로 한 코로나19 전파는 없었다.
‘반의반’일지라도 틈을 찾아 도서관 문을 연 데는 ‘도서관이 시민들의 일상을 지키는 장소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고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장은 말했다. 박 관장은 2000년 사재를 털어 아파트 지하상가에 도서관을 열었다. 누구에게나 열린 문 사이로 사람이 오가고, 지식을 나누고, 어울렸다. 2007년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지어 옮겼다.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사립 공공도서관이다. 장서 규모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맺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으로, 사립 공공도서관의 좋은 사례로 꼽힌다.
사립인 만큼 개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공공도서관보다 자율성이 보장됐다. 대신 책임도 오롯이 져야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마을포럼과 낭독회, 메이커스페이스(창작공간) 활동 등을 지속하는 것도 과제였다. 느티나무도서관의 지난 1년은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공공도서관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 20년간 도서관을 운영하며 처음 겪는 환경이었을 텐데요.
“상황이 심각할 때는 잠시 닫았지만, 방역수칙 내에서 최대한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찌해야 할지 조심스러웠습니다. 바이러스 공부부터 했어요. 책을 만드는 종이나 책장 목재에서의 바이러스 생존율, 공기 중 전파 여부, 소독제 유해성 등을 따져보고 방법을 궁리했습니다. ‘거리 두기’가 익숙하지 않던 지난해 초부터 한 시간만 머물기, 색색의 층별 목걸이를 만들어 (이동) 제한 두기, 이용자 스스로 소독키트 사용하기 등 여러 방안을 선제 적용했습니다. 도서관은 공공의 공간이니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이 정확히 정보를 알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연습하고 훈련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문을 닫는 것만큼 여는 것도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 같습니다.
“원천봉쇄가 능사는 아니라고 봤습니다. 모든 일상이 차단되지 않도록, 다 멈춰버리는 게 아니라 함께 이겨낼 힘을 기르는 방법을 찾아가야죠. 이용자들과 정보를 충분히 공유하고 서로 지켜주니까, 오히려 ‘해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하며 든든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던 시기에 이용자들이 ‘도서관에 더 필요할 것 같다’며 마스크를 전해주시기도 했고요. 서로 익히고 실천하는 공공성에 대한 신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대부분의 도서관이 일제히 문을 닫고, 일제히 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각자의 자원 한도에서 시민들과 같이 어려움을 분담하는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찾았으면 어땠을까요.”
- 코로나로 나타난 차별을 비롯해 요즘도 존재만으로 거부당하거나 차별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린 도서관의 의미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이름표를 붙여주잖아요. 장애인, 노인, 청소년 등 그룹단위 서비스는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런 구분을 될 수 있으면 안 하려고 해요. 노인이라도 노인 정체성이 크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주어진 몇 개 분류를 하기보다는 스스로도 발견하지 못한 잠재적 욕구와 인식을 발현하게 하는 도서관이 돼야 합니다. 적절한 익명성과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공공의 경험’이 여기에서 이뤄져야 해요. 도서관 낭독 모임에서 자신의 신상을 밝히지 않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 자체로 존중받는 것처럼요. 이런 경험이 쌓여 공동체 내에서 ‘안전함’이라는 감각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도서관은 앞으로 더 중요하고 절실한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도서관을 ‘사회과학’ 같은 분류가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컬렉션’으로 구성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특히 중요하다고 본 컬렉션이 환경에 대한 것입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기후 문제에 관심을 두고 ‘1.5도, 생존을 위한 멈춤’이라는 컬렉션을 구성했습니다. 그 화두 아래 책과 논문, 기사, 영상뿐 아니라 지역에서 만들어진 기후행동 모임이나 공부 모임 등도 소개합니다. 우리 동네에 어떤 일이 있는지 알아야 마음이 있어도 참여할 길이 열리니까요.”
- 꿈꾸는 도서관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도서관은 먹고사는 일이 다 해결된 뒤에 교양이나 여가를 위한 소극적인 역할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겪는 구체적 문제의 답을 찾고, 대안을 모색하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지역사회가 중요해지는 만큼, 지역 커뮤니티의 공간으로 여러 일을 도모하고 실행하는 ‘시민들의 실험실’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많은 도서관이 행정에서 제공하는 공공서비스 기관에 멈춰있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도서관 운영체계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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