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도서관 10년이 바꿔놓은 것들
2013.09.01 18:38
“2003년 11월 순천을 필두로 전국 각지에 기적의도서관이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기적’이란 말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건 틀림없는 기적이었습니다. 기적의도서관 사업이 도서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로부터 10년 뒤 순천에서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현실은 그것이 순천시와 시민들에게도 기적이었음을 말해줍니다.”
문헌정보학자인 이용남 전 한성대 총장이 말을 이었다. 8월29일 오후 전남 순천 에코그라드호텔 컨벤션홀에서 열린 ‘기적의도서관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자리에서였다. 2003년이 저물기 전에 제천과 진해에 기적의도서관 2호와 3호관이 들어섰으며 이듬해에는 서귀포·제주·청주·울산북구에, 2005년과 2006년엔 금산과 부평에, 그리고 2008년과 2011년에는 정읍과 김해에 기적의도서관이 차례로 개관했다. 내년엔 서울 도봉구에 열두번째 기적의도서관이 문을 열 참이다.
이날 심포지엄은 만 10년을 맞은 기적의도서관 사업의 성과를 챙기고 현실을 파악하며 앞날을 내다보기 위해 마련되었다. 기적의도서관 사업이 시작되기 전 국내의 어린이 전문 도서관은 서울시립어린이도서관과 양평어린이도서관 단 두 곳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기적의도서관 11개관을 포함해 전국에 모두 84개의 공공 어린이도서관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0년의 기적’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은 성과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기적의도서관 사업 덕이라 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적의도서관이 변화의 커다란 전기를 마련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도서관 숫자가 늘었다는 것 못지않게 의미있는 변화는 도서관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끌어냈다는 점이다. 이날 심포지엄에 지정토론자로 참여한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재단 이사장은 “딱딱하고 숨막히는 독서실 같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뒹굴며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따뜻한 공간으로 도서관 이미지를 바꾼 게 기적의도서관이었다”고 말했다. “겉보기에 아름답고 쓰기에도 편리한 건축 미학이 이용자의 자긍심과 자존감을 높인 점도 평가할 만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어린이문학 평론가인 김상옥 춘천교대 교수는 “기적의도서관 출현이 어린이문학 발전의 핵심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기적의도서관 사업의 토대가 되었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박완서·황석영 등의 소설뿐만 아니라 김중미·김향이·고정욱 등의 동화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같은 번역물을 선정함으로써 어린이문학의 지향을 알려주는 구실을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윤의식 순천향대 교수(건축학)는 기적의도서관 사업 10년을 결산하는 백서를 발간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앞으로 어린이 도서관을 세우려는 이들에게 긴요한 참고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기적의도서관 사업의 의미와 가치를 사회적 자산으로 공유하기 위해서도 백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기적의도서관 사업 수혜자들이 청소년과 어른으로 성장한 만큼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기적의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영숙 이사장은 “기적의도서관 일부라도 공공 도서관으로 ‘도약’할 수는 없을까?”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런가 하면 건립준비위원장을 거쳐 10년 동안 순천 기적의도서관 관장을 맡아 온 허순영 관장이 8월 초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시립도서관장으로 전보발령된 일은 기적의도서관 사업을 둘러싼 민관의 협력과 갈등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