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상과 소파만 배치해 자유로운 분위기를 연출한 느티나무도서관 1층 열람실 풍경(위)과 이주민을 위한 책 읽기 프로그램. 알마 제공
1999년 경기도 용인의 지하
공간에 자그마한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15년, 이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커뮤니티 공간'이자 '열린 정보센터'로, 나아가 한국 도서관의
훌륭한 모범으로 뿌리내렸다. 바로 '느티나무도서관'이다.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은 처음부터 도서관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시 전국을 통틀어 공공도서관은 400곳에 달했다. 하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는 동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느티나무는 도서관에서 출발했다기보다 '아이들'에서 출발해 도서관이 된 사례다. 박 관장은 세상 모든 아이가 행복할 권리를 누리기를
바랐다. 그런데 현실은 안타까웠다. 아이들은 호기심에 눈을 뜨기도 전에 경쟁과 평가에 내몰렸고, 너무 이른 나이에 절망을 배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사회의 거울 같아서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라면 누구나 살기 좋은 동네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도서관 이름을 '느티나무'로 지은
데는 이유가 있다.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선 느티나무처럼 누구나 소통과 배움을 누리는 공간이 생긴다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책·사람에 대한 사유 담아
"도서관 문화가 세상 바꾸고
독서회는 지역사회의 엔진"
꿈꿀 권리 / 박영숙
박 관장이 도서관을 만들게 된 건 '통합'에 대한 오랜 열망 때문이었다. 나이나 학력으로 가르지 않고 장애나 계층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배우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세상을 원했다. 그에게 통합이란 화두는 대학 시절 도시 빈민운동으로 공부방 활동을 했던 80년대 중반부터 사립문고로 느티나무라는 공간을 만든 1999년까지 풀리지 않는 숙제였다.
통합에 대한 화두를 끈질기게 붙들었기 때문일까. 그는 도서관 설립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유네스코 공공도서관선언'을 우연히 접하게 됐다. "공공도서관은 이용자가 모든 종류의 지식과 정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역의 정보센터다. 공공도서관의 서비스는 나이, 인종, 성별, 종교, 국적, 언어,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균등한 접근 원칙에 입각해 제공된다."
그의 가슴이 뛰었다. 어떤 차별도 없이 지식, 사상, 문화,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다니! 공공도서관선언을 만난 건 간절함 끝에 만난 행운이었다. 오랫동안 매달렸던 통합이라는 화두에 마침내 '공공성'이란 답을 얻었다. 박 관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느티나무도서관을 운영해 오면서 공공성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세웠다.
'꿈꿀 권리'는 15년간 민간사립 공공도서관을 운영해 온 저자의 도서관과 책,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과 사유의 결과물이다. 느티나무도서관을 설립해 아무도 꿈꾸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을 펼쳐 오면서 경험했던 일을 진정성이 깃든 목소리로 조근조근 들려준다. 저자는 2003년 느티나무도서관재단을 설립했다. 그 뒤 작은도서관 지원, 공공도서관의 지역사회서비스 강화, 여러 지자체와 단체의 도서관 설립 운영 지원, 해외 민간교류 등 많은 일을 하며 도서관 현장의 고민과 도서관 미래 전망에 대한 답을 찾아왔다.
현대사회에서 왜곡된 배움의 가치를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그의 사유는 근원적이다. 입시정책이나 교수학습시스템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배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에 끌려 가지 않고 스스로 세상을 읽는 눈을 길러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런 힘을 키워 가려면 주어진 교과과정에 따라 세상에 관해 배우는 데만 매이지 않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상으로부터 삶을 배워야 한다. 그는 이런 문제의식과 고민에 대한 명쾌한 대안이 도서관이라고 말한다. 도서관은 세상 모든 배움을 존중하고 북돋우는 비형식적인 배움의 공간이다. 도서관 문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는 지점이다.
느티나무도서관 '책 읽는 그네'에 앉은 아이들. 알마 제공
저자는 "책을 읽는 것은 세상을 만나고 삶을 읽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은 삶의 길목마다 멈춤의 여백을 열어 주는 열쇠다. 숨 가쁘게 쫓기던 일상에 성찰과 사유의 시간을 준다. 담금질하듯 자신을 돌아보고 둘레를 둘러보게 한다. 그렇다면 도서관은 끝없이 오르고 올라야 하는 삶의 계단을 다시 오를 수 있도록 숨을 고르는 '계단참' 같은 곳이다.
독서회에 대한 철학도 확고하다. 그는 "독서회는 책을 읽고 토론하며, 거기서 얻는 영감으로 더 나은 삶을 상상하고 일상의 삶으로 살아내는 첫걸음"으로 규정한다. 동네마다 도서관이 생기고 도서관마다 독서회가 꾸려진다면 성찰하는 사회,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상으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독서회를 "지역사회의 엔진"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세상은 도서관이 책을 쌓아 두고 빌려 주는 곳, 시험공부 하기 위한 곳일 뿐, 장애인과 학교 밖 청소년들과 다문화가정은 얼씬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단언한다. 학력 나이 직업 국적 불문하고 누구나 마음껏 쉬고 뒹굴고 꿈꿀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곳이 도서관이라고. 박영숙 지음/알마/324쪽/1만 7천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