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 인터뷰│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
"책 읽는 사람들의 힘을 믿습니다"
책을 중심으로 일상 나누고 대안 논해 …
"사립도서관, 예산 부족하지만 다양한 실험 가능"
"책의 힘, 책을 읽는 사람의 힘을 믿습니다"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은 15년 동안 사립 공공도서관 느티나무도서관을 이끌어 온 원동력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사립인 탓에 후원금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느티나무도서관이 굳건히 지역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었던 힘은 '책과 사람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는 것. 느티나무도서관을 운영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꿈꿀 권리'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 등 2권의 책을 펴낸 박 관장을 만났다.
스스로, 또 함께 읽고 토론하기
느티나무도서관은 이용자가 중심인 곳이다. 단순히 책이 대출되고 반납되는 곳이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에 가깝다.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독서회, 혹은 낭독회라 불리는 소모임들은 느티나무도서관의 핵심이다. 이용자들은 소모임을 통해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눈다. 그 생각들은 조금씩 쌓여 나를 변화시키고 지역을 변화시킨다.
박 관장은 "일주일에 한번쯤 복작거리는 일상에서 빠져나와 같이 책을 읽고 둘러앉아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라면서 "삶과 분리되지 않은 배움을 같이 나누고 일상의 소소한 문제들에 대해 작지만 변화를 줄 수 있는 대안을 같이 상상하고 시도하려 한다"고 말했다.
소모임의 핵심은 결국, 책이다. 박 관장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혼을 쏟은 새로운 가능성, 상상력이 책에 담겨 있다"면서 "책을 읽으면 나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할 수 있고 눈앞의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큰 맥락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느티나무도서관은 '논술교실'이나 '체험학습' 등을 개최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또 함께 읽고 토론하고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박 관장은 개개인이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 행복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기를 꿈꾼다.
박 관장은 "책을 읽으면 삶에서 의미 있는 것들이 많아진다"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성찰할 수 있으면 사회의 여러 문제에 대해 한결 힘 있는 비판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박 관장의 의지는 조금씩이나마 이용자들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역에는 공동육아, 여성, 환경, 장애인 등 다양한 분야의 시민단체 10여개가 활동하고 있다. 활동가들 중에는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여하던 이용자들이 상당수다.
박 관장은 "이용자들은 일상을 공유하면서 '사회적인 삶'에 대한 이해를 갖고 보다 나은 삶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시민성을 체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책 읽어보세요' 잠재이용자에게 말걸기
느티나무도서관은 잠재이용자들을 위한 서비스도 마련하고 있다. 도서관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먹고 살기 바빠 오지 못하는 사람들, 도서관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알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말을 건네기 위해서다.
청소년들은 토요일이면 책으로 가득한 책수레를 끌고 인근 자영업자들을 방문, 책을 건넨다. 박 관장은 "아침 장을 봐서 점심 손님을 치르고 다시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식당 주인들은 특별히 마음을 내지 않는 한 도서관에 오기 어렵다"면서 "청소년들에게는 누구에게 어떤 책이 어울릴지 고민하고 다양한 이웃을 만나는 기회도 된다"고 말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문화적·사회적·정서적으로 도서관과 거리가 있는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을 위한 서비스도 운영한다. 지역 이주노동자센터에 책을 단체 대출하고 중국 조선족을 위한 도서관을 짓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팟캐스트로 방송하고 있는 낭독 프로그램 '착한 낭독 독한 일상'도 같은 맥락에서 하는 서비스.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20여명의 목소리 기부자가 책을 낭독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시각장애인이나 책을 읽기 어려운 어르신부터 낭독을 즐기는 일반인까지 함께 즐길 수 있다.
'사람'으로 채워진 도서관을 꿈꾸다
느티나무도서관이 이처럼 다양한 활동들을 하며 크고 작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사립' 공공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부분의 공공도서관도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데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사립 도서관이 예산이 부족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나 사립 도서관은 정부 예산을 받지 않는 대신 공공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다양한 실험들을 할 수 있다.
박 관장은 "공공도서관이 마음이 있어도 시도하기 어려운 지점들을 시도, 도서관문화가 보다 풍성해질 수 있도록 역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사실 국내에 공공도서관이 활성화된 지는 불과 20~30년밖에 되지 않았다.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도서관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박 관장은 공공도서관 수가 900여개에 다다르는 현재, 도서관 시설 확충을 넘어 제대로 된 도서관문화를 형성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각 도서관들을 운영할 사서들이 보다 충원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시설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 관장은 "도서관의 전문성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 장서를 구축한 후 이를 토대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어떤 일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도서관이 시민사회의 심장이 되려면 도서관 수에 걸맞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채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