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엮이고 주민들이 엮여 삶을 바꾸는 플랫폼
느티나무도서관은 이처럼 특정 주제별로 자료를 모아 ‘사회를 담는 컬렉션’을 만든다. 예를 들어 ‘부동산 컬렉션’에는 유효기간이 짧고 투기심리를 부추기는 재테크도서가 아니라, 각자도생을 요구하는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사회경제 현상들을 읽을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 엮는다. 앞선 버전인 ‘내가 살 집은 어디인가’ 컬렉션에는 집이 돈벌이 수단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다가 스스로 집의 인질이 된 건 아닌지, 나는 정말 어떤 집에서 누구와 살고 싶은지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컬렉션에는 십진분류체계1의 경계를 넘어 사회과학·기술과학·문학·그림책·만화·영화까지, 각기 다른 위치에 꽂혀 있을 책들을 함께 모아둔다. 언론기사, 연구논문, 세미나·포럼 자료집, 관련 법령이나 조례도 스크랩해둔다. 참고할 웹사이트나 지역 소식을 담은 게시판은 링크를 큐알 코드로 출력해 그 자리에서 열어볼 수 있도록 비치한다.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컬렉션 제목을 정하는 일이다. ‘번아웃, 버팀과 소진 사이’, ‘전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결혼하지 않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 관심이 없던 사람도 한 번쯤 손을 뻗기를 바라며 긴긴 회의를 거쳐 정한 제목으로 말을 건넨다.
찾아오는 이들을 마냥 기다리기만 하는 건 아니다. 지역 곳곳에서 ‘컬렉션 버스킹’도 연다. 느티나무도서관이 있는 용인시는 도농 복합도시다. 농업 인구와 농지 비율은 줄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우직하게 친환경 농법을 실행하는 농부들이 있다. 도시지역 이웃들을 모아 ‘베짱이농부’ 팀을 꾸리고 농활과 팜(농장)파티를 진행했다. 농장에 베짱이농부들의 관심사를 반영한 컬렉션을 전시하고 즉석에서 대출도 했다.
서툰 일꾼들의 수고가 농부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었겠지만, 사업의 진짜 성과는 친환경농업을 지속하기 위해 공공급식조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여러 사람이 알게 된 것이었다. 새해에는 조례 제정에 힘을 보태기 위한 자료를 찾고, 관련 기관과 의원들까지 초대해 포럼을 겸한 팜파티를 열 계획이다.
뜻밖의 발견은 또 있었다. 모자라는 일손을 채우던 이주농업노동자들을 만난 것이다. 최근 정부는 인력난을 고려한 고용허가제를 확대 시행했는데, 도서관은 이 같은 정책변화를 담아 새로운 컬렉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농장을 찾아가 농부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기대할 수 없던 수확이다. 도서관에서 상호작용을 하면 이렇게 세렌디피티2를 누릴 가능성이 커진다.
예산 삭감, 장서 검열… 그러나 위험한 아이디어는 계속된다
기후위기, 저출생 초고령화, 전쟁, 잇따른 재난참사, IT의 발달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논란 등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지금 우리에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런 시대에 맞춰서, 정보와 지식을 저장만 해두는 창고가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을 함께 모색하는 장이 되기 위해 먼저 도서관이 변화해야 한다. 책의 물성에만 매달리지 않고,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한 대안을 찾아 함께 작당모의할 시민들을 연결하고, 그 힘을 북돋우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 변화의 실마리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현실이 녹록지는 않다. 잇따른 도서관 예산 삭감,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검열 사태를 생각하면 마치 순식간에 과거로 회귀할 것처럼 불안하고 두렵다. 그러나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힘은 시민에게서 나올 것이다. 그리고 시민의 힘은 자기 삶에 도서관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는 경험에서 비롯될 것이다. 장서나 시설에서 사람으로 또한 삶으로 시선을 옮긴다면, 엄혹한 현실에서도 그런 경험을 나눌 기회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큰 영감을 주었던 문헌정보학자 데이비드 랭크스D. Lankes 교수의 말을 빌려 우직하게 미래를 열어가는 도서관인人들의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 “도서관은 위험한 아이디어를 탐색하는 안전한 장소였다. A library was a safe place to explore dangerous ideas”4
전문 읽기: https://www.peoplepower21.org/magazine/1954711?cat=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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