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보도된 느티나무

[조선일보] 우리동네 보물1호 (02.08.06)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05-03-07 조회수 : 4,382

[패밀리] 우리동네 보물1호 ‘느티나무 도서관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엔 여름이 한창!


책 읽는 아이에, 매미처럼 재잘대는 녀석들에, 제 집 안방인양 한잠 깊이 든 꼬맹이도 있다. 어른들도 분주하다. 책 읽어주랴, 개구쟁이 단속하랴. 손바닥만한 부엌은 아이들 점심밥 준비로 바쁘고, 현관은 책 빌리러 들고나는 사람들로 부산스럽기 그지 없다.


느티나무(031-262-3494)가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의 명물이 된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느티나무 모르면 풍덕천리 사람이 아니다. 어린이 도서관이지만 어른이 더 많을 때도 있다. 아이 따라와 빈 손으로 있을 수 없어 시작한 서가 정리. 그러다 부엌에도 드나들고 빗자루도 쥔다. 아빠들이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와도 부끄럽지 않은 ‘동네 사랑방’이 바로 느티나무다.

2000년 2월 현대성우상가 지하1층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시큰둥했다. 번듯한 건물도 아닌데다, 임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친구따라 한두번 드나들더니 날이 저물도록 집에 돌아올 줄 몰랐다. 기린과 해바라기, 느티나무가 그려진 계단 옆 벽화. 노란색 바탕의 정갈하고 아담한 40평 공간엔 재미난 책들이 빼곡하고, ‘책 읽는 그네’에 이야기방, 낙서 전용 꾸러기방까지, 오락실보다 즐거운 놀이터다.

이렇듯 시원한 느티나무 한그루를 심은 주인공은 7살·5살 두 남매의 엄마인 박영숙(36)씨다.
“대학 시절 빈민촌에서 공부방 활동을 했습니다. 어떤 집에서 태어났든 아이들은 평등하고 행복해야 한다고 그때 믿게 됐어요. 책을 공유하면서 이웃 아이들과 동등하게 어울리고 덩달아 어른들도 모여들게 하는, 그야말로 동네 느티나무 구실 하려구요. 벤처회사 다니는 남편이 IMF 끝나고 밀린 월급 한꺼번에 받은 걸로 용기를 냈습니다.”

순전히 사재를 털어 구입한 3000권으로 출발했다. 젖먹이 둘째를 업고 용인시청, 분당과 서울의 대형서점을 오가며 자료를 모았다. 문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결손 가정 아이들을 위한 ‘방과 후 교실’이다. 과열된 사교육으로 예전보다 더 불평등해진 교육 기회. 어른들 방치로 언어·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결손 가정 아이들을 위해 20여명 어머니 자원봉사자들과 전문가의 손을 빌었다. 도서관에 부엌이 딸린 이유는 바로 이 아이들 때문이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밥 먹을 곳 없는 아이들. 한솥밥을 먹고, 연극과 수화노래를 배우고, 틈틈이 나들이도 떠난다.

도서관 책이 8800권으로 늘어나는 동안 아이들은 변했다. 얼굴 가득 생기가 돌기 시작한 공부방 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받은 상처와 상실감을 책을 통해 치유해갔다. 일반 가정의 아이들도 달라졌다. 처음엔 “도서관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입을 내밀더니 지금은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느티나무에 대한 동네 어른들의 애정도 각별해졌다. “다른 아이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부모들. 빵집 주인은 틈틈이 빵을 구워 나르고, 비 온다고 옥수수 쪄서 가져오는 엄마에, 공부방 아이들 입을 옷가지를 챙겨보내는 사람도 있다. 지난 겨울엔 작은 음악회를 열었다. 그동안 배운 수화로 노래를 하고, 핸드벨도 연주하고. 어린이날 성황리에 김밥잔치도 치렀다. 그동안 벌어진 일에 힘입어 이번 24일엔 풍덕천리 마을축제를 연다.

개관한지 3년 여만에 하루 평균 이용자 200명, 대출 500권의 어린이도서관으로 성장한 느티나무. 국가나 지자체의 도움없이 1600여 가족 회원의 입회비와 박씨 남편 월급의 3분의 2로 운영하는 통에 노상 적자지만, 마을공동체의 물꼬를 틔운 민간 도서관의 모델로 손꼽힌다.

“사람 장사가 진짜 남는 장사 아닌가요?” 농을 건네며 웃는 박영숙씨는, “교회나 지역단체, 아파트 부녀회가 함께 움직이면 우리 미래인 아이들을 위해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