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이한수기자, 정경열기자]
“책 읽는 습관 길러준다고요? 그건 아이들로부터 책을 빼앗는 결과가 돼요.”
질문하다 흠칫 놀랐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들이게 할 수 있을까”를 묻던 차였다. “책을 좋아하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일 뿐이죠.” 경기도 용인 수지의 ‘느티나무어린이도서관’ 관장 박영숙(40)씨. 7년째 어린이도서관을 운영 중인 그는 그 동안 느낀 살아있는 독서현장 이야기를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알마)에 담았다.
“저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독서목록을 만들어서 숙제처럼 책을 읽히고 독후감을 내게 하면 아이들은 책을 더 멀리하게 돼요.”
엄마·아빠와 아이들 1만3000여 명이 회원으로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은 여느 도서관과는 아주 다르다. 아파트 지하상가 40평 남짓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제멋대로 드러눕거나 앉아서 책을 가지고 논다. ‘논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이렇다.
“자~. 버섯 나오는 책을 가지고 와 볼까?” “네!” 박씨의 말에 아이들은 쪼르르 달려가 책꽂이에서 저마다 책을 가지고 온다. 주로 식물도감이지만 버섯 스프가 들어간 이유식 책을 가져오는 아이도 있다. “이번엔 ‘책 꽂기’ 놀이다!” 아이들은 다시 달려가 가져온 책을 정확히 원래 있던 자리에 꽂는다. 매주 수요일엔 그림책을 슬라이드로 찍어 환등기를 통해 보여주며 ‘이야기 극장’도 연다.
“이렇게 책하고 만나는 기회를 가지면서 아이들은 어떤 책이 있는지 저절로 알게 돼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는 거죠.”
과연 그렇게 시끄럽게 놀면서 아이들이 책을 읽게 될까? “그렇다”는 대답이다. 1년 넘도록 만화책만 보던 아이가 어느 때부턴가 300쪽이 넘는 책을 읽고는 또래 친구들에게 줄줄 이야기한다. 어디서 뛰어 놀았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도서관에 와서 물만 먹고 가던 아이도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집어 든다. 책에 대한 부담이나 거부감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설명이다.
박씨는 아이를 칭찬하는 것도 책 읽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칭찬은 고래를 얼어붙게 만들기도 해요. 어른들이 정한 기준으로 칭찬하면 아이들은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봐 잔뜩 움츠러들게 돼요. 아이들 스스로 자기 속에서 동기 유발이 되어야죠.”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도 책과 친해지면서 박쥐가 포유류임을 알게 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의욕이 없었던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라고 말한다. 엄마들은 느티나무도서관에 다녀온 아이가 ‘기역 니은’은 모르는데 책은 줄줄 읽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박씨는 “80여 명 자원활동가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어주면서 아이들은 저절로 글을 알게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자랄 힘을 타고 나요. 잘 가르치려 하다 보면 오히려 못이 박혀서 그 힘을 막게 돼요.” ‘못이 박혀서!’ 영어다, 피아노다, 아이들 잘되라고 하는 어른들의 욕심이 여린 가슴에 못을 박고 있다는 말이다.
(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
(정경열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kr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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