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을 바란다. 도대체 어느 누가 억지로 시키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학교를 마치면서 숙제나 시험이 사라질 때 아이들은 책도 함께 버릴 것이다.”
박영숙 느티나무어린이 도서관장은 독서이력이니 독서인증이니 하는 ‘독서교육’이 아이들에게서 책을 빼앗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가 펴낸 신간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알마·사진)는 독서가 무엇이든 배우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에 닿아있으면서 단순한 지식의 전달뿐 아니라 정서적 상처의 치유와 관계 회복까지 이뤄내는 마력이 있음을 보여준다.
6년전 두 아이의 엄마인 그가 문화적으로 척박했던 경기 용인시 수지면 신도시에 어린이도서관을 만들고, 그곳에서 전인교육과 마을공동체문화를 일구었던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자 하는 행위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촉구한다.
그가 아이들을 책으로 이끌었던 유혹술 몇가지.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골라 아이들과 돌아가며 읽는다. 아이들이 심드렁할 땐 혼자 읽어주기도 했다. 그러다 목이 아프다는 핑계로 옆에 있는 아이에게 책을 넘기기도 하고, 아이들 얼굴에 작은 움직임이라도 보일라치면 거기서부터 한 가닥씩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누군가 잡지를 들춰보는 게 눈에 띄면 그날은 잡지에 실린 수수께끼나 낱말 맞추기도 풀어보고 부록으로 달려있는 엽서를 적어 보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시집을 잔뜩 쌓아놓고 아무데나 펼쳐서 돌아가며 읽어주기도 하고 나란히 기대어 앉아 만화책에 파묻혀 보냈다.”
“새가 나오는 책, 벌레가 나오는 책, 기차가 나오는 책, 말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눈 깜짝할 새 흩어져 책꽂이를 뒤진다. 벌레가 나오는 책을 찾자고 했더니 어떤 아이가 한 귀퉁이에 눈꼽만큼 작은 벼룩이 그려진 그림책을 찾아오기도 했다. 버섯이 나오는 책 찾기 놀이를 했다. 책꽂이로 달려간 아이들이 금세 한아름씩 책을 안고 왔다. 식물도감은 얼추 다 뽑아왔고 버섯이 나오는 그림책을 골라온 아이도 여럿이었다. 어떤 책을 읽어줄까 들춰보는데 세상에! ‘5단계 아기 이유식’. 어떻게 요리책을 생각해냈을까.” 박관장은 “책 읽기를 가르치려고 하기 전에 왜 책을 읽히려고 하는지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책이 유효기간 몇 년짜리 입시도구가 되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는 “책에서 자유로워질 때 책읽기가 빛을 발하며 책과 친해지면 아이들은 모든 걸 배울 수 있는 힘을 갖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의 책읽기에 대한 열 가지 권리를 소개한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다시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마음대로 상상하며 빠져들 권리, 아무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아이들에게 추천도서목록 속 책들을 순서대로, 연령대에 맞춰, 차곡차곡 읽어나가길 바라는 부모들이 새겨들을 대목이다.
〈한윤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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