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한국일보 <오피니언_시론>에 실린 박영숙 관장의 글입니다. 내용이 잘 보이지 않을까봐 기사 사진 아래 다시 옮겨두었습니다. 이 시대 공공성의 마지막 보루, 도서관 - 느티나무도서관장 박영숙 ‘감동’이라는 말로 담기에는 모자라 가슴만 먹먹할 때가 있다. 지난 주말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열린 집들이도 그랬다. 8년째 운영하던 도서관을 터만 옮긴 거라 개관식으로 이름붙인 행사도 없었다. 찾아온 사람들은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고 구석구석 책을 보다가 오후 늦게야 한자리에 둘러섰다. 공사를 맡았던 사람들, 후원자, 자원활동가, 축하하러 온 손님들이 돌아가며 인사말을 하다가 한 아이에게 마이크가 돌아갔다. 두 번이나 소년원에 다녀오고 지난여름도 분류심사원에서 보낸 아이다. 2년 전부터 도서관에 왔지만 책을 빌려가기 시작한 건 겨우 두 달쯤. 얼마 전부터 글을 쓰고 있다며 몇 번 보여주더니 앞에 나와 그 이야기를 했다.‘나는 항상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해왔다.’ 제목만 들어도 멋진 책이 될 것 같다.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지낸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게 많아진다.’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는 걸까. 책과 사람이다. 빼곡한 책꽂이에 손을 뻗으면서 조금씩 넓은 세상을 보게 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용기도 얻고 자극도 받는다. 사실 도서관은 온통 ‘멘토’로 가득하다. 그런 도서관이 마을마다 있으면 좋으련만‘밑 빠진 독’인 만큼 예산순위에서 밀려나기 십상이다. 그 벽을 넘어서려면 먼저 도서관을 ‘사회주의적 시설’로 뚜렷하게 자리매김해야 한다. 누구나 사람답게 사는 건강한 자본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도서관처럼 이기주의, 경쟁, 소외를 넘어 공공성을 누릴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 평가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열람석수, 장서수, 한 술 더 떠 강좌나 프로그램 운영수익을 놓고 도서관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도서관에 갈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다가서도록 힘을 써야 할 것이다.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따지지 않고 인력을 배치하고 예산을 세울 수 있는 정책적 의지가 필요하다. 거기에 힘을 실어주는 건 시민들의 인식과 참여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여전히 도서관을 수험생들 독서실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학원이나 문화센터의 몫을 요구하거나 아이들을 데려와 논술지도 수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서관이 제대로 뿌리내리고 발전하려면 도서관의 정신을 함께 나눌 도서관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 사립도서관의 몫이 있다. 느티나무는 사립공공도서관이다. 많은 사람이 걱정하듯 돈이 안 되는 ‘공공’도서관을 ‘사립’으로 짓고 운영하기란 만만치 않다. 하지만 도서관문화가 성숙되도록 민간의 자발성과 역동성이 더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새 집을 지으면서 그 가능성도 보았다. 덜컥 큰돈을 낸 기부자, 제 집처럼 공들여 공사하는 사람들, 짐을 싸고 옮기는 자원활동가들과 보낸 시간은 한바탕 신나는 잔치였다. 어마어마한 규모를 갖고도 문턱이 낮기로 이름난 뉴욕공공도서관은 지금도 꾸준히 열람실이 늘어난다. 도서관을 이용하면서 기업가로 학자로 영화감독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줄지어 기부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도서관이 앞으로도 한동안 밑 빠진 독이어야 할 것 같다. 그 독을 끝없이 솟아나는 샘으로 바꾸는 일, 누구나 도서관의 가치를 체험하도록 모든 도서관의 문턱을 낮추고 삶터 속으로 다가가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