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jnilbo.com/ 2008. 12. 4.
(6)국내에서 배운다 - (3)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 |
제멋대로 눕거나 떠들면서 책과 논다 도서관內 미끄럼틀ㆍ그네ㆍ카페 강요안해 책과 오히려 친해져 자유로운 분위기서 다양성 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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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정숙한 도서관을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아이들은 의자나 방바닥에서 제각기 편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몇몇 어린이들은 목소리를 낮추지도 않고 친구들과 떠들고 있다. 무리지은 어린이들이 구석에 설치된 그네 의자를 탄다. 책 속에서 노는 아이들은 생기가 넘친다. 아이들과 책이 즐겁게 만나는 곳. '가르치지 않아서 더 큰 배움터' 노릇을 하는 곳. 바로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이다.
경기 용인 수지 동천동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은 책 2만5722권, 시청각 자료 1199점의 자료를 갖추고 있다. 사설 도서관 치고는 엄청난 규모다. 하루 400권의 책을 빌려주는 민간 도서관이자 지역 주민들의 문화공동체 모델로 자리 잡았다.
지금이야 번듯한 모습이지만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의 출발은 단출했다. 2000년 2월 19일 용인 수지 풍덕천의 상가 지하 132㎡(40평) 남짓한 공간에 박영숙(42)씨가 자비 2억 원을 들여 책 3000여 권으로 시작한 것. 박 관장은 어린 아이를 업고도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는, 누구에게나 열린 마을도서관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6개월간 준비 과정을 거쳤다고 한다. 대학 시절 야학 경험이 큰 재산이자 용기가 됐다.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처음엔 학부모들의 냉대 탓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성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서관에 있는 아이들을 수시로 불러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서관 지지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햇볕도 들지 않던 조그마한 어린이 도서관은 6년 뒤인 2006년 11월 사립공공도서관으로 등록되면서 확장ㆍ이전하는 경사를 맞게 된 것이다.
이름만큼 이곳은 어린이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준다. 반짇고리ㆍ약상자ㆍ공깃돌ㆍ시각장애인용 점자 촉각 책ㆍ피아노부터 지하 1층에는 그네 의자ㆍ미끄럼틀, 심지어 카페까지 도서관 곳곳에는 이용자를 배려한 시설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놀이터보다 도서관이 더 좋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아이들에게 억지로 책을 읽히지 않는 환경이 오히려 책을 좋아하게 만든다는 게 이 도서관의 믿음이다. 이 믿음 아래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유스럽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제멋대로 드러눕거나 앉아 있지만 책에 집중하는 눈빛만은 또릿또릿하다.
꿈이 영그는 곳인 만큼 아이들의 도서관에 대한 애정도 대단하다. 도서관 관리 등 운영도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작은 활동가'로 불리는 아이들은 빨간색 앞치마와 함께 책보수팀, 대출팀, 책꽂이팀, 장난감정리팀, 분리수거팀에서 일하면서 사회 활동을 배운다. 중학교 시절 다니던 아이들은 어느 덧 대학생이 돼 어린 동생들을 돌봐준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책 잃는 환경 제공뿐만 아니라 이곳은 '책 읽는'도서관을 넘어 '문화를 함께 나누는' 공동체 역할까지 한다. 책이 지식을 얻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같이 노는 장난감이자 친구이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까지 하는 것. 따라서 도서관에서는 크고 작은 모임이 수시로 열린다. 거창한 계획 아래 만들어진 모임들이 아니다.
'이런 모임은 어떨까', '할 수 있겠는데' 싶어 시작한 게 하나 둘 늘어나 벌써 수십 개가 생겼다. 가장 먼저 생긴 모임은 엄마들의 '독서회'다. 자녀의 독서교육을 위해 모인 엄마들끼리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 참여하면서 "엄마 스스로 책을 읽는 게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단다. 엄마가 책을 잡으니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놀이터 삼아 책을 가까이 했다.
어린이들이 책과 만나게 하려면 어른들이 먼저 책과 만나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밖에 매달 열리는 책 전시회, 작가와의 만남 등 문화행사와 어린이날 잔치, 마을축제, 작은 음악회 등 지역 주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가 풍성하다.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은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을 하는 사랑방인 것이다.
단 한 권으로도 한 사람의 일생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책. 그토록 중요하고 가치가 높은 책을 어떻게 어린이들과 만나게 할 것인가.
박영숙 관장은 "책은 읽는 것이지 읽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어린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 읽는 환경'을 위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것은 좋은 책으로 가득 차 있는 도서관이다.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이 아파트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는 힘도 '좋은 책'에서 나온다. 박 관장은 전문사서 2명의 도움을 받아 엄격하게 책을 고른다. 출판사가 홍보를 위해 공짜로 보내준 책도 내용이 좋지 않으면 서가에 배치하지 않는다. 도서 수준을 고르게 유지하는 게 도서관의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 그래서 기부금을 받으면 비싼 책부터 무조건 산다.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은 입시 위주의 책 읽기를 거스르는 독서운동을 지향한다. 논술이나 내신 성적을 위해 책을 단지 필독 목록에 올리는 세태에 일격을 가한다. 이런 의미에서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은 아이들의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누구나 스스럼없이 찾아올 수 있는 '느슨한' 공동체를 표방하는 셈. 아이들에게 경쟁이 아닌 성별ㆍ인종ㆍ빈부 등의 장벽을 뛰어 넘어 인간과의 소통을 이룰 수 있게끔 가르치는 곳이 바로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이다.
조사라 기자 srcho@jnilbo.com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책읽는 즐거움 누려야"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장 인터뷰 박영숙 관장
△ 광주지역 어린이 도서관은 지난해 12월 아이숲 어린이도서관에 이어 점차적으로 생기는 추세다. 어린이 도서관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특히 어린이도서관에 대한 요구가 크게 늘면서 '도서관은 책만 보는 곳이 아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도서관으로 자리를 지켜야 할 이유는 여전히 '책'이다. 결국 책을 읽고 나누는 즐거움이 일상으로 자리 잡지 못하면 도서관으로 뿌리내릴 이유나 힘을 갖기 힘들 것이다.
또한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공성'이다. 주요 대상이 아이들이기 때문에 나이ㆍ학력ㆍ언어ㆍ장애ㆍ경제력 등 무엇으로도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편안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도서관은 꿈 꿀 권리를 누리는 곳이지 가르치거나 평가하는 곳이 아니다.
△ 국내 어린이 도서관의 현황은 어떤가.
- 2000년대 들어 어린이도서관 '열풍'이라고 할 만큼 관심이 높아진 것은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서비스가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3년부터 기적의 도서관 건립운동으로 전국에 10개 '어린이 전용'도서관이 세워지면서 지자체마다 어린이 도서관을 새로 짓거나 기존 도서관의 어린이실을 리모델링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그만큼 과제도 많은 시점이다. 그런데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전문성을 쌓으려면 어린이서비스 담당자로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을 키우기 위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제 시작인만큼 활발한 연구 활동이 이어지고 다양한 기관, 단체에서 어린이서비스 교육과 재교육의 기회가 열려야 한다.
△ 느티나무 어린이 도서관이 어린이 문화 교육에 있어서 지향점은 무엇인가.
- 일상성과 자발성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책 읽기의 즐거움에 빠질 수 있기를 바라며,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책을 만나고 나누는 일이 일상이 되도록 애쓰고 있다. 간혹 도서관을 문화센터처럼 여기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느티나무는 백 명이면 백 가지로 책과 가까워지는 기회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책읽기의 즐거움이 전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 갈수록 우리 사회는 개인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강조되지만 정작 아이들은 주입식 교육에 매몰되는 거 같다. 어린이 문화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자면.
- 바로 그 점에서 도서관이 중요한 뜻을 가진다. 도서관은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더 큰 배움터라고 믿는다. 온 세상을 담은 책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배움의 동기도 스스로 배우는 힘도 풍성하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도서관은 책과 사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다. 백 사람이 백 가지 이유로 책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도서관은 학교처럼 나이나 점수, 학습능력으로 사람을 가르고 평가하는 곳이 아니다. 다양성이 오롯이 존중될 때 상상력과 창의력이 싹을 틔울 수 있다. 다양성이 존중되면 경쟁에서 자유로워지고 실패에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 똑같은 기준으로 정해진 과정을 경쟁적으로 따라가면서 상상력이 생기길 기대하는 건 돌에서 꽃이 피길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