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회 한구절]『아무튼, 술』, 김혼비 _ 낮술 낭독회
by 느티나무
귓속을 부드럽게 파고드는 아름다운 소리가 있었다.
오, 들렸다! 달그락달그락과 리듬은 비슷하지만 훨씬 맑고 쨍한 소리. 들어밨지만 들어본 적 없는 소리. 술이었다. 주류 코너에 즐비하게 놓인 온갖 종류의 술병들이 배의 엔진이 만들어내는 동요에 따라 흔들리며 좌우앞뒤에 놓인 술병들과 살짝살짝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소리였다. 커다란 벽 세 면을 둘러싸고 있는 술병들 사이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은근하면서도 장대하고 맑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했다.
묵직한 병들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울림이 수시로 교차하며 시간에 어떤 틈도 내어주지 않았다. 무한하게 이어지는 수많은 술병들의 울림을 커다란 배 안의 커다란 술 진열대가 아니라면 어디서 또 들을 수 있을까. 가만히 선 채로 술들의 소리를 한참 동안 들으며, 세상에 별이 반짝반짝대는 소리라는 게 있다면 이런 소리일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떨어지는 별을 보면서는 보드카 한 모금을, 반짞이는 별을 보면서는 발트해를 지나는 배 속 수많은 술병들을 떠올리게 되겠지. 어떤 술꾼의 세계에서는 별마저도 술과 이어져 있다.
『아무튼, 술』, 김혼비 , 제철소, 2019. 71면.
읽은 날: 2021년 8월 24일 (화)
*매주 화요일 늦은 3시부터 3층 동네부엌에서 낭독회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