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읽는 책] 『쇼코의 미소』
by 김보현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는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씬짜오, 씬짜오」 p. 89-90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냐고 이야기하면서.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p.115-116
‘언젠가는 떠나보냈어야 할 사람이다. 연연하지 말자.’
요 몇 년간 커뮤티니에서 떠돌았던 ‘인간관계에 지칠 때 보면 좋은 글’이라는 제목 아래 달렸던 글귀이다. 노란 포스트잇에 정갈한 손글씨로 꾹 꾹 눌러 쓰거나, 별이 가득한 밤 하늘 사진 위에 감성적인 문장을 얹은 글은 잊혀질 즈음 올라와 수백 개의 댓글을 받았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과 정리하는 과정을 겪을 때마다 그 글을 되새겼던 것 같다. 정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만 잘 하면 돼.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어. 그렇게 주문처럼 되뇌는 것도 잊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든 덜 아프고 덜 힘들게 눙쳐내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은 아닌다. ‘어차피 떠났을’ 사람이라며, 최선을 다하지 않은 관계를 합리화하면서 그것이 현명하다고 착각해 온 것은 아닐까. (김보현 사서 2017.09)
최은영,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