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짙어진 지난 6월 26일 토요일, '밤의 도서관에서 만나요' 첫 번째 만남이 있었습니다.
2021 정림학생건축상을 수상한 건축학도들과 사서, 이용자가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 나눴습니다.
건축학도가 지어 올린 도서관의 뒷이야기를 듣고, 사서와 이용자가 도서관에 대해 질문하는 흥미진진,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한 건축학도는 <1분 미리듣기> 유건돈, <Living Library> 정세미, <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 이호정, 김상민 님.
느티나무도서관 이성영 사서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자리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 작품소개
이성영(느티나무도서관 사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일 궁금하다. 지금부터는 작품의 뒷이야기를 들어볼까 한다.
유건돈(1분 미리듣기) 요즘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사회에서 잠깐 서서 음악을 1분 동안 미리 듣는 것처럼, 책도 꼭 그대로 읽어야하는 게 아니라 책도 가볍게 1분 정도 훑어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도서관도 그런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한 도서관을 상상했다. 세운상가는 70년대부터 6번 정도 다시 건축된 곳이다.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모서리 공간을 메이커 공간으로 새로운 가능성과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1분 미리듣기>의 도서관은 하나의 목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필요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정세미(Living Library) 어떤 지역에 도서관을 지을까 고민했고 홍대로 정했다. 도보권 안에 거점형으로 일상에서 접근성이 높은 곳을 우선으로 찾았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동교동에서 연남동까지 15분 도보 권역에 세 개의 거점으로 분산되어 있는 주거형 도서관이다.
첫 번째 거점은 출판사, 미디어 산업 등 서로 다른 산업 구역의 사람들이 만나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거점이 될 수 있는 곳이고, 두 번째 거점은 생산 거점에서 생산된 지식들을 아카이브하고 체험하고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 거점은 '살면서 읽는다'라는 곳인데, 거실과 열람실이 합쳐지고, 내 거실이었던 서가가 누군가에게 책장으로 공유되고,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책장이 다시 내 공간이 되는 곳이다. 낮 사이에 집을 비운 책장의 주인은 밤에 돌아와 어질러진 책장을 훑어보며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설계하며 '사적인 사유에서 오는 힘이 공유와 결합됐을 때 도서관의 힘이 극대화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유와 공유가 대척점이 아니라 합치면 시너지가 난다는 것을 건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골목에서 보이는 전경에도 집중했다. 한 블럭 안에 건물이 여러 개 있어서 사이사이 골목길을 중심으로 도서관 동선이 형성된다. 아카이브 체험 공간인 두 번째 공간은 일시적 주거도 해결할 수 있다.
김상민, 이호정(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 "독창적인 도시에서 공공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어떤 형태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사전 조사를 하면서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조사했는데, 도서관의 경우 카페나 미술관에 비해 언급이 잘 안되더라. 도서관보다는 독서라는 해시태그가 훨씬 주목받았다. 사람들이 자신이 독서하는 장면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하는 게 유행이다. 읽는 행위는 많이 하지만 역설적으로 도서관 안에서 하진 않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있는 도서관에 대해 고민했다.
선정한 지역은 용산이다. 조사한 결과 용산의 지역 도서관 수는 서울시 전체 꼴찌다. 또 용산을 떠올려보면 일상 생활 반경 안에서 찾아갈 수 있는 공공 공간이 적다. 그런 의미에서 삼각지 한 곳을 잘 갈무리해 공공도서관을 제작하는 형태를 떠올렸다. 일상적 도시의 풍경 안에 있는 상가 사이사이 서가를 삽입하고, 이것이 하나의 큰 도서관이 되는 것이다.
#건축학도에게 묻고 듣다
Q. <밤의 도서관>의 망겔처럼 본인이 도서관장이 되어 일할 사서를 뽑는다면, 어떤 사서를 찾을 것 같나요?
유건돈(1분 미리듣기) 친화력이 있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말 걸 수 있는 사람. 원하는 책을 질문하면 바로바로 찾아줄 수 있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사서가 있으면 좋겠다.
정세미(Living Library) 아무래도 도서관에 가변적인 공간이 많다보니까, 공간에 관심 있는 사람을 사서로 뽑고 싶다. 그리고... 공간이 넓으니 걷는 걸 좋아하시는 분?(웃음)
김상민, 이호정(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 일반적 상가와 도서관이 섞여있다 보니 찾는 사람들도 미용실에서 머리하던 기다리는 이가 들를 것 같다. 책을 기대하지 않고 찾아온 이들도 잘 응대해줄 수 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사서였으면 좋겠다.
Q. 본인의 작품이 전시된 느티나무도서관에 와 본 소감이 어떠셨나요?
정세미(Living Library) 궁금했던 공간을 직접 보니 재미있다. 놀이터에 나무로 지어진 성 같다는 생각을 했다. 리필스테이션 등 내용부터 물리적인 하드웨어까지 '내가 느끼고 표본으로 삼았던 도서관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계획했던 것들이 구현되어 있어서 반갑고 재미있었다.
유건돈(1분 미리듣기) 공모전 참여하며 상상했던 도서관이라 감탄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한 것이 처음이라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안난다.
김상민, 이호정(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 <밤의 도서관> 전시 소식을 전해듣고 다른 팀의 작품을 봤다. 굉장히 뜻깊었다. 퀄리티나 작업량에도 놀랐다. 발표하며 생각했던 비하인드도 풀 수 있어서 좋았다. 건축학과 작업상 모든 이야기를 풀 수 없고 도면에 이미지를 압축적으로 풀어내는 데 익숙해져있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 왼쪽부터 정세미 유건돈 김상민 이호정
1분 미리듣기
Q. 세운상가에는 1세대 메이커들이 있고 지금은 2세대, 3세대 작업자들과 공존하고 있는데, 여러 세대가 섞이는 도서관을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나요?
유건돈(1분 미리듣기) 메이커스페이스를 통해서 엮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전자 상가가 많이 있으니, 주변에 체험존을 준비하거나 작품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메이커들이 있을 테니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함께 하거나 이용자들의 메이커 활동을 도우며 섞일 수 있는 공간을 상상했다.
Q. 상인과 이용자의 협업을 개념으로 잡았는데, 혹시 본인의 메이커 경험이 설계에 적용된 건가요?
유건돈(1분 미리듣기) 어릴 때 이용했던 도서관은 지역 주민과 협력해 주말에 여러 프로그램을 했다. 세운상가 안에 메이커 스페이스가 있지만 일반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것 같지 않다. 세운상가 안을 가야만 이용할 수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었다. 자연스럽게 "여기 재밌어보인다" 하고 들어가기엔 위치상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밖으로 끄집어내 직설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Living Library
Q. 도서관 사서로서 공유와 사유의 경계에 있는 주거형 도서관을 설계하신 게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공공 성향이 강한 도서관과 달리 주거 공간은 안식을 취하는 사적인 공간인데, 설계하면서 특히 고려했던 문제점이 있나요?
정세미(Living Library) 도서관을 사적인 영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거주하는 곳과 교류를 활발히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나누었다. 기본적으로는 교류를 원하는 이들을 전제로 설계했다. 서가를 이용하고 싶어서 도서관에 오는 이용자들에게 열려있는 거주자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프라이버시가 존중되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Q.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 상호작용하려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서가와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거주자를 우선 모집하게 그들의 책을 수서하는 방식으로 설계하셨는지, 책을 우선으로 두고 그 공간에 어울리는 거주자를 꼽으려고 했는지 궁금해요.
정세미(Living Library)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C 거점은 한 사람에 의해 꾸며진 책을 따라가면서 관심사를 공유하는 서가로 생각했다. 그 안에서 분류체계를 따르지 않고. A와 B 거점의 공유 오피스나 레지던스는 철저하게 도서관에 의해서 수서된 자료로 채워진 서가로 구상했다.
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
Q. 용산을 탐사하며 건물과 입지 뿐만 아니라 오래전 역사부터 조사한 게 인상 깊었어요. 역사를 조사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해요.
이호정, 김상민(한 걸음만 내디디면 책이 있다) 건축학과는 판넬이라고, 커다란 종이에 여러 결과물을 담아 제출한다. 한 학기 동안의 고민을 한 장의 종이에 전부 담을 수는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공모전은 결과물이 책 형태라 최대한 고민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고, 역사적인 부분도 과감하게 집어넣었다. 용산은 재미있는 구석구석이 많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서울의 다른 지역이 성장을 할 때 진공상태에 있었던 곳이다. 이번 기회에 이야기를 풀고 싶었다.
김보현(정림건축문화재단 팀장)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건축학교와 정림학생건축상을 담당하고 있다. 제출물을 처음 보았을 때 희열을 잊을 수 없다. 고퀄리티의 수많은 책을 받았다. 공모전에서 도서관을 처음 주목하게 되어 느티나무도서관장님과 여러가지 이야기를 발전시켜 나갈 때도 흥미로웠지만, 그 이야기를 다시금 도서관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건축학도들이 단편적으로 소개해주신 것 말고도, 각각의 프로젝트가 갖고 있는 고민들도 깊다. 기회가 되신다면 꼭 정독해보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