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티나무에서는

이런 스승의 날...이런 선생님...

작성자 : 박영숙 작성일 : 2005-03-23 조회수 : 6,477

며칠 째 미루다 오늘에야 서점에 들러 비디오와 책 몇 권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귀하게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평소 포장같은 건 생략하고 사는 게으른 사람이 화사한 포장지까지 한 장 골라서.. 내일은 잠깐이라도 짬을 내 포장한 선물을 들고 읍사무소 옆 문정중학교를 찾아갈 생각입니다 ************************************************************************** 지난 주 수요일, 스승의 날 도서관에선 어머니독서회 1기 모임이 있는 날이라 여느 때처럼 서둘러 청소를 마치고 차 한 잔씩 만들어서는 사랑방에 둘러앉았습니다 날이 날인지라.. 공부할 책은 펼 생각도 않고 그날 아침 아이들 어떻게 학교 보냈냐는 이야기가 먼저 나왔더랬지요 카드를 만들고 편지를 쓰고... 그렇게 저희들끼리 뭔가 마련해가지고 간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그래도 특별한 날이라고 선생님께 마음을 전하려고 한 걸까, 혹은 자기만 빠져 눈총을 받게 될까봐 걱정을 했던 걸일까... 그렇게 엄마들 생각대로 아이들 어린 마음을 짐작해가며 또 한 차례 우리의 교육현실, 학교문제로 한동안 넋두리가 이어졌습니다 11시가 좀 넘어서였을까 스승의날 단축수업으로 학교를 일찍 마친 아이들이 하나 둘 도서관으로 내려오는데 문정중학교 1학년 같은 반인 두 아이가 멋쩍은 표정으로 들어와.. 담임선생님이 갖다 드리랬다며 케이크 한 상자를 전해주었습니다 그 반 담임 선생님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녀석들 참 좋은 선생님을 만나 다행이라 여기긴 했었지만 케이크 상자 위에 붙어 있던, 또박또박 정갈한 글씨가 적힌 카드에 눈길이 가는 순간.. 내용을 다 읽기도 전에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그 두 아이가 이곳의 공부방에 다닌다는 걸 아시고는 봉사하는 선생님들을 위해 보내주신.. 스승의날, 선생님께 받은 선물... 선물을 보내주신 선생님... 어린 나이부터 어려운 집안환경 탓에 사는 게 녹녹치 않다는 걸 배워버린 아이들을 남달리 애틋하게 지켜보고 계셨을 그 담임 선생님 그 살가운 마음씀을 한 순간에 그대로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왜 그리도 어색해하는지.. 학교 급식도 없었던 모양인데, 점심 먹고 가라는 것도 마다하며 졸업한 초등학교에 들러봐야겠다고 서둘러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 선생님 보내주신 선물은 그저 우리들에게만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전해준 게 아니라 어쩌면 그 두 아이에게 더 오래오래 간직될 큰 가르침을 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또다시 뒤늦은 깨달음을 떠올렸지요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는 어마어마한 이야기에도 가슴이 철렁하기는 커녕 예사롭게 들어넘기게 되는 현실이라지만 실망이 두려워 믿음을 포기하기 전에, 후회가 두려워 마음열기를 주저하기 전에.. 혹시 우리의 섣부른 포기로 송두리째 잃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소중한 마음, 반짝이는 열정을 가진 분들이 아직도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더 많이 계신 건 아닐지 언제까지고 거듭거듭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 3월말쯤이었을 겁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딸이 도서관 책으로 독후감을 써 학교에서 칭찬을 받았다고 한 회원 어머니가 그 공책을 들고 와 고맙다며 보여주신 적이 있었지요 두 바닥을 빼곡히 메운 독후감은 <나무를 심은 사람>을 읽고 쓴 내용이었는데요 흐뭇한 마음으로 그 글을 읽다가 눈에 띈 건...! 공책 맨 아래 여백에 정성을 담아 또박또박 적힌 몇 줄의 글씨.. 틀린 철자를 바로잡거나 작문 점수를 매긴 평가가 아니라, 좋은 책을 읽고 감동한 걸 칭찬하며 그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있으니 꼭 보길 바란다는 선생님의 짧은 편지였습니다 이번 스승의날 케이크 상자 위의 카드에 적혀 있던 것과 똑같은... 바로 그 담임선생님의 글씨였지요 귀한 선물을 받고 어쩔 줄 몰라하다 마침 그때 일을 떠올리고는 그 선생님, 아침이면 아이들과 책읽고 글쓰는 시간 가지신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뒤늦게.. 비디오랑 책 몇 권이라도 구해드려야겠다 마음먹었던 거지요 이 작은 선물 전해드리고 나면, 그 선생님.. 아이들 데리고 또 얼마나 특별한 아침자습시간을 마련해 주실까... 벌써부터 설레는 기대로 입가엔 자꾸만 웃음이 돌고.. 구김이라도 갈까 손톱 끝으로 꼭꼭 눌러가며 정성껏 포장지를 접습니다 (200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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