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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저 청소일 하는데요?』김예지 작가 북토크 풍경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22-08-17 조회수 : 5,785

 

 

7월 29일부터 8월 12일까지, 비건 베이커리이자 건축문화공간 '비건드'로 컬렉션 버스킹을 다녀왔습니다. 

7월 30일에는 <경로를 재탐색한 사람들> 토크에서 김예지 작가를 만났습니다.

자리에서 오간 방황과 방랑 사이의 즐거움, 경로 전환의 경험담을 전합니다.

 

 

 

 

나는 길을 벗어나기를 좋아하고, 
내가 아는 것 너머로 나가보기를 좋아하고, 


아마 몇 킬로미터쯤 더 걸어야 하겠지만 다른 길을 통해서, 
지도와 다투는 나침반에 의지하여, 
도중에 만난 낯선 사람들이 알려준 
천차만별의 방향 지시에 의지하여 돌아오기를 좋아한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서부의 외딴 마을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채 홀로 모텔에서 보내는 밤들, 


괴상한 그림과 꽃무늬 이불과 케이블 텔레비전과 함께하기에 
나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잠시 벗어나는 시간이 되어주는 그 밤들, 


베냐민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스스로 어디 있는지 알기는 해도 
사실 길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 시간들.

 

낯익은 것을 낯설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 
이를테면 내가 사는 곳에서 지금은 사라진 풍경과 사라진 묘지와 

사라진 동식물을 알려주는 이야기들. 


대화하는 사람들만을 남긴 채 
주변의 다른 모든 것을 사라지게끔 만드는 대화들. 


온종일 잊고 있다가 늦게서야 
그날 나의 모든 느낌과 행동에 영향을 미쳤음을 깨닫게 되는 간밤의 꿈들……. 


이런 길 잃기들은 원래의 길이나 아예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시작이다.

 

 

 

 

 

『길 잃기 안내서』 리베카 솔닛(반비)

여덟 번째 컬렉션 버스킹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재탐색하시겠습니까?>의

나침반이 된 문장을 낭독하며 이야기를 열었습니다.

 

 

 

 

# 작가 '김예지'의 '일'

 

김보현 사서 | 느티나무도서관 컬렉션 중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는가>에 사람들이 자석에 이끌리듯 다가가는 걸 자주 봐요. 그만큼 사람들이 일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집필하게 된 이유도 “친구와 나누지 못하는 일에 관한 이야기들을 엮은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하루의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내는데도 어떤 일의 순간은 가볍게 나누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김예지 작가 | 일이라는 게 삶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삶의 질을 좌지우지하잖아요. 자긍심이라도 있어야 돈을 버는 데도 즐거운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그 마음을 얘기하지 못하는 건, 비단 일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우리는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잘 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떨 때는 어둡기도 하고 어떨 때는 너무 사사롭기도 하고, ‘저 사람도 자기 인생에 고민이 있을 텐데 내가 이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그런 이유가 있겠죠? 내 고민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 혼자서 일기를 쓴다든지, 책을 쓴다든지 누군가와 대면하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굉장히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고, 쓰게 되더라고요. 저 역시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책을 쓴 것 같아요.

 

 

 

 

 

 

김보현 사서 |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내야 되나?’ 하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는데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책으로 만나서 도움을 받을 때가 있잖아요. 일에 대해 흔히 이런 말을 하는데. “원래 먹고사는 게 그런 거야, 일하는 게 다 그렇지.” 어쩌면 그런 말들 때문에 꼭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뭉뚱그려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을 쓰고 나서 주변에 청소 일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나요?

 

김예지 작가 | 네.  어디 가서 “무슨 일 하세요?”라고 많이 묻잖아요. 책을 쓰기 전에는 청소한다고 말하는 게 좀 부끄러웠어요. 직업이 갖고 있는 이미지가 어떤지 아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미리 판단해 버리는 거죠. 근데 어느 순간 그런 것도 느꼈어요. ‘그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말자고 얘기해 놓고 내가 부끄러워하고 숨기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때부터 그냥 어디 가서 뭘 하든 청소 이야기를 먼저 합니다. 처음 듣는 분들은 좀 신기해하시죠. “젊은 나이에 그런 일을 하나?” 이런 얘기도 많이 듣지만 계속 내비쳐야 한다는 걸 알게 되어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보현 사서 | 다행입니다. 아까 “무슨 일 하시나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쓰인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일과 나를 분리하는 삶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일에 인격을 부여하게 되는 순간도 분명히 있잖아요. 전에 비슷한 질문에 ‘나’라는 사람의 카테고리 안에 일이 있다고 하셨었는데, 이게 정말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를 쪼개서 생각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김예지 작가 | 일이 자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에요. 그걸 분리하는, 분리해야 하는 이유는 일 때문에 나를 잃는 경우가 많아서예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먹고살고, 나를 책임지고, 어쨌든 나를 굴러갈 수 있게 해주잖아요. 근데 그 일이 내 마음에 안 든다고 나 자신도 마음에 안 든다? 그건 아니라는 거죠. ‘청소 일은 내 삶을 잘 굴러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일이야, 그리고 나는 그 외에도 또 다른 자아가 있어!’라고 생각하니까 좀 편해지더라고요.

 

 

 

 

 

 

김보현 사서 | 여러 일을 하는 직업인으로서 느끼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일의 중심을 잡기 어려울 때가 있다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김예지 작가 | 마감이 어렵죠. 열과 성을 다해 밤새워 작업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저는 일을 여러 개 하니까 업무 배분을 잘해야 하는데 일이 몰리는 마감 때 조금 힘들어요. 일이 몰릴 때는 몰아치는 경향이 있어요. 

김보현 사서 | 『일하는 마음과 앓는 마음』에서 처음 직장을 다니게 되었을 때 “이제 해냈다! 끝났다!” 싶었는데 곧 다음 관문, 또 그다음 관문이 나타났다고 하셨던 부분이 좋았어요. 또 다른 재탐색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김예지 작가 | 제가 청소를 한 지 8년이 넘었는데요, 10년째에는 청소 일을 그만두고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조금 더 집중할 계획이에요. 요즘 들어 해보고 싶은 일은 숲 해설가예요. 아침마다 집 앞에 있는 작은 산을 돌아요. 어느 날은 등산을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저 돌기도 하는데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나무 이름을 알고서부터는 더 자세히 보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에도 숲 해설을 들었었거든요. 그때 되게 좋았어요. 나중에 그것도 한번 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보현 사서 |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에서는 사회불안장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일하는 마음과 앓는 마음』에서는 일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있었던 일들, 뒤따라 앓는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어요.『저 청소일 하는데요?』 다음에 작가님이 걸어온 재탐색의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김예지 작가 | 『저 청소일 하는데요』는 희망적이잖아요. 그러다가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를 내니 다들 당황하셨어요. “왜 갑자기?” 잘 살고 있다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첫 책을 낸 이후로 많은 분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받았어요. 나의 사적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같이 고민할 여지를 준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에서는 제 평생에 걸쳐 가장 고민했던 이야기를 담았어요. 저도 사회불안장애에 관련된 자료를 되게 많이 찾아봤었거든요. 제게는 일종의 희망이었던 것 같아요. 출간 후  “이런 책을 너무 기다려왔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내 상태를 설명을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는데 마침 이런 책이 있어 좋았다고요.『일하는 마음과 앓는 마음』도 그래요. 사람이 다 다르지만 또 비슷하잖아요. 이야기도 똑같아요. 사사로운 고민들이 좀 담겨 있는 책이에요.

 

 

 

 

 

# Q&A

Q.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는 것 같은 일과 취직을 두고 갈등 중입니다. 어떤 길을 가야 할까요?

김예지 작가 | 단언할 수 없는 게, 돈 버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조금 더 해보고 취직하셔도 될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에 재능이 없다고 하시는 걸 보면 자기 능력을 발휘할 만큼의 커리어를 쌓지는 않으신 것 같은데

취직하기 전에 좋아하는, 말 그대로 열정적인 삶을 조금은 견뎌봤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Q. 사회 초년생에게 ‘이것만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이것만은 중심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다면?

김예지 작가 |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걸 좋아하는가?’를 많이 생각하면 좋겠어요.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뭘 좋아했는지 잊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살아가는 데 좋은 원동력이 되거든요.

우리 사회가 바쁘잖아요. 아무리 좋아해도  돈이 되지 않는 것은 터부시하고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은 사람은 결국에는 여유를 찾더라고요.

언젠가는 내가 일로 하지 않더라도 도전해 보고 싶은 게 생기고, 이제 여기에 더 마음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와요.

좋아하는 데 수지타산을 생각하지 않고 이끌어가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Q. 경로를 이탈했는데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면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요?

김예지 작가 | 제가 청소를 시작할 때도 그랬어요. 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를 준비했지만 잘 안됐고.

청소 일을 하면서도 사실은 4년 동안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어요. 

그때 ‘나 잘못하고 있나? 처음 다닌 회사에서 좀 더 커리어를 쌓고 이직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 뭔가를 계속 꾸준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 있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불안감은 미래에 대한 큰 압박에서 오기도 해요. 미래를 너무 생각하는 거죠. 당연히 생각할 수밖에 없죠.

지금 하는 일이 잘 안 풀리면,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면…. 그런데 사실 인생이 망하지는 않거든요.

더디거나, 돈을 조금 못 벌 뿐이지. 제 경우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극복했어요.

 

Q. 중앙일보에 연재하신 「김예지의 10컷 만화」를 보면

사회적 무력감, 자취하는 여성의 불안감, 코로나 이후 늘어난 플라스틱 배출량 등 공감할 만한 사회적 이슈를  날카롭게 지적하는데,

작가님이 생각하는 또 다른 사회문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예지 작가 | 저는 비거니즘을 지향하고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요.

어제는 2022년 7월 28일부로 우리가 지구의 1년치 자원을 모두 소모해서, 남은 날 동안 후손들이 써야 할 자원을 빚내서 살아가게 된다는 기사를 봤어요. 

인간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인간은 지구의 자원을 이용해 많은 발전을 하고 그에 따른 생활의 편의를 얻었는데,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곽재식, 어크로스)라는 책 제목처럼 인류가 싹 사라지면 지구는 재생하겠죠.

그러니까 인간들이 잘해야 되거든요. 요즘은 이 고민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과 잘 나눌까? 생각해요.

 

오늘도 친구가 에어컨 틀었다길래 에어컨 때문에 지구가 더 더워진다고 말하니 답장을 안 하더라고요.(웃음)

주변에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저를 예민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소수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의 문제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좋겠어요.

 

 

 

 

 

Q. 불안함이 커지고 지금 하는 일 아니면 나는 별 가치 없는 사람이 될 것 같아요. 익숙함에 내 삶을 저당 잡힌 듯합니다.

김예지 작가 | 저도 좀 어렵네요. 지금 하는 일에서 어떤 권태감을 느끼고 계신 것 같아요.

너무 무책임한 얘기처럼 들릴까 싶어 고민되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다른 일을 해보지 않으면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기보다 정말로 원한다면 그만둬보고 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Q.  60대가 되면 청소 일로 경제활동을 시작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청소를 하려고 했던 이유 중 하나는 AI 기술이 발달되어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작가님도  동의하시는지 먼저 묻고 싶어요. 

체력이 점점 약해지는 게 느껴지는데 기계의 힘을 좀 더 많이 빌려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랫동안 청소 일을 하셨으니 기술의 발전이 청소 일에서 좀 더 근무 환경을 낫게 할 여지가 있다고 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예지 작가 | 저 역시 기계가 발달하더라도 청소는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기계로 구현하기 가장 힘든 게 손이라고 들었어요. 청소에는 손가락과 악력이 중요하거든요.

누구나 할 수 있고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일도 맞죠. 청소 기술은 더 많이 발전해야 되는데 우리 인류가 어디까지 갈지는 알 수 없어요.

요즘에는 AI가 그림도 그리잖아요.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네요.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기계가 대신할 수 있으니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될 테고.

 

김보현 사서 | 이야기 나누다 보니 벌써 마칠 시간이 되었네요.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들은 이야기가 각자의 길 잃기에 좋은 길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함께해 주신 김예지 작가님, 감사합니다.

방황과 방랑 사이를 넘나드는 즐거움을 이야기했던 여덟 번째 컬렉션 버스킹은 8월 12일로 막을 내렸습니다.

다음 느티나무도서관의 여행지는 어디일지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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