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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소설가와 함께 한 <낭독하는 오후>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9-02-01 조회수 : 9,302

 

한창훈 소설가와 함께 한 <낭독하는 오후>

 

 2019126일 오후 두 시, 한창훈 소설가가 느티나무도서관을 찾았습니다.

1월부터 4월까지, 매달 열리는 <느티나무 작가 데이트 - 낭독하는 오후>의 첫 초대손님이었죠.

 

 

 


 

 

<낭독하는 오후>는 느티나무도서관 뜰아래(B1)에서 열렸습니다.

어린 꼬마 손님들이 맨 앞자리에 앉아 낭독회를 기다리는 바람에 한창훈 소설가는 "여러 번 낭독회를 가졌지만 관객 평균연령이 이렇게 어린 건 여기가 처음"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답니다.

 

 

<낭독하는 오후>에는 모두 다섯 분이 출연해 주셨습니다. 

한창훈 소설가를 비롯해 진행을 맡은 김서령 소설가, 낭독은 박유진 소설가와 정미영 동화작가가 맡아주셨고, 정기훈님은 기타 연주로 낭독회를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주셨어요.

 

 


 

 

 


 

낭독회는 한창훈 소설가에 대한 소개말로 시작되었습니다.

 

남쪽 바다 먼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얻은 언어와 정서로 이십오년 넘게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원고 쓰면서 날밤 새운 적 없으나 마감 펑크는 딱 한 번 냈습니다. 욕을 잘하고 웃기는 소리도 종종 합니다. 그 외에는 침묵합니다. 사람을 볼 때 51점만 되면 100점 주자,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주어야지 꿀 주면 안 된다, 미워할 것은 끝까지 미워하자, 땅은 원래 사람 것이 아니니 죽을 때까지 단 한 평도 소유하지 않는다, 따위를 생활신조로 갖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섬, 거문도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몇 권의 소설집, 몇 권의 장편소설, 몇 권의 산문집과 어린이책을 냈습니다.

 

김서령 | 얼마 전 출간한 새 장편소설 <네가 이 별을 떠날 때>는 뜻밖에도 어린왕자 이야기예요. 80년 전 생떽쥐베리와 헤어지고 지구를 떠

    났던 어린왕자가 한국의 섬마을에 찾아온 이야기죠. 설정만으로도 놀라워요. 어린왕자가 한국의 바다를 찾아오다뇨.

 

한창훈 | 꼭 그 이야기를 쓰고 싶다 생각을 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글을 읽을 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왕자를 읽었고, 어린왕자는 우리

    에게 있어 가장 대단한 판타지거든요. 그 판타지를 훼손하면 안 되었고 그럼에도 어린 왕자가 한국의 섬마을을 찾아올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부여해야 했으니까요.

 

김서령 | 평생 컨테이선의 선장으로 배를 타다 아내와 사별한 뒤 고향 섬마을로 돌아온 남자가 등장합니다. 낚시로 소일하며 조용히 지내고 있죠.

    러던 어느 날, 금빛 머리칼의 조그만 아이가 그의 마당으로 들어와요. 그러곤 물고기를 그려달라고 해요. 남자는 묘한 기시감에 시달리죠

    바로 이 그림이 떠올랐기 때문이에요.

 

 


 

  

김서령 |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호주머니에서 이 그림을 꺼냅니다. 생떽쥐베리가 그려줬던, 멍이 세 개 난 그 상자 그림을 말예요.

 

 

"그런데 이 그림을...... 여태껏 가지고 있니?"

"그럼, 이것을 왜 버려? 이 안에 양이 있는데."

 

 

한창훈 |  이 소설은 제게 있어 이십육 년 작가생활의 총화이자 결론이라는 생각을 해요. 내가 이걸 쓰려고 그토록 오래 바다를 보며 살아왔구나. 이걸 

     쓰려고 그렇게 오래 배를 타고 바닷가길을 걸었구나 생각했어요. 이 소설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그제야 이제까지의 제 행보가, 심지어 인

     생까지도 조금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어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아내는 간신히 그 말을 하고나서 다시 혼수상태가 되었고 경련이 찾아왔다. 그리고 삐, 소리와 함께 침대 위에 붙어 있는 모니터에 일직선이 나타났다. 일정한 곡선을 그리던 심전도와 산소 포화도, 맥박 모두 반듯하게 퍼져버린 것이다. 나는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횡으로 누운 반듯한 일직선. 그것은 죽음이었고 동시에 또하나의 수평선이었다.

“1712분 사망하셨습니다.”

의사는 사망선고를 내렸다. 일직선은 그대로 있었다. 그동안 봐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수평선. 아내는 그곳으로 가버린 듯했다. 안녕 난 이곳으로 가, 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 수평선에서 만나, 이러는 것만 같았다.

 

 

 


 

김서령 |  선생님은 실제 배를 타셨어요. 항해도 하셨고 북극까지도 다녀오셨어요. 지금은 선생님 소유의 작은 배가 있기도 하고요. 책 속 주인공도 

     평생 배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 보았는데, 아무리 열심히 가도 수평선은 늘 그 자리에서 영원히 닿지 못할 곳처럼 보였는데, 그 수평선이 

     아내의 죽음으로 내 곁으로 다시 와요. 모니터의 일직선으로요. 선생님의 수평선에 대해 듣고 싶어요.

 

한창훈 | 수평선은 정확히 저 곳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가상의 존재예요. 보이긴 하지만 어디인지 알 수 없고, 다다를 수도 없어요. 아내의 

    죽음 역시 주인공에게 그렇게 다가왔을 거예요. 늘 자신이 바라보던 수평선처럼, 닿을 수 없는 곳. 어딘가로 떠나갔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이별.

 

김서령 |  이 소설 이전에 출간된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는 따님과 같이 책을 만드셨어. 선생님이 소설을 쓰고, 따님이 일러스트를 그렸어요

     따님과 함께 책 작업을 한다는 것, 매력적이었을 것 같아요.

 

한창훈 |  딸이 그림을 전공했는데, 그러느라 돈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빚 갚아라, 하면서 그림을 그리게 했죠. (웃음)

 

김서령 |  다른 책들에 비해 이 책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은 유독 더 은은하고 깊게 다가왔어요. 그래서 말인데, 낭독회에서 <작가의 말>을 낭독하는

     건 좀 이상하다 싶기도 하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어요.

 

 

 


 

바닷가를 일만 번 걸었습니다.

발자국과 파도 소리

수평선에서 날아오는 물새

물새의 그림자가 미끄러지는 수면

예전에 찾아갔던 먼바다 낯선 항구들과

생의 갈림길마다 맞닥뜨렸던 이들에 대한 기억

왜 나는 번번이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가,

하는 의문들이 늘 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나를 어디에 이르게 하는 장치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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