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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의 느티나무 터 이야기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9-03-29 조회수 : 10,061

 

2019년 3월 29일의 도서관

 

 

 

 

 

 


 

느티나무도서관 (2000년생, 20세)

*동천동 도서관건물은 2007년에 건립 

 

 

 

 


 

첼로 선율로 퍼지는 삼일절 노래 ,

 

 

 

 


 

100년이 지나서도 절절한 독립선언서, 

 

 

 

 


 

그 때, 여기 살았던 한 사내에 대한 이야기.

 

 

 

 


 

이곳은

 

 

 


 

1919년 3월 29일 

 

 

 


 

머내만세운동에 참가한,

 

 

 


 

애국지사 김원배(1889~?)가

 

 

 

 


 

당시 농사짓던 터전입니다. 

 

 

 

 

 


 

2019년 3월 29일.

 

 

 

 


 

만세운동 100주년에, 

 

 

 

 


 

머내 주민들이

 

 

 

 

그의 행적을 밝혀

 

 

 

 

기립니다.  

 

 

 

 

현재 느티나무도서관이 세워져 있는 자리는 

100년 전에 김원배 선생이 농사짓던 땅이라고 합니다. 

 

마을의 지리와 역사를 찾아내는 프로젝트 그룹인 

머내여지도팀이 작년에 이 사실을 새롭게 발견해냈습니다.  

1919년 3월 29일, 오늘로부터 100년전 머내만세운동 당시 

동천동, 고기동에서 17명의 애국지사가 처벌을 받았습니다. 

 

부당한 식민통치에 맞섰던 선조들의 뜻을 기억하며

17 애국지사들이 흔적이 서린 마을 곳곳에 표석을 세워나갈 예정입니다. 

느티나무도서관에는 김원배 선생의 이름으로 그 첫번째 표석을 세웠습니다. 

  

김원배 선생과 느티나무도서관 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김창희님이 쓴 글을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도서관에 오시면 읽을 수 있고, 아래에도 덧붙여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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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의 터전에 도서관을 세우다

 

- 느티나무도서관 자리의 내력을 찾아서

 

글: 머내여지도 김창희

 

 

느티나무도서관이 용인 수지 지역공동체 활동의 중심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나가고 있는 것은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잘 아는 사실입니다. 느티나무도서관에 갈 때마다 참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느티나무도서관의 터가 궁금하여

 

그러던 어느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느티나무도서관이 자리 잡은 곳은 도대체 어떤 장소일까?’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건 풍수지리나 부동산 가치와는 일점일획도 관계없는 궁금증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속한 공부모임 <머내여지도>는 우리 마을 머내(동천동+고기동)의 역사와 지리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느티나무도서관의 자리는 어떤 역사적지리적 맥락 속에 있을까 하는 호기심입니다.

그런 의문은 구청이나 등기소 같은 관공서에 가지 않고 집이나 사무실에 앉아서도 인터넷의 도움만 받으면 얼마든지 풀 수 있습니다. <머내여지도>는 그런 방법을 여러 차례 연습해 왔으니까요.

모든 일의 시작은 도서관의 지번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인터넷 포털이 제공하는 지도를 보면 동천동 882-3번지라고 바로 나옵니다. 2000년에 문을 연 느티나무도서관이 2007년에 새 집을 지어 이사 와서 지금까지 둥지를 틀고 있는 곳의 지번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인터넷 지도를 사용해 본 사람들은 대개 다 압니다.

 

 

일제강점기 <토지조사부>를 살펴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일제강점기, 특히 우리나라에 근대적 지번 제도가 도입된 1910년대 토지조사사업의 결과로 부여되어 한 세기 가까이 사용되어 온, 바로 그 지번인지 궁금했습니다. 이런 때는 국가기록원 사이트에 가서 확인하면 됩니다. (www.archives.go.kr)

거기서 동천리 토지조사부라고 키워드를 줘서 검색해보세요. 그러면 무려 100년도 넘은 1912년에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동천리 토지조사부의 스캔본이 나타납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본 식민세력이 우리나라를 근대적 수탈의 틀 속에 몰아넣기 위해 작성한 토지소유권 확인 작업의 결과물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토지조사부에서는 동천동(또는 동천리) 882-3번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100여 년 전 동천리에는 760번지까지만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건 도대체 뭡니까? 바로 1990년대 이후 수지 지역이 고속도로 건너편 분당 지역의 신도시 붐을 타고 택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이후 새로 부여된 지번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그 지번은 수지 난개발의 역사를 고스란히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때는 옛지번을 찾는 아주 편리한 방법이 있습니다. 용인시청의 홈페이지(www.yongin.go.kr)에 가서 첫 화면의 바뀐 지번 찾기 서비스를 클릭해보세요. 거기에 지금의 지번을 입력한 뒤 옛 지번을 찾아달라고 컴퓨터에게 부탁하면 1초도 안 돼 알려줍니다. 참 좋은 세상입니다. 그 결과, 저는 느티나무도서관의 지번이 원래는 동천동 294번지’(나중에 -1, -2번지 등의 부속지번으로 분필)였는데, 2004년 시행된 용인동천택지개발사업의 결과 단독주택 택지로 개발되면서 지금과 같은 완전히 새로운 지번으로 바뀐 사실을 아주 간단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쉽지요~~?

그러면 그 다음 일은 조금 전에 살펴보았던 토지조사부로 다시 가는 겁니다. 거기서 동천리 294번지를 찾는 거지요. 그렇게 해서 100여 년 전 294번지가 분필되기 전에 도대체 어느 정도 규모의 필지였고, 지목은 무엇이었으며, 그 소유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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