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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작가데이트 2회 -신용목 시인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9-04-03 조회수 : 9,571

느티나무 작가데이트 2회 신용목 시인

 

느티나무 작가데이트 두 번째 초대손님은 신용목 시인이었답니다. 지난 223일 신용목 시인이 느티나무도서관을 찾아주셨어요. 많은 분들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박유진 소설가와 강효정 연극배우가 낭독을 도와주셨고요. 기타리스트 정기훈님이 잔잔한 연주를 보태주셨어요. 진행은 김서령 소설가가 맡아주셨습니다.

 

 


 

김서령 | 어디서나 작가를 초대하면 프로필 소개로 시작하죠?

신용목 시인은 1900년대에 태어났어요. 사실 저와 동갑내기 작가라서 제 나이도 숨길 겸 정확히 몇 년도에 태어났는지는 비밀로 할게요.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요. 그동안 네 권의 시집과 산문집을 한 권 출간했습니다. 첫 시집이었어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두 번째 시집이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 이렇게 바람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바람의 시인이라고 불리기도 했고요. 세 번째 시집은 <아무 날의 도시>, 그리고 네 번째 시집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입니다. 이 제목은 시집에 실린 <모래시계>의 시구예요.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면, 내가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부르지 않아도 나는 돌아보았다.’ 이런 시를 쓰는 시인입니다. 그리고 산문집 제목은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헌데 제목 아래 부제가 붙어 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당신을 잊은 사람처럼.

그리고 상도 많이 받으셨어요. 현대시작품상, 노작문학상, 시작문학상, 백석문학상 등.

 

신용목 | 반갑습니다. 이렇게 낭만적이고 우아한 도서관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아서 지금도 조금 어리둥절한 기분이에요.

 

김서령 | 이렇게 예쁜 도서관 만나기도 쉽지 않아요.

 

신용목 | 정말 그런 것 같네요.

 

 



 

김서령 | 여긴 시인지망생들이 모인 자리도 아니고, 그저 시를 즐기고, 시를 기뻐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러니 신시인님, 우리 학술적이고 난해한 이야기는 하지 말기로 해요. 또 원래 그런 분도 아니시죠?

 

신용목 | , 절대 아닙니다. (웃음)

 

김서령 | 낭독자가 대기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첫 시는 신시인님이 직접 낭독해 주세요. 시집의 첫 시 어때요?

 

 


 

갈대 등본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살을 걸고 싶은 날은 갔다 모든 모의가 한 잎 석양빛을 거느렸으니

 

바람에도 지층이 있다면 그들의 화석에는 저녁만이 남을 것이다

 

내 각오는 세월의 추를 끄는 흔들림이 아니었다 초승의 낮달이 그리는 흉터처럼

바람의 목청으로 울다 허리 꺾인 가장

 

아버지의 뼈 속에는 바람이 있다 나는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김서령 | 신시인님의 첫 시집은 온통 아버지 이야기예요.

 

신용목 | 제 기억 속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이미지예요. 아버지를 사랑하기도 했고 아버지를 미워하기도 했는데, 시 속에서 아버지를 용서하기도 했고 아버지를 객관화해서 바라보기도 했어요. 아버지는 나를 세상에 존재하게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의 한계를 심어준 사람이기도 하죠.

 

김서령 | 신시인님의 시는 오래 읽어야 알아요. 아주 천천히, 여러 번. 저는 이 시도 참 오래 읽었어요. 이런 대목이 있죠.

 

사실은 말이야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연금술일지도 몰라,

나는 유리컵 속에 숨은 아름다운 금들을 본 적도 나무가 가진 신비로운 나이테를 본 적도 없거든,

그것들이 깨지거나 잘리기 전에는 말이야

 

- <게으른 시체> 중에서

 

신용목 | 시는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아름다운 백자를 보고 있다고 상상해봐요. 어느 날 백자가 깨졌어요. 조각조각으로 부서졌어요. 그 조각들을 다시 이어붙여 백자의 모습으로 복원한다 한들, 그때 백자가 깨지면서 흩어졌던 어둠들을 우리는 다시 모을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는 못할 거예요. 그 어둠들은 흩어졌고 새 어둠이 백자 속에 고였을 거예요. 저는 처음 백자 속에 가두어졌던 어둠과 깨어질 때 흩어졌던 어둠들과 새로 백자 속에 고인 어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김서령 | 이번 산문집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어요. 아주 예쁜 책이고, 심지어 사진까지 직접 찍으셨어요.

 

신용목 | 실은 조금 쉬고 싶어서 호주에 오래 다녀왔어요. 호주에 가겠다는 얘길 했더니 한 출판사 편집장이 그렇다면 그곳에서 지낸 이야기를 책으로 엮자 하셨고 계약금으로 비행기값을 받았어요. 그러고도 계속 안 쓰고 버티니까 웹진에 연재를 해달라고 했어. 연재를 하라 그러면 억지로라도 쓰게 되잖아요. 게으름도 못 피우게. 그렇게 연재를 하고 그걸 책으로 묶었어요, 사진은 제가 잘 찍는 사람이 아닌데, 그곳 풍경이 하도 예뻐서 아무렇게나 카메라만 갖다대도 그림이 나오더라고요.

 


 

 

모든 것이 그렇다

 

꼭 너를 사랑하는 일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

 

누구나 수백 가지 이유를 버리고 단 한 가지 이유로 서로를 사랑한다.

 

누구나 수백 가지 이유를 지우고 단 한 가지 이유로 서로와 헤어진다.

 

꼭 생의 쓸쓸한 진실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글들도 그렇다.

 

 

김서령 | 신시인님 이 산문집은 그냥 이대로 시집 같아요. 모든 것이 그렇다, 이것도 그냥 시잖아요. 신시인님 평소 시보다는 조금 읽기 편한 시.

 

신용목 | 제 시들이 어렵나요?

 

김서령 | 첫 시집 시들은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나중 시들은 좀 어려워요.

 

신용목 | 그럴리가 없는데! (웃음)

 

김서령 | 어렵다니까요!

 

신용목 | 시는 한 줄 한 줄 다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어요. 지금 내 코끝을 스치는 공기, 옆을 스치는 바람처럼 그때그때 내 마음과 어울려 빚어내는 마음의 소리라고 생각하시면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예요. 모두의 감각으로 동일한 해석을 낼 수야 없잖아요. 그러니 이해가 가면 이해가 가는 대로, 모르겠으면 모르겠는대로 그렇게 읽어가면 될 거예요.

 

 


 

그 끝을 알면서도 시작할 수밖에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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