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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프로젝트]용인시민사회_16.06.22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6-06-30 조회수 : 10,001


[인터뷰 프로젝트]용인시민사회와 대안활동


날 짜 : 2016 6 22() 오후 7-오후 10

장 소 : 느티나무도서관 3층 물음표와 쉼표

위 원 : 차명제(한일장신대학교 NGO정책대학원 교수), 권선희(용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

         박은경(아이쿱활동연합회 캠페인 팀장), 이연선(전 용인시민신문 편집국장)

도서관 : 박영숙(관장), 이영방(운영지원팀장), 이유정(커뮤니티활동팀장)

안 건 : 인터뷰 프로젝트 일정, 대상 선정, 계획 등


느티나무도서관 3층 물음표와 쉼표를 가득 채운 아카이브 박스 안에는 느티나무의 기록 뿐만 아니라 교류하고 협력해 온 단체의 기록도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카이빙 2단계로 기획된 프로젝트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이전 활동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고 해석하며 새롭게 이해하고자합니다. 학습과 성찰을 통해 앞으로를 내다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새롭게 얻은 자료는 기존 자료와 함께 정리하여 지역의 자료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인터뷰 프로젝트의 첫 번째 주제는<용인 시민사회와 대안활동>입니다.


프로젝트를 위해 느티나무도서관 커뮤니티활동 소위원님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용인의 시민운동을 촉진시킬 수 있었던 배경, 주요단체를 살펴보면서 일정, 활동을 나누었습니다. 단체, 개인등 범위를 폭넓게 적용하며 언론, 대안교육계, 시민운동조직 등 인터뷰 대상도 정했습니다.


개인정보를 덜어내고 논의, 결정, 제안된 사안을 요약해서 올립니다.


서로 다른 기억,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들을 이야기한다면

지난 운영위원회 때 계획을 거칠게 말씀드렸던 것에 대해 실행을 논의하는 첫 걸음입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전 활동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 다른 시선으로 바라봤던 것들을 이야기한다면 지난 시간에 대해서 다시 해석할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고 의미부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학습과 성찰과 앞으로를 전망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그 동안 약간 휴면상태에 들어갔던 네트워크가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자료를 어디까지 모을 것이며,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도서관의 아카이브가 아니라 지역의 도서관, 지역의 아카이브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보존될 수 있도록 파일링하고 검색될 수 있도록 입력하고 스캐닝하는 작업을 한다면 굉장히 쓰임새 있지 않을까요?


인터뷰를 얼마나 어디까지 할까 기대와 함께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자료를 차곡차곡 챙기는 것은 그것대로 하고 인터뷰는 인터뷰대로 하나의 내러티브를 만들면 어떨까요? 시대별로 해도 되고 난개발, 단체운동 등으로 진행해도 되겠고요. 완벽한 그림을 그려놓고 찾아가기 보다는 큰 줄기만 보고 일단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어떤 대상, 역할분담, 인터뷰이, 인터뷰어, 녹취 등 역할을 나누고 구체적인 논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대의 첫 모습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개발이라는 화두를 통해서 환경운동, 주민운동이 일어난 것이 아닐까요? 처음으로 모임이 시작된 것, 연대의 첫 모습은 보육을 개선하기 위한 공보육(수지, 용인)이었습니다. 정치적 이슈를 갖고 진행한 후보자 초청토론회가 두 번째 연대로 확산되었습니다. 참여자치, 지방자치가 용인에서 서서히 정착되어 가면서 시민의식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준 하나의 토대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민참여네트워크를 통해서 역시 지자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었고요. 이후 시민생활 문화적인 측면들이 다방면으로 늘어난 것으로 봅니다. 뿌리에는 느티나무도서관(2000), 협동조합, 공동육아 등이 있고요, 한편으로는 세월호를 통해서 시민의식이 모아지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용인에서 시민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지 못한 것들이 개발이득을 취하려는 자들과 그렇지 않으려는 자들의 대립이 장애가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처인, 기흥, 수지 순서는 나름 발전의 순서?

용인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처인구 기흥구 수지구 순서대로 일을 진행한다.” 용인은 20년 전에는 관주도 사업만 있었습니다.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시민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도 관주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20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예요. 처인, 기흥, 수지 순서는 나름 발전의 순서가 매겨진 것은 아닐까요? 처인은 소재지, 기흥은 본래부터 수원과 접해있다 보니 스스로 발전된 곳, 수지는 맨 나중에 신도시가 되면서 비로소 모습을 갖추게 된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용인은 동쪽은 농촌, 서쪽은 도시. 지리적 특수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용인은 서울면적의 98%입니다. 워낙 넓기도 하고 동쪽은 농촌, 서쪽은 도시. 지리적 특수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습니다. 2000년 가까이 들어서면서 한 축은 개발, 한 축은 비개발이 공존했으니 차이는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역의 기득권을 갖고자 하는 분들도 존재합니다. 아직도 용인의 주류로 이끌어나가는 세력들은 토착민의 근대적인 의식 안에 있습니다. 시민운동, 시민활동 범주는 신도시를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러면서 첫 번째 보육연대에 참여한 분들을 보면 느티나무도서관, 푸른학교, 성폭력 상담소, 용인시민신문, 환경정의 다섯개 기관입니다. 용인의 실질적인 시민운동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민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나눠보면서

용인 초기 1990년 전 용인의 역사라고 보면 굉장히 평화롭고 보수적인 농촌이면서도 신분질서가 상당히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골프장이 생기면서 골프를 칠 수 있는 사람들의 아지트 등 오묘한 공간이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관광지? 농촌? 어찌보면 은폐된 지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도시개발 이후 이주민이 유입되면서 서로 간의 불신이 쌓여갔던 것 같아요. 그런 시기를 지나다가 보육조례, 급식조례 등을 통해 대화가 되면서 농촌지역과의 관계가 개선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주민운동에서 시민운동으로 전환되는 시기를 나눠보면서 90년 이전 활동가를 인터뷰하면 어떨까요?


용인 지역에서 10년 이상 된 프로그램이 근간을 주는 것들도 있습니다.

19년째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학생이 몇 만명인데 1명이 케어하고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던 기억도 있어요. 작은포럼과 마을포럼을 진행하는데 인터뷰가 진행되면 그 중 누군가를 초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어요. 용인에서 마을을 꿈꾼 사람들 시리즈로 진행해보면 좋겠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처인구 중심으로 새마을부녀회에서 도시락싸주기를 10년 이상 해온 분들이 있어요. 시민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좋은 조직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녀회족보라고 해야할까? 이 분들이 수지쪽으로 넘어오게 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런 분들의 발자취도 참고하면 좋겠다고 생각됩니다.


 96년 용인에 와서 97년부터 일하기 시작했어요. 여자, 공부 못하는 애들만 남고 남자는 수원으로 학교를 다니는 분위기였지요. 그 당시 제가 했던 프로그램이 자존감, 자신감을 높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용인 곳곳을 다니면서 진행했던 기억이 나요.


용인 지역에서 10년 이상 된 프로그램이 근간을 주는 것들도 있습니다. 우리 센터만 해도 19년 된 프로그램이 있어요. 98년도 1회를 진행했는데 유학파도 있었습니다. 그 해 2 28 30명정도 함께 했는데 지역사회 숨어있던 중학생부터 유학생까지 모여서 공부했습니다.


개념정의가 필요합니다.

사진모임, 기타모임도 있는데 시민사회라고 하면 제한적으로 보았을 때 이런 단체는 빠질 수 있어요. 생활에 관련된 활동을 하는 모임도 귀한 흐름이었다고 봅니다. 이런 건 시민사회, 시민단체라고 해야할지 대안단체라고 해야할지 시민단체라고 하면서 넓게 의미를 가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요즘 개념정의가 필요합니다. CSO(Civil Society Organization)라고 통칭합니다. 거기에는 노조, 정당, 동호회도 들어가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단체는 이 그룹 안에 들어갑니다.


 침체기라기 보다는 숙성단계

공동체적인 활동이 퍼지는 역할의 중심에 고기교회가 있어요. 시민사회 시민단체를 만드는 것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전 용인환경정의 국장 등 지금 하진 못하더라도 리스트를 뽑아보면 좋겠어요. 그 분들 이야기에 꼬리를 물고 가면 좋겠고요. 너무 옛날 분들만 이야기하면 너무 거리가 생겨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 같아요.


시민사회가 활발히 움직이다가 침체기가 오고 세월호를 통해 다시 활발해지는 분위기를 있었어요. 2011 12년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이동도 느껴졌고요.


이런 움직임은 SNS의 발달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수지 출산율이 높아지면서 내 고향은 아니지만 내 아이의 고향이다라는 정주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좋은 인프라가 있는데 용인은 왜 살아움직이지 못할까요?


침체기라기 보다는 숙성단계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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