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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북클럽 TBS] 여섯번째 이야기(2), 우리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니깐요!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4-04-19 조회수 : 11,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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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정희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저자
네번째 주제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We need to talk about Marrige]

본문편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bin]
[케빈에 대하여]를 읽으면 생각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습니다. 캐나다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사라 폴리가 만든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Stories we tell)인데요, 실제 있었던 일로부터 시작합니다.

어릴 적부터 오빠와 언니가 '사라는 아버지를 닯지 않았다'로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막연히 '그럼 나를 주워왔나?' 뭐 이렇게 생각을 했겠지요. 그런데 2007년 자신이 어머니의 외도로 낳은 자식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사라는 이때 이 다큐를 기획했다고 합니다.
직계가족, 어머니 친구들, 생부 등 어머니와 친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머니에 대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8mm슈퍼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생부는 이 영화에 어머니의 주변인들이 구술자로 등장하지 않기를 바랬습니다. 중심인물과의 관계 때문에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할꺼라는 거죠. 그런데 폴리 감독은 이점이 자신이 만든 다큐의 핵심이라고 했습니다.

중심인물과 주변인물이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의 불일치'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즉 어머니의 실제 모습을 파헤치자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에 관해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어떤 관계에서 어머니를 만나느냐에 따라 '어머니'란 사람을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고 저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이 '어머니'란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뭐, 그런 취지인 듯합니다.
[케빈에 대하여]도 그렇게 읽으면 좋겠습니다. [케빈에 대하여]를 영화로 보거나 책을 읽은 사람들은 유난히 할 말이 많습니다. 한 마디로 할 말이 많은 작품이란 소리이지요.
소설에서 에바는 여행 사업가였습니다. 세계를 여행하며 돌아다녔고 일반적인 사회통념과 체제를 부정 혹은 거부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랬던 에바가 전형적인 미국 남자와 사랑을 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가장 보편적인 가정관을 갖고 있는 남편 프랭크린과 같이 살게 되지요. 그렇게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이상합니다. 엄마가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심상찮습니다. 젖을 빨지 않았고 도리질을 치기도 하고 선뜻 안기지도 않고 밤새 우는 등 어떻게 해 보아도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갓난아기 때부터 머릿속은 어른인 듯 고도의 심리전을 펴기도 합니다.

에바는 둘째를 낳고서 첫째아이가 예사롭지 않음을 더 선명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마치 자신을 거부한 엄마를 잔인하리만치 괴롭히고 말겠다고 작정을 하고 태어난 아이 같았습니다. 교묘하게 엄마앞에서와 아빠앞에서의 태도가 달라서 아이에 대해 남편과 상의를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남편은 케빈이 이상하지 않은데 에바가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생도 그런 식으로 괴롭혔습니다. 그러다 케빈은 학교의 학생들과 교사를 활로 쏘고 동생과 아빠까지 죽입니다. 에바가 이 모든 사건을 통해 평생동안 고통속에 살기를 원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살해도구를 선택하고 살해대상을 선정했습니다. 

2011년 린 램지 감독이 틸다 스윈튼이 에바 역할을 하는 동명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시각과 소설의 이야기가 약간, 어찌보면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영화로 본 먼저 본 사람과 소설로 읽은 사람 사이에도 수많은 다른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이는 작년에 했던 독서모임에서경험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서도 이런 불일치가 일어납니다. 
케빈의 엄마 '에바'가 말하는 케빈과 케빈의 아빠가 말하는 케빈은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케빈을 보여주지 않은 채 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 부부에게 자식이 둘 있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는데요, 엄마 에바가 케빈에게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에바의 눈으로 케빈을 바라봅니다.

애바를 세상에 있어서는 안될 차갑고 못된, 모성이 결핍된 엄마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케빈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지요. 자, 이제 이 소설속의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마 이 부분이 영화와 소설의 가장 큰 차이일 것입니다. 616page에 달하는 이야기를 2시간여 시간의 영상속으로 집어 넣기에는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소설 속의 주요장면을 무엇으로 캡쳐해서 영상화할 것인가가 바로 감독의 눈 '시선' 혹은 관점일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저는 소설 속에 남편의 역할과 에바와 남편과의 관계가 영화에서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것이 화가 납니다. 또한 이 부분에 대한 영상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영화를 자식을 거부한 에바의 행동이 불러일으킨 비극의 영화, 에바를 모성이 부족한 엄마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끔 되었다고도 여깁니다. 사실 이 책과 영화는 모성이 보편적이라는 사회적 통념 그것에 대해 재고해보자는 내용입니다.
사랑을 하고 그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 아이 문제가 발생합니다. 남편들이 아이를 낳자, 혹은 낳지 말자고 주장을 하지만 실제 임신과 양육은 아내가 감당합니다. 임신과 양육은 내 인생만 책임지고 살 수 없음을 의미하는 아주 중대한 선택입니다.

2014년 3월 신한은행에서 모집한 경력단절여성 시간제 창구직원 100명 모집에 2만명이 와서 2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는데요, 참가한 여성의 대부분이 경력이 단절된 까닭에 대해 묻자 눈물부터 흘렸다고 합니다.
'아이를 남에게 맡길 때까지는 키워야지'라는 마음으로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이를 맡길 적당한 싯점이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젖을 먹고 이유식을 하고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우고 유치원을 갈 나이가 되어도 도대체 아이를 어디에 맡길 수가 있겠습니까? 회사 근무시간과 엇비슷하게 운영하는 기관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후 3-4시이후에 끝나는데 학원을 뺑뺑이 돌려도 누가 각각의 학원에 데려다준답니까? 그래서 아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자 이제 다시 직업을 가지려고 여기저기 원서를 내보았지만 사회가 이렇게 빨리 변화해서 직장이 필요로 하는 경력을 갖지 못한 사람을, 게다가 일자리가 점점 더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경력이 단절된 나이 있는 여성을 어디에서 반갑다고 채용합니까? 이런 지경이니 면접관의 질문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부터 흘렸던 것입니다.

이런 여성의 현실을 생각하면 케빈의 엄마 에바더러 '모성결핍여성'이란 잣대를 들이대면 너무 가혹합니다. 에바는 엄마이기전에 인간이니까요. 에바도 케빈을 낳으면서 세상에 태어나 처음 엄마가 된 것이니까요. 에바는 다만 임신을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자신의 삶속으로 받아들이는데에  서툴렀을 뿐입니다. 아기가 울면 어떻게 안아주고 보듬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임신과 출산과 양육을 배운 후에 엄마가 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케빈은 이런 엄마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에 아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야기가 자꾸만 사이코 패스의 아들이 저지른 끔찍한 살인이 에바 잘못이냐 아니냐의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입니다.
소설은 에바의 가치관과 남편 프랭크린의 가치관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많은 양을 할애해서 묘사가 됩니다. 이 부분은 전체 이야기 중에 핵심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회체제에 살고 있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의 문제를 떼어낸 채 모성이야기로만 [케빈에 대하여]를 이야기하게 되면 '이상한 엄마와 아들'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회가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만 강요하는 내용들을 간과한 채로 여성의 인권만을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모두 각자 어떤 처지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살펴 인물들을 파악해야 그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이제 일본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관계에 주목하라!

[케빈에 대하여]와는 다르게 양육의 문제를 다룬 영화입니다. 일류기업에 다니는 건축가 료타는 아름답고 자상한 아내와 6살난 아들 케이타와 한 가족입니다. 료타는 사회에서 일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자신의 삶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 하고 그에 따른 직위가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회사일에 몰두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래서 자식과 함께 놀아주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편과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가정에서는 아내가 자식을 잘 키우고 아들 케이타도 자신에 걸맞게 자라주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아들 케이타는 기대했던 만큼의 자식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은 승부욕도 강하고 일에 대한 욕심도 있어 회사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인데 비해 가끔 보는케이타는 딴판입니다. 매사에 그닥 악착같이 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때 병원에서 연락이 옵니다. 케이타가 친 자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료타는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처음 한 말이 '역시 그랬군!'였습니다.

아이를 키운 아내는 료타의 이 말에 너무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닮았다거나 닮지 않았다거나 그런 것을 연연하는 건, 아이들과 통한다는 실감이 없는 남자뿐이라고요"라고 외칩니다. 그에 비하여 료타의 친자식을 키우고 있던 유다이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가정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전기상회(전파상)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생활 수준이 료타네와 너무 동떨어졌습니다. 게다가 느긋하게 살면서 "내일 할 일은 오늘 하지 말자!!"이런 가치관을 갖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제자식이 이런 가정에서 자랐다니 류타는 몹시 속상했습니다. 병원에다 보상금 운운하는 것도 너무 수준 떨어져 보여 당장이라도 그 아이(류세이)를 데리고 오고 싶은데 지금까지 제 자식이라 생각하고 길렀던 케이타가 이런 집에서 자라게 하는 일도 마땅찮습니다. 그래서 유다이더러 당신은 이 아이말고도 두명이 더 있고 자신이 더 잘 키울 수 있으니 케이타와 류세이 둘을 키우겠다는 망발을 서슴치 않게 내뱉았습니다. 결국 두 가정은 자식을 원래 위치로 돌려놓기로 결정합니다. 

료타는 류세이를 키우면서 케이타일때와는 달리 정성을 기울이지만 아무리 해도 케이타 같지 않습니다. 사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유다이 같은 아빠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유다이가 료타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능력이 좋지 않았을지 몰라도 정말 좋은 아빠였거든요. 유다이는 자식과 같이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 합니다. 함께 목욕을 하고, 전기상회에서 전기에 대해 잘 가르쳐주고 몸을 부대끼며 유대감을 쌓은 아빠였던거죠. 사이키는 류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들한테 중요한 건 시간이에요." 
그래서 류세이는 료타가 아닌 사이키를 그리워합니다. 이는 케이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자신에게 잘 해주지 않았던 아빠였지만 함께 한 사람으로 료타를 그리워합니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감독에게는 여섯 살 난 아들이 있습니다만 영화 촬영으로 바빠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감'에 대해 자주 고민을 하게 되었고 아무리 혈연이라 한들 시간을 나누지 않는 자신이 제대로 된 아버지로 인식될 수 있을까에 불안했다고 합니다. 혈연과 시간 둘 중에 가족을 지탱하는 힘은 어느 쪽인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던 거지요.

참, 깜박 잊고 이제야 밝협니다. 맨 처음 꺼냈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의 내레이션을 맡은 이는 감독 사라 폴리의 아버지였습니다. 생부가 아니라 길러준 아버지는 연극배우 출신이어서 안정적인 중저음과 발성을 지녀서 마치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나레이션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영화 끝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행운의 순간 중 하나는 아내를 사랑해준 해리(생부) 덕분에 생겼지. 세상에 유일한 존재인 사라는 아내와 해리의 사랑으로 태어났으니까. 내가 생부였다면 다른 녀석이 나왔겠지만, 지금과 같은 사라의 모습은 절대 아니었겠지." 이 말을 들으면 누가 아버지냐 아니냐는 뭐 그리 중요한가 싶습니다. 가족의 형태, 결혼, 사회제도 이런 것보다 인간에 대해 경외감을 갖고 관계를 맺어가는 것, 그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 아닐는지요.

이제 결혼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나요? 아니면 더 복잡하고 심란해지셨나요?
이렇게 결혼에 관한 문제작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새삼 확고해지는 제 삶의 원칙 같은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사랑이라 느끼는 감정과 결혼은 별개의 문제다.
2.결혼과 출산 및 양육도 별개의 사안이다.
3.그 어떤 경우라도 '사회가 그러니깐, 결혼이 원래 그런거지'란 통념에 갇혀서 자신을 망가뜨려서는 안된다.
4. 자식이든, 남편이든, 아내이든 상대방의 인생을 나와는 별개의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5. 타인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관계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6. 결혼도 양육도 공부하듯이 배우면서 해야 한다. 배우려면 기존의 나를 버려야 한다.
에필로그편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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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200자 원고지 10장을 쓸 수 있으면 어떤 글이라도 쓸 수 있게 되며 긴 글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문장력을 키우는 일은 독서능력과 생각하는 힘을 길러 주는데 이 생각하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단언합니다. 그래서 쓰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고 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필요하겠지요. 가정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신문을 구독하고 재미있게 읽었던 글을 하나 골라 한 문장으로 고쳐 쓰는 것입니다. 고쳐 쓰기 전에 일단 한 문장으로 고쳐 생각을 해야겠지요. 아침에 스크랩해두었다가 하루종일 생각을 가다듬고 자기전에 한 문장을 쓰는 방식이지요. 일단 오늘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5월 20일 화요일 저녁 7시에 함께 읽는 책은 [결혼한 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입니다. 화요북클럽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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