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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북클럽 TBS] 여섯번째 이야기(1), 우리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니깐요!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4-04-15 조회수 : 12,990

 
 글 : 안정희 [도서관에서 책과 연애하다]저자
여섯번째 주제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We need to talk about Marriage]

프롤로그
이번에 같이 읽게 되는 책은 [케빈에 대하여] 입니다 이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에 앞서 베르트 모리조가 그린 그림부터 먼저 보고, 읽겠습니다.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1841-1895)는 프랑스 화가인데 1874년 1회 인상파전에 그림을 출품한 유일한 여성 화가이자 마네의 제자, 동료, 그리고 한때는 연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르트는 마네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막내 동생이자 작가인 외젠 마네와 합니다.
인생파화가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따라 대상이 달라지는 모습을 포착해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실제 빛에 따라 달라져가는 대상을 눈으로 보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자연히  이젤을 들고 직접 야외로 나와 그려야 했겠지요.

미술사조에서 인상파가 등장하게 된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화가가 직접 물감을 만들지 않고 튜브에 든 것을 짜서 사용해도 될 만큼 그림도구들이 발달한 까닭도 있었습니다만 사진이 등장하자 대상을 똑같이 묘사하는 그림은 더 이상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되었고 그림만의 정체성을 확보해야 하는 미술사적 요구도 컸었지요.
이때 나중에 인상파의 주요인물 중 한 사람이 된 마네에게 이젤을 들고 야외로 나가 그림을 그리라고 적극 권한 사람이 바로 베르트였습니다. 마네가 워낙 유명하니 그녀를 설명할 때 '마네에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도록 권한 사람'이란 말이 이름 앞에 붙는데요, 이는 베르트가 여성화가라는 이유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 생각합니다.

베르트가 마네에게 야외에 나가 그림을 그리라고 제안한 배경은 그녀 자신이 풍경화가 코로 (Jean-Baptiste-Camille Corot)에게 그림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코로는 베르트에게 야외에서 빛의 효과를 표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고 베르트는 다시 마네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녀 또한 마네와의 친교와 작품을 통해 영감을 받아 자신의 그림세계를 확립해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녀를 마네에게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것을 제의한' 화가로만 소개하기에는 몹시 아깝습니다. 

베르트는 특히 여자들이 책을 읽는 장면을 많이 남겼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성화가여서 모델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가족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여성 화가가 모델을 구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그녀의 그림 대부분이 일상을 소재로 한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합니다. 빨래하는 여인, 화장하는 여인, 더운 여름날 아이를 재우는 여인들의 모습이 베르트의 그림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시인 폴 발레리(Paul Valery)가 “그는 그림을 위해 살았으며, 그의 인생을 그림에 담았다”고 말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삶의 모습들을 보았다면 그림의 소재들은 틀림없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베르트가 그림의 소재를 가정의 일상으로 가둔 것은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 일상을 화폭에 담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스웨덴의 국민화가로 불리우는 칼 라손의 그림도 그렇게 평가해야겠지요. 그 또한 자신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주로 그렸고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가 주목한 이 점 때문에 칼 라손의 그림이라면 한 점이라도 자신의 집에 걸어두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베르트가 자신이 속한 상류층의 가정 밖으로 시선이 확장되었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저는 개인적으로 합니다만 가정의 소소한 일들을 담았다고 해서 그것으로 그림을 평가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베르트가 그림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는가? 그녀 그림의 정체성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림이 존재하는 중요한 목적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르트의 그림은 조용하고 담담하고 부드럽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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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가 그린 그림을 통해 본 베르트는 야무진 얼굴의 소유자처럼 보이는데요, (그림 : 제비꽃 장식의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with a Bouquet of Violets, 1872 마네) 1800년대에 결혼을 했으면서도 평생 동안 그림을 그린 경력으로 보아 베르트가 얼마나 당대 사회가 요구한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추구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베르트의 아버지가 그녀에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당대 사회적 흐름에 따라 딸을 좋은 가문의 사람과 결혼 시키려고 전인적인 교육을 실시했지만 베르트의 아버지 자신이 사법보좌관이면서도 아마추어 화가였던 영향이 자녀 교육에 영향을  크게 미쳤습니다. 그래서 베르트는 아버지 덕분에 어학,문학,미술 선생님을 따로 두고 공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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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에도 이런 행운이 이어졌습니다. 남편인 외젠 마네도 아내 베르트가 화가로서 영역을 인정하고 지지해주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보면 좀 파격적인 남편이었지요. 어쩌면 베르트 자신이 화가 마네가 아닌 외젠과 결혼한 까닭도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베르트가 마네와의 관계보다 자신의 그림과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베르트 본인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녀가 미술과 문학을 공부한 '책을 읽는 여자'였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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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는
《로리앙 항구 The Harbor at Lorient》(1869),
《요람 The Cradle》(1872),
《술래잡기 Hide-and-Seek》(1873),
《화장하고 있는 여자 Lady at her Toilette》(1875),
《여름날 Summer Day》(1879),
《빨래 널기 Peasant Hanging out the Washing》(1881) 등
평생 860여점의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사망했을 때 직업란은 무직이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가까이에 선구적인 아버지와 남편을 두었고 자신의 그림을 860점 남긴
베르트를 무직이라고 했다니요!
그래서 베르트는 이런 말을 남겼나봅니다. 
 
 
 
 
 “나는 모든 여인들의 능력을 믿는다.
그리고 남자들이 자신과 동등하게 여자를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내 자신이 남자들만큼 가치 있기 때문에 끝없이 사회를 향해 의문을 제기했었다.”
(출처: 목요일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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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La Lecture(Reading), 1869~70, 101x81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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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Reading, 1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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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발에서 외젠 마네와 딸 Eugene Manet and His Daughter at Bougival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영감을 주거나 그림의 모델이 되는 이들을 뮤즈라고 합니다. 두번째로 소개할 사람은 피카소의 뮤즈였던 프랑스와즈 질로인데요, 그녀를 결코 피카소의 여섯번째 연인이라고 소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프랑스와즈는 피카소가 사귄 여자들(9명) 중 유일하게 피카소에게 먼저 헤어지자고 했고 피카소의 세계에서 스스로 탈출해서 자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피카소는 너무 화가 나서 자살을 하겠다는 둥 협박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사랑의 노예였지 당신의 노예는 아니다'란 말을 남기고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피카소가 결혼을 했음에도 연인을 두었으며 그 연인도 한명이 아니고 동시다발적으로 사귀는 등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랑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평생 동안 나눈 사랑을 살펴보면 피카소가 연인을 정말 사랑했는가 라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프랑스와즈와 화실에서 동거를 시작했을 때에도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프랑스와즈의 존재를 그녀에게 알리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와즈와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로 한 것은 당연했지요. 프랑스와즈와의 사이에 아이들 두명을 두고 살 때에도 프랑스와즈의 친구와 다시 사랑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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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랑했다면 연인과 그 연인의 삶에 대해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제가 본 피카소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로 사랑을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기적인 사랑을 한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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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프랑스와즈는 피카소의 다른 연인들처럼 그로 인해 상처를 받았으나 그 상처에만 머무르지 않았죠.
피카소의 9명의 연인들이 대부분 피카소를 신처럼 숭배했거나, 그와의 결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살했거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거나, 고통속에서 울었거나, 정신병원을 다녔던 것과는 사뭇 달랐지요. 누구보다도 피카소가 제일 놀랐습니다. 피카소의 전 애인이나 전 부인 현재 부인과 갈등관계에 빠지지 않았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피카소의 애인에 대해 전전긍긍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망가지지도 않자 오히려 피카소가 그녀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피카소는 프랑스와즈 10년동안 살면서도 그녀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두고 떠나 홀로 설 수 없는 사람이라고 자신했습니다. 
프랑스와즈가 그의 곁을 떠나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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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유명하고 돈이 많은 남자를 어떻게 떠날 수 있지?' 세상에나! 피카소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겨우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유명하고 돈이 많아서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의 사랑에 당당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 정도의 사람과의 사랑을 거부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할 만큼 오만했던 것일까요?

아무튼 피카소의 이 뻔뻔하고 오만한 사랑 행각은 프랑스와즈의 자주적이고 독립된 행보로 인해 크게 타격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와즈는 그의 곁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1964년 피카소가 살아있는데도 자신과 살았던 시절을 담담하게 이야기한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프랑스와즈의 사이에 태어난 남매들조차도 자신의 집에 오지 못하게끔 조치를 취했습니다. [출처 : 피카소와 함께 한 날들- 우리말번역본은 사랑과 정열의 날들] 프랑스와즈는 이 밖에도 [경계선]이란 책과 여러 편의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사랑과 피카소와의 관계를 객관화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피카소 사후에 자식들을 법적 상속인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절차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피카소의 세상에서 자기발로 성큼 걸어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피카소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피카소라는 사람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만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프랑스와즈와 사귀기 전에 만났던 피카소의 연인들을 마냥 질투를 하거나 외면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과 피카소와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규칙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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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를 사랑했던 여인들도 이기적으로 피카소와의 관계에 몰입한 나머지 오직 자신만이 피카소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피카소가 그들을 대한 태도의 이중성과 이기심에 대해서는 더 말할 여지가 없다고 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늘 이중 삼중 겹치기로 사귀었으니깐요. 프랑스와즈가 둘 사이를 객관화하고 자신의 소중한 삶을 지킬 수 있었던 자아 혹은 내면의 힘은 '책읽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17살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예술을 사랑해 그녀 자신이 화가이고자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 피카소도 볼 수 있었지만 인간 피카소도 볼 수 있었고 화가 피카소도 볼 수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용감하게 자신의 삶을 파괴하는 남자 피카소를 거부한 것이지요.

아무리 사랑이 위대하다한들 그 사랑이 자신을 파괴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되겠지요. 그래서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받아들여 나름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기도 했고 <파카소와 함께 한 삶>을 통해 자신과 피카소의 삶을 문화사회적으로 정리할 줄도 알았던 것입니다.

오늘 '책을 읽는 사람들'이란 주제로 1800년대와 1900년대에 살았던 베르트 모리조와 프랑스와즈 질로 두 여성의 삶과 결혼이야기를 했습니다. 2,300백년 전의 일인데도 어째 오늘날과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여성의 삶이 남성의 삶의 부속물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해 보이지만 실상 일상으로 들어가면 그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지 금새 느낍니다. 특히 결혼 이후의 삶은 심각합니다. 연애할 때와 달리 왜 결혼을 하면 가사일이 여성의 몫이 될까요? 양육은 더합니다. 이즈음 되면 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주는 현대사회보다 전근대 대가족시대가 그립기까지 합니다. 적어도 그 시절에는 온 동네 사람들과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들을 같이 키웠으니 말입니다.

한국사회가 남녀평등한 곳인가 뭐 이런 심각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결혼이 무엇인지 실제 삶에서는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보려는 것입니다. 결혼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결혼을 통해 양육은 여성에게 또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니깐요! (We need to talk about Marriage)
이제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bin]을 함께 읽으며 이야기 나눌 시간입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분들은 4월 15일 저녁 7시 느티나무도서관 3층 세미나실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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