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티나무에서는

민들레 독서회

작성자 : 전주리 작성일 : 2012-12-18 조회수 : 7,946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를 읽고 애기나눴습니다.
연말이라고 케잌들을 가져오셔서 그것도 나눠먹었지요.
다음은..
'한아이' 토리 선생님과 한 아이의 관계를 들여다볼수 있는 책입니다
두주 후가 1월 1일이아 담 모임은 삼주 후 1월 8일에 합니다.
담에 뵈요~~




공부의 달인 호모쿵푸스
공부란 무엇인가?

학교 공부를 독점하다. 전 사회의 학교화 학원? 학교식 교육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공부에는 때가 있다? -학교를 떠나는 순간 공부는 끝이라는 생각. 공부란 적당한 연령대에 오직 학교에서 하는 것: 거짓말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평생 뭔가를 배운다. 살아있음 자체가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뭔가를 끊임없이 학습하는 과정이다. 세대간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운동 공부

독서와 공부는 별개다? - 제갈량과 허생 : 책만 읽던 그들의 내공. 독서야말로 골방에 앉아서도 혹은 초야에서 밭을 갈면서도 천하고금의 이치를 한눈에 꿰뚫을 수 있는 최고의 비결이다. 패스트푸드 책읽기-영어논술재테크위한 독서들 패스트푸드가 문제인건 중독성 때문이다. 거기에 길들여지면 다른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 맛에 대한 취향이 아니라 신체적 무능력이다. 논술을 위한 책에 길들여지면 그런 식의 양념이 된 책이 아니면 숫제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대안학교에서도 등한시하는 독서- 다양한 활동이 신체와 통하려면 근기가 튼실해야 한다. 근기란 에너지의 분포도, 그릇 카리스마다.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건 성적 학벌이 아니라 바로 이 근기다.

시설과 서비스의 세련됨이 창의성을 고양시키는가? 심포지엄의 문제점. 환경은 아무리 좋아봤자 환경일 뿐이다. 좋은 집에 산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아니다. 시설이 좋다고 창조적 주체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자율성 창의성이고간에 교육의 성패는 현장에서 판가름 나는 법이다. 현장이 살아있으려면 교사 학생 학부모 사이의 절대적 신뢰가 필요하다.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공동체적 삶의 비전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독서와 논술의 이유 : 문제에 답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핵심은 신체성이다. 성형이 만개할수록 얼굴의 개성이 사라지듯 독서지도를 받으면 받을수록 책에 대한 욕망이 증발되고 논술교육을 받을수록 글쓰기 능력이 마모되어 버린다.

배움이란 ? 내가 지금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타자들과의 향연, 그를 통한 존재의 반전, 그것이 곧 배움이다. 하여 배움에는 스승과 벗이 있어야 한다.

고전에서 배우는 미래의 공부법 코뮌 암송 구술 글쓰기

학교를 넘어서 앎의 코뮌에 접속하라. 학교는 유년기라는 연령대에 아이들을 묶어놓고 그 단계에 맞는 사고만 주입함으로써 다른 능력을 몽땅 회수해버린 것이다. 그와 더불어 삶과 죽음의 문제 우주적 무의식 진리에의 열망 등은 공부의 영토에서 축출되어 버렸다. 철학자 종교인의 몫이지 보통 사람들이 학교에서 탐구할 사항은 아니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근대 학교란 스승이 있고 학문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제도나 시스템만으로 작동한다. 대학을 선택할 때 어떤 교수가 있는지 그 학과의 분위기는 어떤지 고려하지 않는다.

코뮌이란 기성의 권력과 습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유롭고 창발적인 집합체 네트워크.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그 코뮌에 접속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공부가 단번에 도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뭔가를 배운다는 건 어떤 경지에 오른 스승을 만나는 것이자 의기투합할 벗을 모으는 일이다.

암송 : 암송은 암기와 다르다. 암기가 묵독에 기초한 개별적 활동이라면 암송은 청각에 기초한 집합활동이다. 암기는 두뇌플레이라면 암송은 신체운동이다. 암기를 많이 하면 신체가 허약해지지만 암송은 신체 전체의 기운을 활발하게 소통시킨다. 묵독자체가 주는 성찰의 힘 그리고 텍스트의 여백을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미래의 방법은 암송이다. 귀기울이는 능력, 체력과 기운의 분포를 바꾸는 일- 신장의 기운을 튼실하게 한다.

구술 말하기를 훈련하면 보는 것과 아는 것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정보의 계열에 서사적 육체를 입힐 수 있어야 비로소 지식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 구술 능력은 단순한 말솜씨가 아니라 삶과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의 표현이다. 그것이 없이는 이야기를 엮어 가기 쉽지 않다. 삶에 대한 통찰 애정이 있어야 이야기를 엮는 능력이 생기고 거꾸로 이야기의 맛을 즐기다보면 자연스럽게 사람과 인생에 대한 깊은 시야를 확보하게 된다. 리더십의 많은 부분은 언어화 능력이다. 상황을 언어화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지금 학교식 공부는 말따로 몸따로 삶도 따로 논다. 이런 배치를 바꾸려면 암송 구술이 필요하다.

내공-배움이 크게 이롭다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기질을 바꿀 수 있어서다. 책을 읽으면 제갈량이나 허생만큼은 아니더라고 누구든 신체의 에너지와 기운의 분포를 바꿀 수 있다. 연애 삶에 대한 통찰력 없이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사랑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나만의 사랑을 하고 싶다면 자신이 먼저 그런 존재가 되면 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큼 신을 만난다. 사랑이 삶을 몽땅 먹어치워 버리지 않도록 길 위에 존재하는 사랑-대장금.

연애와 성에 대한 상상력은 대중문화가 쳐놓은 그물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뭔가 특별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사랑을 통해 내 운명을 바꾸고 싶다면 공부를 해야 한다.

고전 고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이자 매트릭스이다. 한 인간이 평생 경험할 수 있는 시공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고전이 있기에 그 협소한 시공간을 넘어 아득한 역사의 궤적을 조망할 수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비전을 탐구할 수도 있다. 완전히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체험할 수도 있고 생명과 존재의 심연을 항해할 수도 있다.

희망의인문학 빈민들의 박탈감 그들이 진정 박탈당한 것은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통찰할 수 있는 정신적 자산이다. 한번도 지적 풍요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보니 늘 충동에 내몰리게 되고 그러다보니 범죄와 마약의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철학적으로 무장하게 되면 그들은 더 이상 충동에 몸을 내맡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당당하게 정치적이고 공적인 실천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친구를 규합하여 읽는다.

글쓰기 모든 공부가 귀환하는 최종심급,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신체 조성을 바꾼다.

새로운 질문을 던질 것, 하나의 논리로 관통할 것. 문체는 삶의 패턴과 나란히 간다.

중요한 건 지식의 양이 아니다 자신을 진정 비울 수 있는가가 문제이다. 배움에 있어 가장 불리한 조건은 겸손을 가장한 자기비하 혹은 이미 획득한 지식에 갇혀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직성이다,

공부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대중문화가 끊임없이 주입하는 사랑의 공식구 인정욕망 죽음충동

인정욕망에 길들여지면 당연히 외적 조건이 모든 걸 결정하게 된다. 사랑은 불행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통념 허무주의

가족과 사랑 핵가족 시대 부모 자식간의 사랑도 치명적인 양상. 서로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나무 가지 쳐주듯이 적당한 극도 필요하다. 이성이건 가족이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질병과 죽음 운명 인간이 탐구해야 할 주제. 역설적으로 죽음을 사유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삶에 대한 성찰도 깊어진다. 질병과 죽음은 스승이자 좋은 친구

사주는 우주가 우리에게 새겨 놓은 무늬이다. 운명이 궁금한가? 그럼 네 몸을 관찰하라. 몸의 동선과 습관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활동 그게 바로 너의 운명이다. 최고로 좋은 운세란 운명을 사랑하는 능력이다. 나쁜 운이 올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생의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는 노하우를 개발하는 것.

스승과 친구 - 더 이상 배울 수 없을 만큼 많이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줄 수 없을 만큼 모자라는 사람도 없다. 공부란 잘 배우는 능력이다. 성인이란 남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 부지런히 배우는 존재다.

계몽이 아니라 촉발, 훈계가 아니라 감염- 평생 뭔가를 가르치고자 한다면 자신이 평생 공부의 즐거움을 누려야 한다.

밥심으로 사이에서 존재하기 공동체 코뮌 수유공동체.

행복해지기 위해 어린아이에게 더 기다리라고 노인에게 이미 다 지나갔다고 노예나 매춘부에게 포기하라고 말해서 안 된다. 누구나 지금 그 자리에서 함께 행복해야 한다.’

노동해방이란 노동자가 중산층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그대로 오늘은 이 일 내일은 저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소외된 노동이 아닌 자유로운 활동을 능동적으로 창안할 수 있다. 우리 시대 노동자들은 중산층의 안락함을 얻은 대신, 삶으로부터의 소외를 떠안고 말았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지금 당장 소외와의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공부해서 남 주자.

사적 소유 내가 가진 것 나의 재산이 곧 나라는 생각; 삶과 소유의 혼연일체 그것이 자기의 고유한 욕망이라고 착각한다. 소유에의 집착은 반생명적이다. 생물은 자기 완결적이고 자율적인 개체라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생물과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정보를 상호교환하는 공동체이다.

지식의 소유 또한 지식의 종말로 이어진다. 새로운 공부법은 지식의 사적 소유를 해체함으로서 시작되어야 한다. 앎이란 무엇인가 천지에 떠도는 정보의 흐름 혹은 우주적 비의 혹은 말의 길을 특정한 방식으로 절단채취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 개별 주체의 두뇌에서 나오는 산물이 아니라 두뇌들의 네트워크 그리고 아주 특별한 집합적 관계의 산물이다.

미꾸라지 되기

-이제 뱀장어의 몸이 움직일 수 있게 하고 기를 통하게 하여 뱀장어의 목숨을 건진 것은 모두 미꾸라지의 공인 것이 틀림없으나 그 역시 미꾸라지의 즐거움이기도 했던 것이다. 결코 뱀장어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또 뱀장어의 보은을 바라고 그렇게 한것도 아니다. 스스로 그 본성에 따른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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