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느티나무도서관 ‘예비사서학교’에서 ‘듀이’를 만나다
안정희/도서관문화발전소
나는 장애인이어서 접근하기 어려운 도서관에는 갈 수 없다
나는 장애인이어서 아무리 책이 많아도 접근하기 어려운 도서관에는 갈 수 없다. 성남 야탑에 있는 중앙도서관이 그나마 장애인주차장과 출입구 연결이 잘 되어 있지만 시험이나 방학 때는 여기도 이용하기 어렵다. 잘 만들어진 넓은 곳일수록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장애인을 위해 정해놓은 공간은 아주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 스티커를 부착했지만 장애인이라 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주차가 많아서 나 같은 진짜 장애인은 주차 때문에 도서관 출입이 어렵다.
공공장소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그 공공성으로 인해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이용하지 못하다니 모순이다. 도서관 건립과 유지를 위해 내 세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르지만 나는 공공도서관에 출입할 수 없다. 출입이 제한된 상태에서 장애인차에 주차할인 요금제도를 실시하다니 얼마나 아이러니 한지. 주차요금을 2배로 내더라도 입구와 가까운 곳에 주차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삶 자체가 모순임을 알기에 이제 더 이상 공공도서관을 상대로 싸우지 않는다. 싸움을 중단하고 오랫동안 도서관을 찾지 않을 즈음 수지 동천동으로 이사를 왔다. 집에서 가까운 공공도서관을 찾다가 우연히 느티나무도서관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느티나무도서관을 발견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장애인 주차장 구역으로 따로 정해진 곳이 없지만 도서관 출입에 어려움이 없었다. 일단 출입구까지 계단이 없으며 주차장과 도서관 출입구 거리가 10m 안팎이며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거리도 3m가 되지 않는다. 색깔만 알면 원하는 책을 찾을 수도 있다. 나처럼 다리가 힘든 사람들이 오래 서 있지 않아도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린이도 어른의 도움 없이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아이들은 느티나무도서관의 간단한 도서분류법에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 어떤 공공도서관에서도 누리지 못한 것이 여기서는 가능했다. 작은 간이의자부터 긴 소파, 휠체어를 포함한 여러가지 종류의 의자가 곳곳에 놓여있어서 책을 찾다가 다리가 아프면 바로 앉을 수 있었다. 다른 공공도서관에서는 다리가 아플 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곳곳에 비치되어 있지 않아서 서가에 들어가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책을 대출하지 않아도 지하 북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티나무 컬렉션의 책을 읽는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1층 소파에서, 나는 나의 수고 없이 한껏 주어지는 환한 햇살에 고맙고 행복했다. 그러나 세상에 수고 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기요금’이라는 이름의 지하 북까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짧은 문구를 발견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까페 수익금으로 전기요금을 내야 하는 사립 공공도서관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사회복지를 공부한 어떤 아줌마가 자기는 전세 살면서 남편 월급과 자기 강연비를 몽땅 털어서 운영하는 사립 공공도서관이었던 것이다. 소액 기부자들도 있고 기업의 고액 기부자도 있고 자원활동가들도 너나없이 일을 돕지만 이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지 짐작이 갔다. 나는 예전에 사업을 하면서 4명 직원 월급을 마련하는 일에도 밤잠을 설쳤던 경험이 있던 지라 이 도서관의 사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러자 나의 수고 없이 도서관을 온전히 누리고 싶기만 했던 생각이 달라졌다. 나는 언젠가 숲속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낭만적인 꿈이 있었는데 느티나무도서관은 이런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1층 길고 안락한 소파에 엉덩이를 두고 건너편에서 끌고 온 간이 의자에 불편한 왼쪽 다리를 올려놓았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올려 보며 기적적으로 존재해 온 이 도서관으로 인해 눈물이 났다. 그리고 지속시켜야 할 가치에 대해 오래 오래 생각을 했다.
그 날부터 보고 싶은 책이 생기면 느티나무에서 대출을 하고 해당하는 책값을 기부했다. 도서관에 갈 때면 잊지 않고 기부통에 동전을 넣고 소액 기부자로 신청해서 정기적 기부도 한다. ‘전기요금’에서 커피를 마시고 남은 잔돈을 까페 저금통 안에 넣는다. 나를 위해서 도서관을 유지하려는 이기적인 목적의 소비 행위이다. 그리고 책을 좋아하니 내가 읽은 책으로 언젠가 도서관을 운영해야지 하는 낭만적인 생각을 던져 버렸다. 책을 좋아하는 사서가 아니라 도서관을 경영하는 사람의 관점으로 사서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느티나무도서관 ‘예비사서학교’에서 '듀이'를 만났다
느티나무에서는 도서관학 공부를 하는 대학생과 예비사서를 꿈꾸는 이들을 대상으로 ‘예비사서학교’를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 첫 강의를 전 한성대 총장이신 이용남 교수님이 하셨다. 강의 제목은 '공공도서관의 정신, 그리고 도서관 운동의 자취'였다. 나는 느티나무도서관 도서관문화발전소의 일원으로 강의를 참관하였다. 강의 내용 중에 초기 미국의 공공도서관을 확립한 사람 중의 하나로 '멜빌 듀이'가 등장한다. 도서를 분류한 사람정도인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그는 내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 중의 하나였다.
듀이는 신분, 성별, 빈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책을 읽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공도서관 설립과 공교육 확립의 기초를 세우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고 한다. 듀이는 미국도서관협회를 만들었고 가장 작은 비용으로 최대 시민에게 도서관을 개방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고 한다. 효율적으로 책을 보게끔 하려고 분류법도 고안했다고 한다. 그의 삶 전체를 봤을 때 도서분류법이 오히려 작은 성과라고 할 정도로 그의 발자취가 거대했다. 최소 비용으로 도서관을 운영하려고 여자도 고용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컬럼비아대학 최초로 여학생을 받게끔 했다고 한다. 여자에게 직업을 허용치 않은 것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는 소리 아닌가? 난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때로는 '듀이'처럼 실용주의적 발상이 허식과 허례를 벗어던지고 본질에 더 빨리 접근케 할 수도 있다. 아들선호사상에 사로잡혀 딸 아들 능력은 상관치 않고 무조건 아들에게만 모든 기회를 제공한 부모가 우리 사회에도 많았으니 하는 소리다.
듀이는 소리와 철자를 통일시켜서 최소의 교육으로 문자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도 고민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DEWEY에서 DUI로 개명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기초 공교육을 확립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듀이는 미국 사회의 건전한 발전과 민주사회를 위해 평생 동안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이런 사람들의 선구적인 운동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초등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을 기회를 얻었다.
남자형제들과 똑같이 초등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닐 것이다. 공교육을 확대하고 모든 사람에게 책 읽을 기회를 준 것은 가히 혁명적이다. 책은 정말 무서운 것이어서 읽는 사람을 전혀 다른 인간으로 변화시킨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읽은 나는 부모의 생각을 거부할 고집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예부터 권력자들은 권좌에 오르자마자 반대 사상을 담은 책부터 불사르지 않았을까?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고양이 이름이 왜 ‘듀이’인지 깨달았다
모두에게 책을 읽게 하고 교육 기회를 주는 것은 모두에게 권력을 나눠주는 일이다. 초등교육과 책읽기를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나 같은 사람이 그것을 가능케 한 고마운 사람 중의 하나인 ‘듀이’를 모르고 살았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제서야 2009년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에 '듀이'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감동 실화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이야기의 주인공 고양이 이름이 왜 ‘듀이’인지 깨달았다. 경제 위기를 겪으며 희망이 사라져가고 있었던 스펜서 마을의 공공도서관에서 19년 이상을 보낸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그 고양이는 미국의 시골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온 동네를 하나로 묶어주었으며 그곳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소로 만들었다. 실화 속 주인공 이름을 정할 때 도서관사서가 어찌 '듀이' 말고 다른 대안을 떠올릴 수 있었겠는가? 느티나무도서관 ‘예비사서학교’ 1강을 들은 이제야 나는 주인공 고양이 이름을 왜 듀이로 지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모금활동이 ‘느티나무와 듀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지길 소망한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현실을 생각하면 처음 공공도서관의 시대를 연 사람들의 취지가 살아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공공도서관에 대해 비판하려는 자리는 아닌지라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겠지만, 공공도서관 앞에 붙은 ‘공공’이 무슨 의미인지는 살펴보아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건물을 세우고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우리는 지금 정말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도서관을 활용하고 있을까?
이용남 교수님에게 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에 대해서도 강의를 들었다. 엄대섭이라는 분이 이미 우리 공공도서관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울산 사립도서관을 직접 세워 운영하였는데 끝내 재원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립도서관을 포기했다고 한다. 느티나무도서관 1층 소파에 앉아 지속가능한 사립 공공도서관에 대해 두려움과 안타까움과 절실함을 느꼈던 것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느티나무라는 공간이 소중하고 귀하고 보전시켜야 할 가치임을 알리는 일을 내 일처럼 궁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예비사서학교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던 중에 어느 고등학교 사서 선생님이 도서관학과와 관련된 과에 수시합격한 고3 학생에게 느티나무도서관의 ‘예비사서학교’ 참석을 권하는 짧은 글을 발견했다. 수시합격을 했으니 남은 시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역사와 인문과 철학이 담긴 사서의 세계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를 삼으라는 내용이었는데 몹시 반갑고 신선했다. 사서의 길이 그저 편하고 안정된 공무원의 세계만이 아님을, 현직 사서교사가 사서가 될 학생에게 말해주고 싶어 하는 진성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학생에게 ‘예비사서학교’ 수료식날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를 선물하고 싶다. 선물을 받은 학생이 나처럼 듀이에 대해 다시 한번 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느티나무도서관 같은 공간이 절실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커피값 몇 번 아껴서 그 책에 해당하는 금액만큼만 느티나무도서관에 기부하면 더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좋은 책을 만나면 나처럼 누군가에게 다시 선물을 하고 그 책을 선물받은 사람이 다시 책 값만큼 느티나무에 기부하면 좋겠다. 그래서 이 모금활동이 ‘느티나무와 듀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이어지길 소망한다.
이런 사연이 적힌 책들이 전국을 돌다가 다시 내게로 돌아오는 그런 기적 같은 일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