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티나무에서는

3월 9일 <이런 사람 있었네>저자 강연을 기다리며...

작성자 : 곰팡이꽃 작성일 : 2013-03-04 조회수 : 8,057

나는 참 행운이 많은 아줌마이다.
사는 주변에 도서관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있는 여기 용인 수지에 살아서 말이다.
국공립 도서관, 동네 작은 도서관 그리고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느티나무도서관까지.
이렇게 성격과 개성이 다른 도서관들이 내 주변에 든든히 있으니
천하의 배경을 얻은 듯 배부르고 든든하다.

단지 우연으로 누리는 이 행운을 (수지로 이사온 건 필연적인 것이 아니므로)
다른 지역 사람들도 모두 누릴까?
아마 아닐 것 같다. 여전히 도서관은 모자라고, 있다고 해도 행정 구역 느낌에
가까운 차갑고 딱딱한 도서관 분위기에 기가 죽기 마련일 것이다.
만약 느티나무도서관 같은 곳이 지역마다 최소 하나씩 있다면 지역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까 상상해 본다.
그런데 우리가 누리고 있는 도서관이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탄생한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도서관에 대한 이러한 고민을 아주 옛날부터 해 온 멋진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우리들 곁에 지금의 도서관이 생겨나기 까지 수고와 열정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개인적인 사회적 이익 따위는 뒤로 놓아 두고 오로지 민중의 책 읽기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도서관을 세워 살아온 사람들이다.
자신만의 가정을 일구고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기란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엔 더 각팍했을 터. 그런 상황에도 공익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편히 도서관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우리는 끝까지 그들을 기억해야 하고 그 정신을 후대에도 계승해야 한다고.
3
9일 낮 2 느티나무도서관은 이용남 이라는 선생님을 초빙하여 저자와의 만남을 한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도서관운동가인 엄대섭선생의 평전 <이런 사람 있었네>를 발간 하였다. 처음 이 책의 발간 소식을 듣고 참 반가웠다.
왜냐하면 이제 내 삶에서 도서관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동네를 가도 도서관이 있나를 제일 먼저 살피고.. 있다면 꼭 한 번 둘러보고
분위기를 살펴 봐야 직성이 풀릴 정도이다.
그러니 이 책을 안 읽어볼 수가 있나.
먼저 책의 커버를 열어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저자의 사진을 보니 느티나무도서관에 드나 들면서 자주 본 할아버지 이다.
이 분이 바로 저자 이용남 이라니! 깜짝 놀랐다. 그냥 도서관에 놀러 오신 분인 줄 알았는데 엄대섭 선생과 함께 도서관운동을 해 오신 분이라니..진작에 인사라도 해둘걸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저자 이용남은 엄대섭 선생을 대학 시절에 만나 도서관운동 및 활동을 20여 년간 함께하며 보좌하였다. 그 긴 세월을 엄대섭 선생과 함께 하면서 그가 이 땅의 도서관을 위해 이룬 업적과 노고를 생생하게 기록하여 이 책에 전부 실었다.
도서관운동가 엄대섭은 가난한 시골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주 열심이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가장으로서 돈 벌이를 위해 일본까지 건너 가 사업을 일으켜 부를 축척할 만큼 강단 있고 화끈했다. 그러면서도 못다한 학업의 아쉬움으로 틈틈이 책을 사 모으며 읽어 갔던 그였다. 어찌 보면 도서관인이 갖춘 이미지와는 사뭇 차이가 있다고 느껴 진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많이 배웠을 것 같고 말 수가 적으며 지적인 얼굴을 한 채 얌전히 앉아 있을 것 같은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엄대섭 선생 그는 내가 가진 편견을 완전히 깨는 그런 사람이었다.
평전에서 읽은 그의 모습은 순도 100%의 사업가 기질이 가득한 남성이기 때문이다. 맨 땅에 헤딩 정도가 아니라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깨뜨릴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 배짱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그 후에는 책으로 깨달음을 얻어 도서관 운동을 맹렬히 해 온 사람이다.

그는 일본에서 일을 할 때에도 아이디어를 얻으려 수 많은 책을 읽어 냈다고 한다.
책 속에 지혜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그가 감명 받았다는 어떤 책(정확하지 않으며 무슨 인생 교양 전서라고 함)의 문구를 소개해 본다.

남의 흉내만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같은 일이라도
남이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

그는 이 문구를 여러 번 생각하며 사업 계획을 하였고 마침내 성공하여 이후 한국으로 돌아 와 도서관을 짓고 운동하는 방식도 남이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밀고 나갔다.
화끈하고 직설적인 성격의 그는 불의를 절대 참지 않았으며 도서관 지원 방식에 대해서도
정면 돌파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 주었다고 한다.

평전을 읽으며 제일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문고 운동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해 정치계 및 기업가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과정들이다.
그는 그들과의 만남을 위해 무엇이든 했다.
집 앞에서 몇 개월을 서서 기다리는 둥. 눈 오는 날 쫒겨 나도 그 집 대문 앞에 앉아 눈사람이 될 때까지 질기게 버티는 둥. 어떨 땐 기업가가 지원해 준다고 할 때까지 자신의 손가락을 자를 까하는 엉뚱한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하여간 엄대섭 그는 포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 같다.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의 신념을 평전에서 접한 나는 참으로 멋져 보인다. 자신의 책읽기에서 얻은 깨달음과 체험으로 시작하여 민중의 책 읽을 권리를 쟁취하자는 강한 신념이 그를 그렇게 이끌어 갔을까.

평생을 불사르며 문고 운동을 계속적으로 해오던 그는 이윽고 1980년도 그의 나이 60세에 막사이사이상(공공봉사 부분)을 수상하는 명예를 안기도 했다.
막사이사이상은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며 필리핀에서 수상했다고 한다.
수상 이후에 문고 운동 및 사업에 대한 사회와 정부의 인식을 높이게 되었고 재단 설립을 위하여 저자 이용남과 엄대섭 선생은 청와대를 드나들며 대통령에게 진정하였다.
마침내 마을문고재단이 설립되었고 더 구체적으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세상 어떤 일이든 혼자 해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 먼저라고 하든가? 정말로 그런 것 같다.
제 아무리 완벽해도 뜻을 함께 해 줄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는 절대 해낼 수 없을 것이다.
엄대섭 그의 주변에도 항상 수고와 열정을 알아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언제나 뜻을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튼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도서관이 도서실 개념의 공부방 역할에만 치중하는 것이 안타까웠던 그는 공공도서관 개혁을 위해 또 다른 꿈을 꾸게 된다.

도서관이 이용자 입장에서 운영하지 않고 도서관 입장에서 편하게만 운영하는 데 기인한다 생각하여 선진국의 이동도서관 운영 사례를 널리 보급 시켰다.
또한 버스를 직접 제작하여 도서관이 닿지 않는 동네까지 가 책을 대출하는 등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여러가지 서비스를 구상하였다.
오늘날 우리들의 공공도서관에서 하고 있는 서비스를 그 때에 처음 시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책이라고 하면 똥 눌 때 비벼 쓰는 도구로만 생각하던 서민들에게 그의 운동은 거의 혁명에 가까웠으리라 생각한다.
평생 책을 보지 않다가 그 맛에 빠져들어 밤새 호롱불을 밝히며 도서삼매경에 빠졌던 일꾼들은 그 때 무엇을 보았을까?
어떤 꿈을 꾸었을까? 책을 보고 나서는 그 이전과의 삶이 얼마나 달라 졌을까 하는 상상들이 내 머리 속을 가득 메운다.

이용남 저자 <이런 사람 있었네> 엄대섭 선생의 평전은 나에게 한 가지를 가슴 속에 남겼다. 그건 꿈이다.
꿈을 이루어 간다는 건 어쩌면 현실과 반대로 살아간다는 것과 같다.
그 과정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 사랑과 열정이 깊이 새져 있기에 꿈꾸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다.

지금은 21세기이다. 더 이상 도서관은 50~60년대처럼 취약하지 않다.
오히려 엄대섭 그가 꿈꾸었을 법한 도서관이 우리들 삶 터 안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달려 들어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면 될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도 책읽기에 빠져 들어 꿈을 꾸기 시작하면 어떨까. 그래서 엄대섭 선생처럼 우리도 후대에 역사처럼 남겨지면 어떠할까. 그곳의 시작이 느티나무였으면 참 좋겠다.

                                                           
                                                                            자원활동가, 독서회 회원 강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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