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은 유독 서평청탁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두 꼭지가 남았는데요...
아는 사람의 책을 서평하는 건 참 곤란한 일이기도 한데요.
그렇다고 아는 사람이라 서평을 못 쓴다고 할 수도 없고.
아는 사람이니 무조건 좋다고 서평을 쓸 수도 없고.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나쁘다고 평을 할 수도 없고...^^;;
편집과정에서 제가 쓴 접속사들이 살짝 흔적을 감춰 문맥이 살짝 뜨기도 하네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에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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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대한 날선 비판은 넘쳐나지만, 우리 사회에서 어떤 정치를 원한다는 얘기는 듣기 쉽지 않다. 그 점은 이른바 진보정당이 등장한 뒤에도 별로 달라진 바 없다. 그러나 정치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것으론 좋은 세상을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정치가 살아나야 좋은 삶을 꿈꿀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의 발견>은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진다.
<정치의 발견>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보통 정치를 다루는 책은 자신의 논리를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이 책은 말하려는 바를 간결하고 분명하게 드러낸다. 정치는 현실 세계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벌이는 활동이기에 정해진 이념이나 노선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근대 사회에서 정치는 선거와 정당을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제도와 조직을 민주적으로 만들고 퇴화되는 것을 막으려면 ‘지도자의 역할’, ‘정치가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정치가의 리더십은 의사소통과 말의 힘을 통해, 일상생활의 경험과 언어를 통해 발휘된다. 진보정치는 권력을 거부하지 말고 오히려 권력을 잘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200쪽을 조금 넘긴 분량에 저자의 주장을 잘 담았다.
정치와 진보
또 다른 장점은 독자층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진보정당 사람을 대상으로 진행된 강의를 정리했기에, 독자층도 ‘진보파’이다. 어정쩡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고 진보파에 대한 불만과 충고를 과감하게 쏟아낸다. 목적만을 강조하는 진보파에게 이 책은 “좀더 정치적이고 좀더 인간적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념과 가치의 다원주의,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이성을 통해 경쟁”해야 하고, 무엇보다 진보적인 정치가는 “정치적 이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인격적인 깊이를 갖춰야” 한다(미국의 사회개혁가 솔 알린스키와 정치가 버락 오바마가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된다). 진보파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지만 진보정치를 외치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고민할 만한 화두를 제안한다.
또한 이 책은 ‘정치’라는 단어에 실린 지나친 무게감을 좀 덜어낸다. 어쩌면 정치에 대한 지나친 흥분과 냉소는 정치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기 바라는 기대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거란 비관이 빚은 결과물일지 모른다. 조금은 편해져야 그 단어를 편하게 가지고 놀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을 텐데 지금까지 우리 정치는 너무 무거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정치를 ‘발견’해낸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내용에 공감하는 건 아니다. 특히 3강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싸움’에서 얘기되는 촛불집회 토론회에는 나도 참여했고, 민주주의와 관련해 저자와 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부제가 ‘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가 아니라 ‘제도정치에서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진보정당의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 강의’였다면 내 평도 여기서 그쳤을 것이다. 짧은 지면에서 얘기하기엔 나눠야 할 얘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싶은 점을 몇 가지 얘기하고 싶다. 저자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가 “매우 일면적일 수 있다”고 “하나의 의견 내지 주장”이라 얘기하니 비판적인 대화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현실주의와 편견
▲ <한겨레> 자료 |
글•하승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그린비·2006), <참여를 넘어서는 직접행동>(한양대학교출판부·2007)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