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자들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글쓴이는 2000년과 2007년에 여성 활동가들의 경험을 인터뷰하고 분석하여 이 책을 썼다. 글쓴이는 도대체 이런 주제의 책을 누가 읽을까 고민이 되어 책을 접을까말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절 운동권이 아니었던 나에게 이 책은 참 흥미로웠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책의 반만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독서회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2장의 내용에 따르면, 1980년대후반1990년대 초반 운동권이 된 여대생들은 집회에 가는 게 재미있었고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온순하고 조신한 딸'이 되라고 요구받던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언어와 힘'을 얻었다고 했다. 세상을 알게 되었고 '딸'에서 '시민'으로의 변화를 느꼈다는 것이다.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나'가 주는 힘과 짜릿함이 있었다고 한다. 정답처럼 보이던 것들이 의심할 수 있는 것, 도전할 수 있는 것, 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녀들이, 대단한 결단이 있었다기 보다는 이런저런 기회로, 운동권에 진입하여 또다른 자신을 만나가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해 다른 '나'를 만나가고 있었을까? 우리에게도 '딸'이 아닌 '시민'으로서, 이전의 자신과는 다른 '나'를 느끼게 했던 계기나 순간이 있었던가? 아니면 우리는 그런 계기를 만나지 못하고 어머니/주부/딸로 살고 있는걸까? 이 지점에서 내 생각은 도서관으로 넘어갔다. 느티나무도서관은 우리에게 혹은 나에게 어떤 경험일까? 느티나무도서관은 어떤 '나'를 만나게 해주고 있는걸까?
다음으로 떠오른 생각은, 요즈음의 딸들 혹은 우리 딸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 시절 여대생들이 운동권 진입을 통해 딸에서 시민으로 의식화되는 계기를 만났다면, 요즈음의 딸들은 어떤 과정을 겪고 있을까? 그녀들은, 알던 것을 부정하고 못 보던 것을 보고 안 보던 것도 보면서 세상을 제대로 알아간다는 자부심을, 어떻게 얻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에게 공적 영역에서의 자신은 어떤 모습일까? 딸만 둘인 나는 이 질문의 맥락에서 내 딸들이 커온 과정을 쭉~ 돌이켜 보았다. 나는 '딸들의 의식화'에 얼마나 도움이 된 엄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