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가을 하늘이 보기 좋던 9월 23일 금욜 오전, "인터뷰스터디" 독서회가 있었다. 장소는 느티나무 지하까페. 추석연휴 탓에 오랜만의 모임이었다. 목디스크로 고생중인 박은영님과 잠시 숨 고르기로 하신 이민수님을 제외한 6명- 노영주쌤, 이은주님, 양선경님, 차지현님, 고경희님, 경희님의 영원한 껌딱지 주송군-이 약속이나 한 듯 떡이며 빵을 들고 와 책이 놓인 테이블 위는 더없이 풍성했다. 근심 모르는 망아지마냥 미끄럼틀과 엄마 곁을 쪼르르 내달리던 주송군이 가끔 베시시 웃어주곤 하면, 그야말로 천고마비스러웠다. ^^
이날 새롭게 읽기 시작한 책은 [신여성들은 무엇을 꿈꾸었는가? (최혜실 지음, 생각의 나무, 2000년)]였다. 절판된 책이라 구입에만도 애를 먹었을텐데, 대부분 약속대로 제 1장과 2장의 내용을 읽고 오시는 기특함을 발휘했다. (1장: 개화기 근대정신과 자유연애 결혼, 2장: 1910년대 소설에 나타나나 사랑과 성). 모임은 내용순으로 책을 훑으며 핵심이 되는 사안을 되짚어 보고, 의견을 나누며, 가끔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은 노영주쌤이 덧붙이시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우리는 이날 1910년대와 20년대 소설 속에 나타난 '사랑'의 개념과 그 설립 배경, 이 당시의 '사랑'이 대변하는 근대성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주력하였고, 이 사랑이라는 제도가 당시의 남녀에게 얼마나 불평등하게 적용되었는지로 끝맺음을 했다. 다음 모임에선 이 책으로 떠올려지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로 써와 읽는 시간을 갖을 예정이고, 읽다 만 책의 뒷부분은 세 번째 모임에서 마저 살펴보기로 했다.( 그 부분이 아마 몇몇 신여성들의 구체적인 삶과 꿈, 좌절에 관한 사례들인걸로 아는데, 관념과 삶이 동떨어진 시대를 살기엔 '너무나' 근대적이었던 그네들의 숙명과도 같았던 불행이 왜 벌써부터 감지되는지... 기대도 되지만 어쩐지 영 마음이 싸~하다)
이날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모양처'에 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어째서 여직껏 감쪽같이 조선시대를 관통해온 우리 고유의 전통사상이라고 믿어온 걸까? '어머니' '아내'만 해도 제법 '개인'에 속하는 개념이며, 농경사회이자 이기록의 시대였던 조선에서는 남녀 할 것 없이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 존재가치가 있었으니 여자는 '가문'을 존속시키고 이어주는 역할이 으뜸이었음은 사실 생각해보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한 가지 더 움찔했던 건, 이 '현모양처'의 개념이 개화기 무렵 소위 식자층들에 의해 일본에서 들여온 개념이며, 신여성들을 교육시키는 목표로 널리 쓰여졌다는 점이다. 천부인권설에 입각한 개화기의 여성론이 남녀평등은 인정하나 여성의 약점을 들어 사회참여를 제한함으로써 실제로는 여성을 교육하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의 모순을 낳았으니 그 배경에 현모양처가 있었다. 역시 안다고 다 아는 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전통으로 알고 당연시하는 것의 7~80%가 개화기 무렵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라 하니, 새삼 제대로 알아야겠다 싶었다. 알면 새롭게 보인다. 한편, 교과서에서만 배우고 외웠던 이인직의 '혈의 누' 라던가 최찬식의 '추월색' 같은 신소설의 일부를 인용구로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옛 국어의 형태나 어휘도 새삼스러웠다. 보기에는 어려워보이지만 소리내 읽어보면 제법 입에 붙는다. 생각보다 현대의 어휘라고 짐작했던 말들이 오래전부터 쓰이기도 했다. 과거가 새삼 그리 먼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당시의 여성들의 혼란이나 그 이후 전혜린으로 대표되는 시대의 아픔이나, 심지어 오늘날의 우리조차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모임의 말미에 노영주쌤이 언급한 이 책의 작가의 숨겨진 비화도 이에 맥을 같이 하는 듯 하여, 씁쓸한 심정이었다.
모임 중간 '인터뷰스터디'라는 독서회의 정체성에도 부합되지만 우리 엄마들에게 표할 수 있는 마지막 예의이자 선물로서, 언젠가 꼭 지금의 7~80대 여성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글로 엮어보자고 하였다. 야심차지만 한편으로 소박하기도 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