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티나무에서는

백일을 맞은 솔랑이에게

작성자 : 하승우 작성일 : 2010-11-01 조회수 : 6,822

솔랑아!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보니 어느덧 네가 백일을 맞았네. 축하해.
진작에 아빠가 축하해주려 했는데 네가 감기 걸리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어.

뱃속에서 네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를 따지면 백일은 첫번째 생일이기도 하구나.


아빠는 지금도 네가 분만실에서 튀어나올 때(다른 단어는 생각이 안 나네)를 떠올려.
엄마의 자궁에서 머리 끝자락이 조금 보이다가 한 번의 힘에 쑥 튀어나오는 널 보며 아빠는 깜짝 놀랬어.
아빠가 나름 독특한 영화를 좋아하는데다, 에얼리언 시리즈엔 남다른 애정이 있거든.
마치 에얼리언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어.
더구나 간호사 샘이 탯줄과 가위를 들고와 자르라고 눈 앞에 턱 내미는데... 헐...
자르긴 잘랐지만(네 탯줄 두껍더라, 야) 정신이 없었어.
피흘리는 엄마는 옆에서 아들이야, 딸이야를 묻고...

네가 아들이란 사실을 알고 엄마와 아빠는 약 0.1초 정도 서운한 마음을 가졌지만(사실이야!) 이내 마음을 추스렸지.
건강하게 태어나준 것만도 너무 감사했단다.
그리고 어찌나 멀쩡하게 생겼던지... 아빠를 닮지 않은 것에 맘속에서 환호를 질렀지.

병실로 옮겨 처음 너랑 잠자리에 든 날, 아빠는 한 숨도 자지 못했어.
엄마는 지쳐 잠을 자야 하니, 아빠가 널 품 안에 안고 있어야 했지.
너무 작은 애기가 쌔근쌔근 숨을 쉬며 품안에서 자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다음날 아침에 아빠 눈밑에 드리워진 다크 써클 봤지?

네가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도 아빠의 다크써클은 눈밑을 떠나지 않았지.
초보아빠인지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어떻게든 너를 잠재워서 위기를 모면하고 시간을 벌어보려는 생각만 했어.
그렇게 허둥지둥 보낸 시간이 벌써 백일이나 되었네.

요즘 감기가 걸려 콜록대는 널 보면 아빠랑 엄마 마음이 좋지 않아.
뭘 딱히 해줄 것도 없구.
그래도 씩씩하게 버텨가는 모습을 보며 엄마, 아빠는 안심하게 돼.
우리 솔랑이가 하나씩 어려움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구나...

요즘 엄마, 아빠는 너의 재롱을 보는 재미에 쏙 빠졌단다.
가끔은 네 머릿 속에 뭐가 들었는지 참으로 궁금할 때가 있고, 왜 잠잘 때만 되면 아빠를 호한마마보다 더 싫어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다 그러려니 하고 관찰중이야.
니가 아빠를 배척하고 잔소리하며 아빠를 혼낼 때도 그럭저럭 삐지지 않고 참으려 노력해(너 진짜 벌써부터 아빠한테 잔소리하는 버릇은 좀 줄여야 해).

그나저나 너의 썩소는 느티나무도서관 첫 방문으로 벌써 알려졌더구나.
아빠, 엄마의 성격을 닮아 까칠한 건 알겠는데, 벌써부터 그 성격을 드러낼 필요는 없단다.
그러다가 인간관계 끊어지는 수가 있어. ㅋㅋ



참, 백일 축하 메시지인데, 이렇게 얘기가 빠지면 안 되지.ㅎㅎ
어떤 분들은 네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아빠의 용기가 생겼다고 하네. 그럴지도 몰라. 널 위해서 뭘 해줄 생각은 별로 없지만^^;;(한여름에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산 걸로 퉁치자), 네가 아빠와 함께 짐을 지러 지구행성(아빠 친구들인 지구는 별이 아니라고 하도 강요해서...--;;)에 왔다고 아빠는 믿어. 그러니 니가 아빠를 잘 보살펴 줘야지.

그래도 아빠가 솔랑이한테 해줄 게 있다면 그건 관계 밖에 없네.
솔랑이가 태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솔랑이의 탄생을 반기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줬어. 뻥 안 치고 서른 개가 넘을 껄.
그리고 도서관의 인턴 누나, 이모, 삼촌들(연령대는 비슷한데 호칭은 참으로 다양하네)이 만들어준 솔랑이 선물 알지?



아빠는 차츰 힘이 떨어지니 빨리 달리고 싶을 때나 사람한테 매달리고 싶으면 인턴 언니들(얘야, 추노라는 엄마가 즐겨보던 드라마를 보니 예전에는 호칭이 대충 언니로 정리되더라)에게 해달라고 해. 아빠는 힘들어.ㅋㅋ
그리고 아직 솔랑이가 만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단다.
그 사람들도 우리 솔랑이를 많이 좋아하고 사랑해 줄꺼야.

아프리카 속담에 아이 하나가 자라려면 마을이 하나 필요하다고 하네.
아빠가 솔랑이를 위해 마련해줄 것도 그런 마을이고 마을사람들이야.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모, 더 원해도 줄게 없으니 알아서 하구...ㅋㅋ

솔랑아!
네가 태어나서 아빠는 참 행복하다.
네 눈에 비친 아빠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어.
지금보다 아빠를 더 좋은 아빠로 만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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