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티나무에서는

어제 모임 즐거웠어요...^^

작성자 : 하승우 작성일 : 2010-05-29 조회수 : 7,258

안녕하세요.
다들 잘 들어가셨는지요...
조금 길어진다 느꼈는데, 마치고 시계를 보니 어느새 11시가 다 되었더군요.
희갑씨와 종환씨가 몸바쳐 아이들을 돌봤기에 망정이지...^^;;

어제 말씀드렸지만 책을 쓴 사람에게 참으로 고마운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이런 저런 모임에서 얘기를 나눴지만 함께 얘기하는 시간이 저 혼자 떠드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길었던 첫번째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 분이 주신 의견들은 제가 앞으로 더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아나키즘이라는 말보다는 내가 살고자 하는 삶, 더불어 함께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사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삶이 중요한 것이지 이념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얘기지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내게 더 많은 관심과 열정을, 더불어 행복하기 위해 주위의 생명에게 더 많은 관심과 열정을 쏟는다면 그것이 곧 자치와 자급의 삶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삶은 제게도 여전히 숙제이겠지요.
도서관 오다가다 어제 못다한 얘기를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일수록 저는 원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실성이나 가능성보다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라는 원칙과 그 원칙을 실현하는 윤리가 중요하겠지요.
중국의 소설가 루쒼이 말했듯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걸어가면 길이 생기는 거니까요.
느티나무 도서관도 그런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길들이 우리 일상에서 계속 늘어난다면 조금 다르게 살 수 있겠지요.

아래의 시는 어제 잠깐 얘기드린 백무산 시인의 시입니다.
저는 문학도 그런 길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현실의 언어와 다른 언어를 보여주니까요.
한번 감상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시인 중에 김신용이라는 분이 계세요. 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을 다닌 분이 아니라 막노동을 하며 시를 쓰는 분인데요.
그 분의 시 중에 제가 참 좋아하는 시를 한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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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기댈 곳

                                                   백무산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검은 얼굴의 두 사내가 쇼핑을 나왔다
할인매장 계산대에서
기름때가 다 가시지 않은 손으로
라면과 야채를 넣었다 뺐다 들었다 놓았다
돈에 맞추느라 줄였다 늘렸다 했다

계산서를 구기던 여직원이 무전기 든 덩치를 불렀고
덩치는 주먹을 흔들고 욕을 퍼붓고 침 튀겼다
깜둥이 새끼들 돈 없으면 처먹지 말지
여기까지 와서 지랄은 지랄이야!
옆 계산대를 빠져나오던 자그마한 한 비구니가 그 소리를 들었다
두 배는 됨직한 그 덩치를 무릎 꿀렸다

저 자리에서 절절매며 살던 덩치가
우리도 인간이라고 외치던 때가 엊그제였다
힘있는 덩치와 문명의 나라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맑스였고
희망없는 '인류의 쓰레기'들과 땅을 잃은 뜨내기들이 우글거리는 나라에
새로운 역사의 기대를 걸었던 사람은 바꾸닌이었다
한줌 가진 것에 기대 비굴하게 오염되어
열정을 잃어버린 덩치들을 그는 경멸했다
그로 인해 그는 패배자가 되어 역사에
이름을 더렵혔지만 진실은 그의 것이었다

꿈꾸지 않는 자의 절망은 절망이 아니다

마음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비구니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순결한 것은 스스로 기댈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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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애의 힘
                                              김신용

바다를 건너 나비가 날아왔다. 다도해라지만 섬과 섬
사이가 너무 먼, 쉴 곳은 없는, 그 드넓은 바다를 지나 나
비가 날아왔다. 조그만 파도의 혀에도 휴지처럼 구겨질
나비, 죽음의 낭떠러지 같을 물결 위를 곡예를 하듯 아슬
아슬 지나, 불면 찢어질 듯 가냘픈 나래를 가진 나비가 너
무도 가볍게 나래를 쳐, 마치 풀밭 위의 푸른 맨발처럼 날
아왔다. 숙련된 인부가 삽질을 하듯 굳은 살 박힌 어깨가
질통을 지듯, 어떤 질긴 목숨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다
는 듯이 그렇게 나래를 쳐! 나비가 날아왔다. 빈 가방 하나
들지 않은 맨발마저 벗어버린 것 같은, 그 가벼움의 靑山
行을 보는 것은 눈이 부시도록 신기했다. 그 익숙한 날개
의 波動을 보는 것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섬
에 살면 흔히 눈에 띄는, 삽화 한 토막에 불과한! 망망대해
같은 바다를 지나 나비가 날아왔다


그 노래가
흘러나온 것은, 어두운 골목에서였다
그 골목에 흩어져 있는 박스며 빈병들을 주우며
얕은 흥얼거림의 노래를 흘려보내는 얼굴은
깊은 마스크와 두터운 벙거지 모자에 싸여 있었다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듯
아무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듯, 그렇게 자신을 가리고
여자는 폐품을 줍고 있었다
그러나 어둡게 가려진 마스크 '속에서는 <어떤 개인 날>이었는가?
<내게 강 같은 평화>였든가? 맑은 비음의 노래 한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등줄기에 못이라도 박힌 듯 그 자리에 서 버렸다.
어쩌면 자신의 불구를 가리고 있었을지도 모를
자신의 불치의 비명을 그렇게 숨기고 있었을지도 모를, 남루한 여자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를 듣는 순간,


나비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불면, 찢어질 듯 가냘픈 날
개를 가진 나비가 그 드넓은 바다의, 죽음의 혀 같을 물결
위를 마치 곡예를 하듯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것을 보았
기 때문이었다. 그 어떤 질긴 목숨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듯이, 그렇게 나래를 치는! 나래를 치는..... 그 비애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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