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느티나무에서는

아나키즘에 대한...

작성자 : 작은파도 작성일 : 2010-03-29 조회수 : 7,294

책을 읽다보면 우연히 가슴에 꽂히는 문장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참 기쁘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통할 수가 있구나.... 신기할 따름이다.
몇달전 읽은 '다르게 사는 사람들'-경향신문사 엮음 이란 책에서 본인은 아나키스트가 아니라고 말한 박홍규님의 다르게 사는 삶은 나에게 아나키즘의 관심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정말 의외의 수확이었다. 

그동안 고정관념속의 굴절된 아나키즘의 모습은 장동건, 정준호주연의 한국판 액션 느와르 '아나키스트'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일제에 대항해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펼치는 무정부주의자... 블랙슈트에 바바리코트를 휘날리며 동틀녘 뿌연 새벽안개 속으로.... 한발의 총성과 함께 사라지는 겁나게 폼잡는 신비주의자.... 신념에 죽고 정의에 사는 고독한 영혼....한마리 새처럼 높은 곳을 향한 자유에 대한 이상.... 암튼 미화되고 왜곡된 의식속의 아나키스트들은 늘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영웅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아나키즘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고 몇겹의 허울을 벗어버리니 정말 쌈박하고 명쾌한 논리였고 생활속에서 좀더 적극적 실천을 요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였다.
오호~~이것이 아나키즘이었어?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는   책 속에서 튀어 나올 것처럼 팔딱팔딱 뛰는 다혈질의 요절복통,상상초월 아나키스트의 모습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의 오래된 관습과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정당한 항의, 통하지 않을 경우 폭력도 불사하는 불굴의 투지는 골칫덩어리, 이단아로 사회적 질타를 받지만 그 모습에서  묘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우리안의 잠재된 자유에 대한 끌림 때문이 아닐지... 두꺼운 집단적 편견밑에 깔린 인정 할 수 밖에 없는 옳은것에 대한 지향때문이 아닐지....  암튼 과거 전설적 투사였던 21세기 아나키스트 이치로는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곳까지 저항하다 마지막 선택을 한다. 그의 평생 동지인  부인과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분명 있다고 믿는 희망의 섬 '파이파티로마'로 아들에게 근사한 말 한구절 남겨주고 멋지게 떠난다....(아직 초딩인 아들,딸 다 놔두고 둘이서만...--;;)

"지로,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날 아침에 거져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발 한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 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하지만 너는 아버지 따라할 거 없어. 그냥 네 생각대로 살아가면 돼. 아버지의 뱃속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벌레가 있어서 그게 날뛰기 시작하면 비위짱이 틀어져서 내가 나가 아니게 돼. 한마디로 바로야, 바보."- 남쪽으로 튀어 중에서...

좌충우돌, 소설 속 아나키스트의 모습과 개념으로  정리되는 아나키즘의 논리는  같은듯 다른 느낌을 준다. 둘 다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약간은 황당스럽고 약간은 엉뚱하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소설 속 유쾌함과 발랄함이 더 좋다.

특정한 이념을 강요하지 않고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마음과 감정에 희망을 걸었던 아나키즘을 하나의 이론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이상을 꿈꾸고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고 각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맞게 변형되었기 때문에 아나키스트의 수만큼 많은 아나키즘이 존재하는 셈이다.-아나키즘 p43

아나키즘의 관점의 차이야말로 역사를 발전시켜온 힘이라고 주장한다.부싯돌이 서로 부딪쳐서 빛을 내듯이, 다양한 차이가 서로 충돌할 때 새로운 사상이 출현한다. 그리고 차이가 서로 충돌하며 만드는 다양함의 가치는 스스로 결정하는 자치를 만나야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아나키즘 p148

과거 역사의 소용돌이속에 있었던 수많은 사상가들은 모두 자신의 목소리로 아나키즘을 이야기 한다. 자본주의,공산주의에 반대하든 국가를 부정하고 대중의 폭력적 저항을 지지하든, 대의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독점에 반대하든....결국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고 이는 자유의 문제로 귀결된다. 갑자기 안치환의 '자유'라는 민중가요가 떠오른다. 그 민중가요를 외치던 세대는 아니지만 가끔 자유라는 단어와 그 노래의 어울림에서 내적 흥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상황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시대를 초월하는 자유의 속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관점의 차이로 다양함을 만들어 내는 아나키즘...흥미롭다. 좀 더 들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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