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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지하철서재] 독립출판을 아시나요

작성자 : 느티나무 작성일 : 2018-05-14 조회수 : 9,109

[경기도지하철서재] 독립출판물을 아시나요


1월 16일 정자역 서재. 한 분이 서가를 유심히 보신다.

얼마 뒤 대출반납대로 오시기에 말을 걸었다.

“대출해 보셨어요? 컴퓨터로 대출하는 거 알려 드릴까요?”

“종이에 적는 게 편해요.”

서재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고 그날은 반납하러 들르신 참이었다.


대출반납용지를 수거하고 돌아와, 기록하면서 보니 그분이 반납한 책은 <다시 또 성탄>이었다.

황벼리 씨가 작가 겸 발행자로 되어 있다.

정자역 서재에서 독립출판물을 두 번째로 수서할 때 구입한 책이었다.

 

그때 같이 들여온 독립출판물들은 대출이 안 되는 책으로 구분하였다.

영수증에 쓰는 감열지에 인쇄한 책, 원래 묶지 않은 상태로 판매해

책을 산 사람이 구멍을 뚫고 링으로 꿰어 보관하도록 된 책...

종이재질, 판형, 제책방식이 제각각이고 보관이 까다로운 책도 있고

취급하는 서점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표지에 ‘도서관에서만 보는 책’ 스티커를 붙여 등록번호 바코드를  가려서 표시하였다.

그런데도  몇몇 책은 대출이 되었고, <다시 또 성탄> 경우는 그때까지

빌려간 사람이 너댓 사람이나 된다.

작가가 생활에서 취재한 일화를 만화 세 편으로 엮었는데,

혼자 사는 이의 적적한 일상에 찾아온 작은 파문을 섬세하게 그려서

마치 단편영화를 보는 듯하다.


독립출판물 서가를 둘러보다가 ‘이런 게 책이야?’ 하는 표정을 짓는 분도 있지만,

의외로 독립출판물을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분도 있다.

지하철서재 게시판에도 환영의 인사말이 남아 있다.


“꺄! 이곳 너무 좋아요. 독립출판사 서적도 있고 이곳저곳 정성들인 흔적이 보여요!

책소개글도 그렇고 미세먼지 관련 책도 있고 페미니즘 책도 있고

‘우울한 곰’이랑 ‘싫어증’ 책도 너무 기발하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장소 마련 늘 감사해요!! 독립출판서적들 너무너무 좋아요.”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서점은  많지 않다. 게다가 교통 편리하고

유동인구 많은 상업지역에 있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하루 몇만 명이 오가는 정자역 환승구간에 있는 지하철서재는

독립출판물을 알리기에 좋은 공간이다. 서재에 꽂힌 책이 200종 남짓이니

외면당할 걱정 없고, 일반 단행본들과 같이 있는 것도

‘독립'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하는 데 나쁘지 않다.


나도 이번에 흥미로운 독립출판물을 여럿 만났다.

개업 3년차 이내의 제과점 대표들을 인터뷰한

<Interview: Seoul bread shops aged 3 years and younger>는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정보를 정확한 정보원한테서 들어보는 기획이었다.

발행자인 ‘브로드컬리’(BROADCALLY)가 붙인 시리즈 이름이 ‘로컬샵 연구 기록'이다.

그래, 동네 가게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만 해도 충분히 의미 있다.


나는 친척어른의 경험으로 그런 가게들의 슬픈 종말을 접했었다.

십대 때 취미 없던 공부 대신 기술을 배운 친척어른은

이십 년 넘게 남 밑에서 일하며 서러운 세월을 보낸 끝에

마침내 작은 동네 빵집을 냈었다. 외삼촌 가족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온식구가 몇날며칠 잠을 설치면서도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아서,

그때까지 외삼촌의 고충을 모르고 살던 나도 덩달아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지금 내 기억에 먼저 떠오른 일은

2년이 안 되어 문을 닫던 마지막 몇달의 애통함이다.

한창 번지기 시작하던 가맹업의 위력에 버티지 못하였던 것이다.

어느 집안에도 하나쯤 있을 법한 그런 사연들을

개인의 잘못과 불운이라 탓하고 마는 건 억울하다.

지은이들의 기획이 그런 마음으로 던지는 질문 같았다.


2호부터는 ‘잡지'란 말을 썼다. 꾸준한 출판에 자신이 생긴 것일까.

최근 가장 ‘핫'하다고도 할 독립서점 이야기를 2호, 3호에 연달아 펴냈다.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 책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이 2호 제목이다.


<매거진 파노라마>도 흥미로웠다. 서울 시내 버스 노선 따라 서 있는 건축물을 소재로

글을 쓰고 엮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창 밖으로 스쳐지나는 건물들에 관해

인문지를 겸한 건축 리뷰를 싣는다. 글쓴이들은 건축을 전문으로 공부하고 있거나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부록이었는지, 자신들을 인터뷰(설문조사?)한 기사에서 보았는데,

건축에 관심 있는 아마추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을 소개하라고 하자,

모두 본인들이 만든 잡지를 추천했다. 읽어본 사람으로서 나도 동의한다.

잠깐 검색해 보았더니, 매호 텀블벅 후원으로 200여만 원의 제작비를 마련하고

기획과 취재, 원고 작성을 같이 할 편집진을 공개모집한 내용이 페이스북에 있다.

지금까지 6호를 펴냈다.

결과물이 수익으로 환원되어야만 재투자될 수 있는 제작시스템과 다른 길을

적극적으로 가고 있었다. 수익이 유일하고 절대적인 목표가 되면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잊혀지고, 그 일이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인지 묻는 게

허튼 상황이 될 때가 많다.

‘일’ 자체, 일을 하는 과정의 경험, 그 일을 하며 맺는 관계가 주역이 되는 그런 일을

누구든 하나씩은 만들어 가져야(자기 생활에서 발견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매거진 파노라마>의 시도가 일깨워준다.

이런 책들이 계속 나와주기를...  


월간 <책 Chaeg>이 2018년 3월호부터 ‘책이 선택한 책’ 꼭지에 독립출판물 리뷰를 싣기 시작했고,

인터넷서점 예스24의 문화웹진 월간 <채널예스>는 매달 독립출판물 저자를 만난다.

얼마 전 출판계 소식을 담는 잡지에서는 독립출판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출판유통계에서는 독립출판의 성장 추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는 모양이다.

그 한 기사에서는, 독립출판(indie publishing)을

기성출판사와 서점 유통 경로를 거치지 않는 출판활동이라고 정의한다.

개인과 소수 그룹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스스로

또는 전문가 지원을 통해 펴내는 콘텐츠로서,

출판계의 인디문화가 독립출판의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서점이 늘고 독립출판 커뮤니티도 생겨나고 있다.

한데 이 시장에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있다.

책을 만든 이는 자기 책을 받아줄 서점을 찾고,

독립서점은 서점 특색에 맞는 책을 선별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데,

서점에 책을 넣는 비용은 만만치 않고,

재고 파악이 어렵다는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고 한다.


경기도가 지하철서재 사업을 지원하는 까닭은 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자 함이고,

독립출판과 지역서점 지원도 그 한 가지 방향이다.

온라인에서 흐드러진 글쓰기와 표현물이 문화계의 장벽들을 무너뜨린 시대에, 여전히

책의 다양성은 사회의 문화와 정신이 건강하다는 중요한 표지일 것이다.



참고한 기사

<기획회의> 459호(2018.3.5) 수록

류영호, 독립출판 활성화를 만든 개인출판 플랫폼

민승원, 독립출판물 유통, 서점과 제작자를 잇다


(2018.3.18)

 

* 이 글은 지하철서재를 매주 순회 방문하며 일하는 글쓴이가 서재에서 보고, 듣고, 만나고, 생각한 것을 적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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