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조금 가신 8월 17일 금요일 저녁,
<어른이 되면> 공동체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다큐 <어른이 되면>은 중증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하는 시설 밖 생존영상일기 입니다.
13살부터 18년째 시설에서 살았던 동생을 서울로 데려와 함께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존엄할 권리,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이야기합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장혜영 감독과 대화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 때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 공유합니다.
"소중한 저녁시간에 저와 혜정이 살아가는 세계에 대해 들으러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어요."
이야기1) 왜 시설이 좋아질수 없었는지, 탈출해야하는 장소라고 느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장혜영 감독)
이 영화를 가장 관통하는 질문이자 영화를 넘어서 제가 앞으로 계속 이야기 해나가야하는 부분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왜 시설은 결코 복지가 될 수 없는가에 대해서 다양한 층위로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설에서의 삶이라고 하는 건 스스로의 삶, 일상을 나의 자의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에요. 우리가 자유를 누린다고 하는 게 굉장히 고차원적인 자유를 얘기할 때도 있지만 사실은 '내가 이걸 마실 수 있지만 마시지 않겠어.' 이런 순간을 통해서 우리가 스스로의 자유를 느낄 때가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시설은 그런 자유를 박탈당하는 공간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시설은 사람이 살아갈 곳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이야기2) 세바시 강연 <당신에게 장애인 친구가 없는 이유>에서 이야기 하셨듯이 한국사회가 특히나 장애인을 만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잘 몰라서 하는 불편한 친절, 실수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야기 해주시면 공유하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장혜영 감독)
굉장히 소중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주 어릴 때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살아가는 사회가 되어버렸기때문에 자연스러움을 습득하기까지 어떤 필연적인 부자연스러운 시간을 겪어내는 팁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제가 드리고 싶은 팁은 한가지예요.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가 혜정과 같이 살아가는 세계를 꾸리는 방법은 가능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우리 자매의 삶과 엮어내는 것이거든요.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비장애인들의 세계를 줄곧 살아왔기 때문에 그런 비슷한 질문한 질문을 저에게 많이 던지곤 했어요. 비장애인이 비장애인을 대할 때 어떤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처럼 장애인을 대할 때도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아요. 다만, 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 지켜야하는 예의가 몇가지 있죠. 내가 이 사람에게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는 것, 그리고 만약 실수를 했다면 진심을 다해서 사과 하는 것. 그렇게 점점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야기3) 감독님의 노래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직접 가사를 쓰고 부르시잖아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아 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 이 가사가 인상 깊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나이를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렵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어요. 혹시 그런 가사를 쓰게 된 마음이나 배경이 있을까요?
장혜영 감독)
혜정과 함께 살기 전에 제가 노래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마음이 힘들 때 노래를 만들게 됐던 것 같아요. 제 음악의 장르를 물어보는 분들이 종종 계신데 타령이라고 대답하거든요. 혜정과 살면서 지치는 순간들이 분명 있어요.
지금 나에게는 내일도 너무 먼데 할머니가 되는 시간을 상상하는 것... 연약한 존재와 함께 이렇게 거친 사회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가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하죠. 그런 마음이 들 때 저 자신을 다독이고 싶다는 마음, 저와 비슷한 사람들에게도 다독임을 건네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노래입니다.
나이를 먹는 게 왜 두려울까?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저는 사실 나이를 먹는 게 좋은데 가능성이 좁아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가능성이 좁아진다면, 좁아지지만 그만큼 깊어지고 자유로워지는 부분이 있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삶을 볼 때 두려워지는 것도 인간의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두렵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순간 결국에는 모두 똑같은 삶을 살아야한다고 말하는 거니까 되게 살기 힘들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와 비슷한 삶을 살든, 다른 삶을 살든 같은 사회를 사는 인간으로서 상냥하게 대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 참 힘든 일이다. 특히 요즘의 세계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서 노래를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이야기4)
-활동지원사는 구하셨나요?
장혜영 감독)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서 이 영화의 음악감독이자 혜정의 음악선생님인 인서가 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아서 연수를 받고 활동 지원사가 됐어요.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나는 일이기도 했죠.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와 한계를 느낀 거니까요. 인서가 엊그제 군대를 가서 다시 활동지원사를 구하는 중입니다.
-한 달에 94시간의 활동보조시간을 받는다고 얘기하셨는데 그러면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하세요?
장혜영 감독)
사실 94시간도 매칭이 안 되는 거니까 받은 거라고 하기는 그렇고... 자부담이라는 게 있어요. 혜정은 매월 10만원 정도 자부담으로 내야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어요. 나머지 시간은 정말 사적인 방식으로 서포트를 하는 거죠. 제가 있거나 영화에서 보셨던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채우고 있죠.
이야기5) 7월에 국회상영회를 하신 걸로 알고있는데 그때 어떠셨는지도 듣고 싶고, 그것에 연계되어서 더 진행되고 있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감독)
중요한 소식을 잘 알고 계시네요. 국회상영은 정말 소회가 깊었어요. 그 날을 혜정이 국회에 두 번째로 가는 날이었어요. 처음 갔을 때는 국회에서 연말에 소위 우리가 말하는 불우이웃 콘서트가 열려서 시설에서 올라온 혜정과 함께 봤었어요.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아니야>라는 곡이 혜정이 좋아하는 노래예요. 늘 그 노래가 나오면 스크린 앞에서 춤을 추는데 두 번째 갔던 공동체상영에서 국회를 접수했죠. (웃음)
시혜처럼 베풀어주던 공연을 보러오던 불행한 장애인에서, 당당하게 나도 이 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국회에 와서 자기 스스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보면서 여전히 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은 아니지만 분명히 탈시설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 국회의원들이 탈시설에 관련된 법제화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스웨덴, 뉴질랜드 이런 국가들을 보면 명백하게 카운트하는 방식으로 정리를 해요. 언제까지 명백하게 하겠다는 것을 받아놓고 필요한 모든 것들을 완수해서 완전히 단 하나의 시설도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리를 하게 되는 건데요. 시설은 자생하기 보다 국가에 의해서 유지되는 경우가 아주 많기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을 끊으면 없어져요. 그런데 갑자기 지원을 끊으면 인프라도 없고 사람들이 갈 곳이 없어지잖아요. 사회도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고요. 한국은 그런 과정이 지난할 것으로 예상돼요. 그렇지만 탈시설을 명백하게 제도화하는 것에 대해서 가열차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요.
탈시설 법제화보다도 지금 당면해있는 한 가지 이슈는 아까 이야기했던 활동지원사예요. 그 어떤 장애인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원한다면 24시간 활동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이 탈시설을 위해서 먼저 준비되어야하는 제도입니다. 많이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야기6) 감독님의 엄청난 팬이고, 어른이 되면도 잘 봤어요. 혜정언니와 혜영언니가 같이 지낸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더 많다고 하셨는데 지금 많이 친해졌는지, 그리고 행복한지. 또 사회와 혜정언니가 친해졌다고 느껴진 계기가 있는지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장혜영 감독)
행복하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단연 행복하다고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어떤 관점의 행복이냐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부모님이랑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비장애 부모 사이에서 장애 자녀가 태어나는 경우에는 비장애인의 세계를 살아가던 사람에게 갑자기 장애라는 세계가 가장 친밀한 자식이라는 방식으로
쳐들어오는 느낌일 거라서 굉장히 당혹스러우면서도 어렵고, 하지만 잘 해내야되겠다는 이중 삼중의 부담을 느끼게 되는 상활일 거라고 생각해요.
저같은 경우에는 혜정이 세상에 존재하는 게 너무 당연한 환경이었어요. 한 살 밖에 차이가 안 나거든요. 장애인도 세상에 존재하고, 함께 밥을 먹고 살아가는 것들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세상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인정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동생이 장애가 있고, 우리집에서 충분히 돌볼 여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시설로 추방된 것이 저의 인생에서 대사건이었죠. 납득할 수 없는 종류의 사건이었기때문에 그 순간부터 즐겁다라는 감정을 느낄 때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요. '내가 이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건 장애가 없기 때문이야' 이런 그림자가 있는 거죠. 심지어 행복해보이는 사람들도 싫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단지 운이 좋아서 이 세계에 편입되지 않았을 뿐이니까. 청소년기에는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혜정의 삶을 직시하고 이것은 인간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기 시작한 순간 살아가는 즐거움이 조금은 돌아온 것 같아요. 세상에는 여전히 괴로움, 슬픔,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있지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오히려 역부족이에요. 그렇지만 제가 내려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서 세상이 바뀌기를 원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확실히 그 전보다 굉장히 힘있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행복하다는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제가 GV나 강연을 할 때 혜정이 시설 안과 밖에서 얼마나 달라졌는가를 물어보세요. 저는 혜정 자체의 변화보다 혜정을 둘러싼 저를 포함한 그 주변사람들의 변화를 더 강조해서 얘기하고 싶어요. 사실 지금 황무지를 개척하는 느낌이지만 집 근처에 있는 카페를 한 번을 갈때와 세번을 갈 때, 열번을 갈 때 그들은 분명히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요. 시선이 달라진다는 건 따뜻해진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거기 있는 것을 평범하게 느낀다는 거예요. 다른 많은 손님들처럼 우리를 풍경처럼 느끼는 거죠. 그런 순간이 기분이 좋고 '좋아, 여기서는 살아갈 수 있어. 여기서는 우리도 이 세계의 일부야.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야.' 이런 것을 느끼죠. 이런 자리들도 사실은 마찬가지예요. 힘을 많이 얻어서 오늘 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야기7) 가능성이 좁아지고, 편안해진 50을 넘은 나이예요. 딸이 하나있고, 저보다 더 딸과 함께 오래 살아갈 여자 사촌들이 있고 그 친구들을 더 잘 이해해보고 싶어서 이런 저런 저한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찾아보다가 유튜브에서 생각 많은 둘째 언니의 영상들을 봤고 제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같이 보자며 권유하기도 했어요. 장혜영님은 그 친구들한테 선물로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에요. 저로서도 이렇게 젊은 사람이 용감하게, 대책없이! 걸어나가는 게 감동스럽고 세상 자체에 없던 빛이 하나 나타난 것 같아서 저한테도 살아가는데 용기를 줬어요. 굉장히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
유튜브 영상과 달리 영화같이 긴 장편을 만들때는 생각과 고민들이 더 생겨날 것 같아요. 전체적인 영화의 느낀 점은 슬프지않고, 감상적이지 않은 태도가 좋게 느껴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어보고 싶어요. 슬픔이 없지 않고, 그림자가 없지 않은 그런 순간들이 있을 거고 그래서 영화를 다듬으면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을 물어보고 싶어요.
장혜영 감독)
감사합니다. 긴 격려의 말씀과 굉장히 폐부를 찌르는 질문 너무 좋네요.
보통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기획서라는 것을 쓰잖아요. 이 영화는 기획서가 없는 게 기획서였어요.처음 해보는 일이기 때문에 예상할 수 없었고, 예상을 하더라도 그건 다 틀릴 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 찍어놓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자는 마음이었어요. 아무것도 예측을 할 수 없어서 영화 중반까지는 무작정 살았어요. 삶이 먼저 있고 작품은 그 다음이라고 생각했어요.
큰 고민 중 하나는 영화 안에서 시설을 얼마나 보여줄까였어요. 시설의 모습과 밖의 모습을 대비하는 작품을 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대비를 하면 명백하게 시설 안에서의 모습이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와서 사는 게 무조건 좋아보이죠. 그렇지만 나와서 사는 게 무조건 좋다고 이야기 할 때 사라지는 섬세한 결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설이 문제라고 말하는 작품도 좋지만,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당연히 장애인에게도 일상이 존재하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렇지만 이 다큐를 보는 비장애인들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특별하게 느낄 것이고, 그렇기때문에 더더욱 시설을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많이 잘라낸 지점에 대해서도 물어보셨죠. 특히 발달장애인의 경우에는 장애 당사자가 아니라 당사자를 돌보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요. 제가 하는 모든 말들이 당연히 혜정의 말이라고 여겨지는 게 싫었기때문에 영화의 첫 편집본에는 나레이션도 없고 저도 거의 나오지 않아요. 정말 세렝게티 초원의 사슴을 찍은 것 같은 느낌으로 혜정이만 나와요. (웃음)
내부 시사회를 했을 때 반응이 너무 안 좋았어요. "성인 여성 발달장애인의 삶을 단 두시간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너의 마음은 알겠는데 많은 사람들은 네가 원하는 것과 달리 영화를 컬트무비라고 볼 거야."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 지점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영화가 조약돌 같은 건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오브제가 아니라 대화를 시작하는 첫마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한다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게 아니라 처음이니까 사람들이 이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가야겠다. 단 한사람이라도 더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저의 목소리를 필요이상으로 강조하는 거였어요. 화자는 혜정이 아니라 언니라는 것을 들어냄으로써 사람들이 이것은 언니의 생각이고 그렇다면 혜정씨는 어떨까 질문하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요. 제 입장에서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넣은 작품입니다.
이야기8) 혜영씨한테 혜영씨의 시간과 혜정의 언니로서의 시간이 있다고 하셨죠. 당분간은 언니로서의 시간을 살겠다고 하셨는데 그게 나의 시간인지 언니의 시간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시점이 오셨을 것 같아요. 그 시간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묻고 싶어요.
장혜영 감독)
처음에 이 영화를 만들 때 혜정 언니의 시간과 저의 시간은 분리되어 있고 저의 시간을 살기 위해서 혜정 언니의 시간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지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지고 그건 제가 이 작업을 하면서 얻은 귀중한 관점이에요.
저는 좋은 사람으로 좋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렇다면 좋은 세상은 뭘까. 윗쪽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너는 행복할 권리가 있어', 아래쪽에 있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없으니까 불행해져도 어쩔 수 없고 너의 책임이야' 이렇게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 생각의 정점에 ‘너는 장애가 있으니까 이 사회에서 살아갈 자격이 없어. 그러기에는 너무나 약하고 동시에 위험해.’ 이런 이상한 논리로 격리를 당하는 거죠.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제가 돈을 벌든 작품을 하든 유튜브를 하든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기여하고 싶어요. 제가 원하는 세상에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혜정을 생각한다는 것은 아직 시설에 살고 있는, 그리고 가게 될 위험성이 높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일이라고도 느껴져요.
결국에는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세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것은 장애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아기의 문제이기도 하고 노인의 문제이기도 해요. 시차가 있다뿐이지 여기 앉아있는 여러분 중 누구도 자유로울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렇기때문에 힘이 있을 때 같이 약자를 돌보는 사회를 만들자는 말을 하는 것만이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면서 명백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9) 수원시 평생학습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이런 자리 마련해주셔서 일할 때 좋은 참고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궁금한 것은 혜정씨와 함께 여행이나 공연처럼 같이 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지, 또 감독님은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고 다큐도 만들고 책도 쓰는데 향후 계획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나 쓰고자하는 책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장혜영 감독)
느티나무 도서관 정말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라면 혜정과 같이 올 수 있겠다고 느꼈거든요. 그렇게 느껴진 도서관은 없었어요.
혜정이 13살부터 30살까지 무려 18년이라는 세월을 살다보면 여기 산 꼭대기에 있는 방이 내 세계의 전부고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혜정이 만약에 그렇게 느낀다면 저로서는 가장 끔찍한 일이었어요. 그렇기때문에
시설 밖에 나온 혜정에게 최대한 주고 싶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어. 자꾸 얘기하면 정말 그게 될 거야.' 이런 느낌이에요. 저도 그러기 위해서 혜정이 하는 말들을 할 수 있는 한 '해보죠 뭐'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요. 삶의 활력도 많이 되고요.
지금이 2018년이잖아요, 적어도 인간이 2000년 이상 존재해온 것인데 그렇다고해서 세상이 굉장히 오래 되고, 낡고, 삶의 모든 게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기운 빠지는 느낌이에요. 혜정과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 우리가 세상을 탐험했었던 그 감각으로 서른이 넘어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되게 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혜정은 음악선생님이 군대를 가면서 아까 다큐에서 보셨던 노란머리친구와 함께 미술 수업을 하고 있어요. 2-3달 정도 했는데 그림에 맛을 들여서 올해에는 전시를 해보자고 도모하고 있어요. 저는 살기 위해서 뭔가를 계속 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도, 영화도, 유튜브도 계속 하게 될 것 같은데요. 여러분은 오늘 <어른이 되면>의 1탄을 봤다는 생각이 들어요. 2탄은 아마 중년 혜영, 혜정 자매의 삶을 보게 될 거고, 바라건대 3탄은 이제 할매 혜영, 혜정이 나오는 작품으로 완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만드는 이야기니까 함께 나이먹어가면서 지켜봐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장혜영 감독의 책 『어른이 되면』의 한구절을 낭독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하나의 울림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 책의 끝은 우리 이야기가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말하기보다 오랫동안 듣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 238p.
함께여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